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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Dec 25. 2020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직장을 잃었습니다

오늘은 4년을 넘게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맞게 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직장을 잃었습니다.


오늘은 4년을 넘게 일한 직장을 그만두고 맞게 된 크리스마스다. 퇴사와 퇴사 전일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퇴사 통보를 받기 전일은 연차였는데, 일이 있어서 계속 집에서 일을 했다. 몇 년째 이런 반복적인 업무를 하다 보면, 대체 이런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도, 코로나 19 시대에 잘리지 않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게 다행이야,라고 생각을 했다. 회사는 매출이 많이 떨어졌다. 정말 올해는 팬데믹 때문에 무엇을 해도 안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냥 일을 하자'라고 생각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남편과 나는 ‘나의 아저씨’ 드라마를 틀어두고 일을 했다. 회사 내 권력다툼과, 서로를 해하려는 음모 속에서 도청을 하며 스파이 노릇을 하는 이지안, 그런 이지안을 따뜻하게 품어주며 그녀의 실수를 용서해 주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저씨 박동훈.. 드라마를 보고 나도 박동훈 같은 따뜻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재택근무로 연차를 마무리했다. 


샌드위치 하나와 함께 상쾌하게 출근을 했다. 어제 온 메일을 거의 다 어제 읽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답변을 하고 있는 중에, 경영지원 팀장이 나를 불렀다. 잠깐 얘기 좀 하자고 쓰고 있던 메일을 마무리하고 가겠다고 말하고 문장을 마무리하며 생각했다. '혹시 내가 <해고 대상자>가 되었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4년 약간 넘는 시간 근무했다. 회사의 업무에 대해서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담당자들이 퇴사할 때마다 업무공백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


“지금 회사 사정을 아시지요? 그래서 권고사직 대상자가 대리님이 되셨습니다"


들었지만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제가 나가면 회사에 문제가 생길걸요. 저 어제도 재택근무했어요, 제가 무슨 업무를 하는지나 알고 계세요?”

“네 그렇게 회사를 생각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정말 애사심이 있으시네요”


애사심. 나는 그 말에 뭔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인사팀장이 담백하게 말했는데도 그 말이 빈정거림처럼 느껴졌다. ‘네가 애사심을 가지면 뭐하니, 너는 체스 말의 ‘폰’ 일 뿐이야. 말이나 여왕이 아니라고, 네가 뭔데 사고가 난다고 하는 거야.’ 


인사팀장은 퇴사 일자를 생각해보라고 하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는 1개월치의 봉급을 위로금으로 받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동료들에게 점심시간에 이 일을 말했다. 평소 친하던 사람은 아쉽다며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퇴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위로도 없었다. 나는 남은 사람들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인계 안 받을 거예요. 그냥 나가고 싶으면 바로 나가요”


나는 회사가 사고 날 것을 걱정했지만, 사람들은 본인의 안위와, 본인의 업무량에 대해서 걱정했다. 오랜 시간 4년 동안, 누군가 나갈 때마다 그 짐을 자신이 짊어지고 처리해왔던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긴 떠나간 이의 업무를 하지 않아야. 인력손실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의 귀중함에 대해 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자리와 업무 폴더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리를 정리하자 사람들이 언제 까지냐고 물었고, 오늘까지 회사를 나온다고 말했다. 참 이상하게 연차를 쓰기 전 날 보다 마음이 편했다. 연차를 쓰는 날 전에는 늘 야근을 했다. 다음날 사고가 발생하지 않길 걱정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 다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그 사고의 책임도 본인이 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연차 일자를 고민할 때 보다, 퇴사 일자를 결정하는 시간이 빨랐다.


자료를 대충 옮기고 퇴근을 하고 나서, 사람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코로나 19로 웬만하면 회식을 하지 않았었다.그래도 다들 그만두니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가자고 권유했다. 호프집에서 치킨을 먹다가 괜스레 눈물이 났다. 회사에서 10년 일을 한 차장님도 권고사직을 당했다.


“마누라에게 어떻게 말할지 걱정이다. 말하면 잘했다고 하겠지, 그래도 걱정이야”라고 했다.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짐을 역까지 들어줬다. 집에 가는 길에 거래처 사람들과 회사 사람들이 '고생했다, 수고했다'라고 연락을 해주었다. 아무 의미가 없는 시간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니 고마웠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 같이 누군가를 감싸주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사실 나는 내 감정도 추스리기가 어려운 유약한 사람이었다.


며칠 푹 자고 나니,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트리나 어떤 장식도 사 오지 않아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도 나가서 크리스마스를 맞이 하지 않는다. 캐럴은 울려 퍼지지 않고 집안에서 음식을 배달시켜먹고 넷플릭스를 본다. 크리스마스의 풍경이 변했다.


크리스마스의 쓸쓸함이 슬프다고 나가서 시간을 보낼 수 없으니, 조용하고 고요한 크리스마스를 집안에서 즐겨야겠지. 이처럼 나는 올해 딸에서, 부인이 되고 며느리가 되었다. 언젠가는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었지만, 지금은 코로나 19로 인해 퇴사를 한 사람이다.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래도 변해가고 변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


실업급여를 받고, 내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어떻게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아저씨'에서 서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낼 때 '아무일도 아니야' 라고 짐을 덜어주던 두 주인공의 대사를 생각하며, 고요한 크리스마스에 내게 '아무일도 아니야' 라고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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