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Jan 05. 2021

세상에 무조건 나쁜 사람은 없다.

그는 '개 XX'에서 '영감님'으로 별명이 변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


A의 상사는 Y차장이다. A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를 부득이하게 떠올리게 된다면 머리가 아파왔다. 그는 거래처 사람에게 “이 보세요" 또는 "저기요”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관심 없는 주제의 회의에서는 “그건 됐고”라고 거침없이 말을 자르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자리에서 손톱을 깎고, 회사에 비치한 공용 자로 등을 벅벅 긁는 사람. 머리는 덥수룩하고, 담배를 많이 피우는 사람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A의 기억 속에 남은 모습은 이 씬이었다. 그가 A에게 “야!” “너!”라고 소리를 칠 때, A는 겁먹거나 아니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A는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저 야! 아니에요 A에요” 라며 혼잣말로 차장에게 되받치곤 했다.  A에게 Y차장은 ‘포악함’ 그 자체였다. 친구들에게는 쌍욕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더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A는 그를 ‘개 XX’나 ‘쓰레기’로 표현했다.


A의 옆팀에는 비서실의 L이 있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했다. 친절한 금자 씨보다 더 친절했다. 그리고 사람을 따르는 강아지 같기도 했다. 그 친절함의 경이를 느낀 일은 A가 L과 Y차장을 삼자대면했을 때였다. 회사에서 거래처에 돌릴 추석선물세트가 너무 많아서 포장을 도와달라고 직원 몇몇을 부른 자리였다. A와 Y는 한 열에 서서 일했다. A는 선물을 박스에 넣고, Y차장은 닫은 박스를 테이핑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Y는 여타와 같이 소리를 질렀다. “야!” A는 그 소리에 움찔 선물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박스작업이 느린 A를 타박하려고 운을 떼었다. 


“와~ Y차장님 엄청 많이 했다. 이렇게 손이 빠르시니까. 우리 작업 반장님이 부아가 나셨구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L이 말했다. 그녀는 Y차장 어깨 뒤에서 고개를 기웃기웃거리면서 그의 작업을 살폈다. Y차장은 얜 뭐야?라는 표정이었다. “제가 무슨 작업반장이에요! 잠깐 도와주는 거지! 빨리 끝내야 하는데 이놈이..” A는 다시 날아올 변화구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L이 다시 한번 말했다. “차장님 어쿠 너무 잘한다. 그래도 천천히 해도 돼요~~ 처언천히~~” “L씨가 내 일 다 도와줄 거요?” “아이고 그럼요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응원도 해드릴 수 있어요!” L의 천진난만한 대꾸에 Y차장은 더 이상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L은 Y차장이 택배 박스를 너무 깔끔하게 붙였다며, 테이핑 한 것 좀 보시라고 꼼꼼한 성격이 드러난다. 집에 가서도 와이프에게 잘할 상(??)이다. 등 점쟁이처럼 조잘대며 Y차장을 칭찬했다. 어이쿠 어이쿠 Y차장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나중에 남은 노끈으로 리본까지 만들어 씌워줄 기세였다. A는 L의 대처능력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후에도 L의 행보는 재미있었다. Y차장이 ‘야’ ‘너’할 때마다. 500원씩 Y차장에게 벌금이라고 물려서 돈을 보태 간식으로 떡볶이를 먹기도 했다. Y차장이 실적으로 꼬투리를 잡을 때면, “너무 무서워요 꿈에 나올 것 같아요~ 차장님 때문에 무서워~~~”라고 엄살을 피우기도 했다. L의 너스레와 분위기를 풀어주는 장난 덕분에 Y차장은 ‘호랑이’ ‘작업반장’ 등의 별명까지 붙었다. L이 부르기 시작하니 다른 직원들도 Y차장에게 ‘작업반장님~’등의 호칭을 쓰며 접근했다. Y가 으르렁 거려도 다들 웃는 낯으로 대했다. Y차장의 으르렁거림은 점점 하나의 특성처럼 변해갔다. 그리고 그 으르렁거림도 남을 권위로 짓누르려는 것이 아닌 할아버지의 기침이나 엄마의 중얼거림처럼 약한 소리로 바뀌었다. 이제 직원들은 Y차장을 ‘영감님’ 같다며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았다. 매일 A를 짓누르던 Y차장의 고약한 성질은, 이제 하나의 캐릭터가 되었다. A도 Y차장에게 조금씩 장난도 쳤고, 하고 싶은 말도 더 하고는 했다. 그런 식으로 표현을 하다 보니 Y차장도 전보다는 A에게 심하게 대하지 않았다. 


L과 A가 단둘이 밥을 먹을 때, A가 말했다.  “L씨 고마워요, L 씨의 밝은 성격 덕분에 Y차장님 대하기가 편해졌어요.” “에이 제가 뭘요~ Y차장님 은근히 귀여우시던데!” “그분이 귀여워요..? L 씨가 사람을 좋게 보는 것 같은데~” “나쁜 사람은 없죠! Y차장님 좋은 분이세요, 자신감이 없어서 화를 많이 내서 그렇지” 그 순간 L의 뒤로 후광이 비쳤다. A는 L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태생적으로 사랑스러운 사람도 있다. 사람 자체로도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랑스럽게’ ‘좋게’ 만드는 것 또한 사람이다. 세상에 무조건 나쁜 사람은 없다. A는 그런 L의 능력에 감탄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나서서 점심값을 냈다.



작가의 이전글 울고 웃었던 나의 2020년, 작년의 희로애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