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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28. 2020

올해, 결혼한 이야기-3

큰 장소와 많은 인원 대신에 '소박하고 정감 있었던 결혼'


잠이 오지 않던 결혼 전날


결혼 전 날, 그녀는 회사에 반차를 냈다. 엄마와 한복집에 가서 미리 대여해 둔 한복을 받으러 갔다. 시어머니가 될 분은 파란색 한복, 그녀의 어머님은 붉은색 한복이었다. 미리 봐 두었던 한복을 찾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한복 앞쪽에 있는 장식 꽃이 하얀색이라서, 따뜻한 계절 느낌이 나네요, 다른 색으로 바꿔주실 수 있어요?” 그녀의 결혼은 6월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한번 밀린 터였다. 그래서인지, 그때 당시 장신구로 붙어있던 하얀 꽃의 한복 장신구가 어머니 눈에는 거슬렸나 보다. 한복집에서는 흔쾌히 장식을 변경하여 달아 주었다. 그녀는 엄마의 눈썰미에 대해서 '역시 꼼꼼하구나' 싶었다. 


그녀가 셀프 웨딩을 한식당에서 한다고 했을 때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사진을 어디서 찍는지 등을 꼼꼼히 물어보았다. 심지어 마이크가 유선인지 무선인지, 아니면 마이크 거치대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부모님이 중간에 편지를 읽어주어야 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에 자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신 거였다. 그녀는 꼬치꼬치 묻는 어머니가 귀찮아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텐데’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짜증도 냈지만, 그런 섬세한 안목 때문에 디테일하게 놓친 부분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 스몰 웨딩이라고 말했지만, 어머니와 주변의 도움으로 결혼이 완성이 되는 거였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샵에 일찍 가야 되기 때문에 새벽 5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밤 10시에 침대에 누웠다. 그래도 잠을 자려는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계속 메이크업샵-헤어-결혼식장-사진 촬영 장소 체크-식장 체크 등등 동선을 그렸다. 그러다가 억지로 동선을 쫓아내며 잠을 청했다. 


작지만 정감 있었던 결혼 당일


 그녀는 아침 일찍, 메이크업 샵에 도착했다. 신경 쓰이는 입 주변 여드름 자국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식당에서 하는 것임도 얘기해서 메이크업에 대해서 의견을 들었다. 셀프 웨딩이나 스몰웨딩 때는 이런 걸 말해 주면 좋다고 했다. 조명이나 장소 같은 것도 영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화장을 마치고 결혼을 하기로 한 식당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이 참 좋았다. 시어머니가 싫다고 했던 병풍도 예쁘게 흰 천으로 잘 가려졌고, 사진을 찍기 좋은 공간도 이곳저곳에 있었다. 사회를 봐주기로 한 그녀의 친구도 와서 장내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이 계속 고민하던 부분은 <가족 및 친인척 사진>을 식당 내에서 찍을 것인가, 밖에서 찍을 것인가 였다. 안에서 찍게 되면, 예식장이 아니기 때문에 배경이 예쁘지 않을 것을 걱정했고, 밖에서 찍을 경우 친척분들이 다 바깥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식사를 위해 올라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런 부분이 고민되었지만. 사진 작가는 심플하게 정리했다. “오늘 날씨도 좋으니 친척들 다 모시고 밖에서 찍는 게 훨씬 예쁠 거예요.” 


식당에는 신부 대기실이나, 공간이 없었다. 그녀 또한 대기실에 인형처럼 앉아있는 신부 모습을 좋아하진 않았기에, 이는 괜찮았다.  예비 신랑과 그녀는 바깥에 나가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날씨도 좋고, 식당 외부의 야외 정원이 탁 트여있어서. 오시는 분들 모두 활짝 웃는 얼굴이었다. 아쉬운 건 단 하나 마스크였다. 그녀의 큰고모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한 마디를 했다 “이 시국에 마스크도 안 쓰고!” 약간 호통을 치듯 말한 거였는데, 그녀는 그 말이 너무 신경 쓰였다. 그녀는 고모에게 말했다. “메이크업을 해서 못쓴 거예요” 사실 그녀의 가족 모두가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얼굴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도 챙겼지만, 메이크업 샵에서는 ‘아무래도 신랑 신부분이랑 혼주분들은 안 쓰시는 게 좋아요’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후 그녀의 부모님은 마스크를 착용하셨다.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나중에 본식 스냅사진을 보니 마스크가 이곳저곳에 있어 못내 마음이 속상하기는 했다. 


12시가 되어 본격적으로 예식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결혼 영상을 틀었다. 나름 신나는 영상이었는데 하객 측은 조용했다. 신랑과 신부는 함께 입장했다. 서로 마주어 인사를 하고 하객 측을 보니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식당이라 공간이 협소해, 모든 이의 얼굴이 보였다. 50명의 인원, 그와 그녀를 빼고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마치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시위 현장에 나온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으니 기쁜지, 슬픈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식장과 같이 엄숙한 공간이 아니어서 그런지 많이 떨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연극배우가 되었다는 자기 세뇌를 하며 최대한 방긋방긋 웃었다. 그들은 시위대 앞에서 혼인 서약서와 성혼선언문을 읽었다. 이제 부부가 된 것이다. 


위기는 아버지가 딸에게 쓴 편지를 읽어줄 때였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 이런 표현이 편지 속에 있었다.  늘 넘치도록 받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 말이 속상해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편지와 어머니의 시를 듣고 그들은 눈물이 났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때도 역시 뻔하게 눈물이 났다. 자주 보는 광경이었지만, 주인공이 되니 역시 눈물이 나나보다. 하객들을 보니 눈밖에 안 보이지만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오랜 단짝 친구도 사회를 봐주면서 코를 훔치고 있었다. 사진작가는 그 모든 순간을 파파라치처럼 열심히 찍었다. 그들의 마지막 행진으로 결혼식을 마쳤다. 야외로 나가 사진을 찍는데, 다들 단체 사진을 찍고 나간 후에도 연신 구경을 하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하객들은 번거로워 하기보다 햇살을 즐겼다. 그녀는 그날만큼은 아이돌이 된 기분이었다. 날씨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한정식집은 간단한 코스요리가 제공되었다. 회, 갈비찜, 국, 전등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모자람 있지도 않은 음식이었다. 그녀와 그는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겨우 자리에 앉았다. 다들 밥을 먹으라고 떠밀어주었으나 막상 많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가시는 분들께 인사를 하고, 또 부르는 자리에 가서 인사를 하다 보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정신이 없었다. 어느 정도 식사가 종료되고 인사도 마쳤다. 식당에 함께 있는 카페에서 하객들은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가진 자리기 때문에 다들 바로 자리를 뜨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와 그녀는 그분들께도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결혼식 당일 많이 정신이 없다고 하는데, 그녀 또한 물론 그랬다. 하지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는 정도’의 정신없음은 아니었다.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코로나 19 시기인 지금 한정식집에서 방하나를 대여하여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과 친구, 그리고 하객들의 배려 덕분이었다. 사회를 봐준 그녀의 친구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도 너처럼 결혼하고 싶더라. 사람들도 서로 집중하는 느낌이었고, 정감 있고 좋았어" 작은 인원수 때문에, 수금(?)도 원만치 않았겠지만 그녀의 부모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정 있고 뜻있는 사람들은 초대를 못 하더라도 다 알아서 한단다.” 물론 그녀도 축의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꼭 뜻을 표하고 싶은 분들은 축의를 해 주었다. 그녀 또한 서로 헷갈리는 사이에서 무리하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19가 난리였던 2020년, 그녀의 결혼은 날짜 정하기부터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그다음의 그녀의 주된 고민거리는,  ‘합리적이지만, 부족하거나 모자라 보이지 않는 결혼' 그리고 '초대 인원'이었다. 그녀의 고민이 해결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오신 분들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없으니까. 그래도 그녀는 큰 장소와 많은 인원 대신에 '소박하고 정감 있었던 결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 준 것은 하객들의 배려였다. 


웨딩카페 내 글들을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예비 신랑 신부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들을 위해서 예식장 연장이라든가, 식사인원에 대한 조정 등 많은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다. 경조사를 치르는 이들 모두가 고민이 되는 시기이다. 그래도 점차 모든 문화가 합리적이며 서로 배려해주는 방향으로 바뀌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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