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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07. 2021

나는 뚝섬 유원지역에서 내릴 날을 기다린다

나는 가끔 출근길과 등굣길에 내려서 강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뚝섬 유원지역에서 내릴 날을 기다린다.


나는 7호선을 타고 20대와 30대를 보냈다. 집 근처 반경에서만 오가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을 가며, 7호선 여정이 시작되었다. 나의 대학교는 7호선의 맨 끝 쪽이었다. 집과 정반대로 50분 정도 7호선의 끝과 끝을 오갔다. 이후 회사원이 되어서도 강남 쪽에 위치한 회사를 가기 위해 7호선을 탔다. 통신사 할인 서비스에서 가장 많이 할인받은 곳을 ‘편의점’으로 표기하듯이, 내가 바깥에서 가장 많이 머무른 곳을 집계한다면 ‘7호선 지하철 안’이 순위권 안에 보일 것이다.


7호선에는 몇 가지 인상적인 역이 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환승역이다. 하지만 환승역도 저마다의 색이 다르다. 8시경을 지난 시간에 건대입구역~군자역 부근에 오면 벌써 젊음의 기운이 돈다. 승객들의 머리색은 다르게 빛난다. 그들의 짧은 옷차림, 화려한 액세서리, 핸드폰과 가방에 달려있는 존재감을 발휘하는 키링들. 화장을 칠해도 앳된 그들의 얼굴은 나까지 들뜨게 한다.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가 위치한 역들이기에 역은 활기가 감돈다. 역사 벽에 깔린 타일까지 반짝반짝 젊음을 빛내고 있는 느낌이다.


반면, 강남구청역 과 논현역은 비슷한 옷을 입은 무채색의 회사원들이 타고 내린다. 그들은 비슷한 옷차림으로 무표정한 표정이다. 이어폰으로 잠시 지하철의 소음을 피하거나, 유튜브로 어제 못 본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아 뒤에 년 존나 미네’라는 욕설을 카톡으로 해소하며 북적이는 지하철을 인내해낸다. 아침이 그들을 각박하게 만든다. 그들은 강남구청역 과 논현역에 가까워지면서 출근이 임박함을 느낀다. 건대입구역에서 내리는 이들의 설렘이 배어있는 표정과는 사뭇 다르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눈의 생기는 죽이되, 몸은 민첩하게 문 앞으로 향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청담역과 뚝섬유원지 사이의 구간이다. 역에서 역 사이로 이동할 때 회색 터미널을 지나고 나면, 쭉 뻗은 한강이 보이는 유일한 구간이다. 출근길에 핸드폰을 보고 있던 사람, 꾸벅꾸벅 졸던 사람들도. 이 구간에서는 고개를 들어 창 밖을 쳐다본다. 창밖을 정신없이 보다가 옆을 보면, 옆사람들이 모두 함께 창밖을 보고 있을 때 마음속에 이상한 감동이 피어오르기도 한다. 한강 위로 떠오르는 해가 보이기도 하고, 새로 지어진 높은 잠실타워가 보인다. 강은 유유히 오리배가 떠다닌다. 눈이 많이 온 다음날은 고기 위 비계처럼 강 위로 흰 얼음이 뭉텅뭉텅 모여져 있다. 강 옆의 길 위로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무리로 모여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다.


나는 가끔 출근길과 등굣길에 내려서 강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막상 이를 실천한 적은 없다. 놀러 가기 위해 뚝섬유원지 역에 내려서 돗자리를 깔고 치킨을 시켜먹기도 했으나, 다른 목적지로 가다가 내린 적은 없다. 


하루에도 수백 번의 만남과 지나침을 지하철에서 겪는다. 나는 7호선을 함께 타는 사람들이 동료처럼 느껴진다. 하루의 고단함을 견뎌내며 강남에서 노원으로, 가산에서 사당으로 향하는 사람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높은 잠실의 아파트를 바라보거나, 삼삼오오 강 옆에 앉은 이들을 보며 주말을 기약하는 사람들. 누군가와 함께 이곳에 오리라 다짐하며 잠시 고개를 드는 이들. 우리는 성실한 개미답게, 뚝섬유원지 역에서 이탈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간다. 7호선을 오가는 매일매일. 나는 언젠가 목적지에서 삼천포로 빠지는 날을 기다린다. 창밖을 보며 뚝섬역에서 잠깐 내려 역 밖으로 이탈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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