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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28. 2021

아빠, 연말정산 부탁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지금 세대에게는 편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낯섬과 어려움이었다.

아빠, 연말정산 부탁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연말정산을 차주 화요일까지 해야 했다. 부랴부랴 내 국세청에서 다운받아서 회사 연말정산 데이터에 집어넣으니 자동으로 입력이 되었다. 청약 통장만 추가적으로 입력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라섹 수술을 한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부기님 라섹 수술비가 연말정산에서 누락되어 죄송합니다. 이메일을 문자로 보내주시면 영수증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라섹수술을 한 게 떠올랐다. 꽤 큰 비용이었는데 누락이 됐었구나, 라섹수술 영수증을 받고서 생각해보니 보호자로 오신 어머니가 내 수술비를 내주셨었다.


“엄마 연말정산 어떻게 했어?”

“난 소득이 없으니 안 하지..”

“아 내 라섹 수술비 영수증 왔던데, 엄마한테 넣어야 할 텐데? 이거 금액이 꽤 커요”

“너한테 넣거나 아니면 아빠한테 넣거나”


흠 그러게, 아버지는 연말정산을 어떻게 하시려나.. 그전 회사에서는 거의 회사 직원이 아빠 것을 처리해줬다고 한다. 이번에는 좀 작은 회사로 아빠가 회사를 옮긴 게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아빠, 연말정산 어떻게 하세요?”

“응 나 서류 내라고 왔는데 안 한다. 언제? 내일까지 내라고 했어”

“엥 왜 안 하세요?”

“귀찮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는 컴퓨터를 잘 못하셨다. 공인인증서 인증에 어려움을 느끼시고, 심지어 ‘카카오톡 업데이트’라는 문구만 봐도 그 새로움에 당황하시는 분이었다. 나는 월세를 내던 작년까지 많으면 거의 80만 원 돈이 연말정산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몰라서 안 한다기에는 너무 크고 아까운 돈이었다. 13월의 월급이 이렇게 사라지다니.


집으로 간 후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으로 국세청에 로그인을 했다. 내가 결혼했기 때문에 본가에는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이 있다. 현재 아버지만 돈을 벌고 계시기 때문에, 셋의 돈을 전부 묶으면 꽤 큰 금액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생긴 간편 인증인 <카카오톡 인증하기>를 눌렀다. 인증 카톡이 ‘카카오톡 지갑’으로 갈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역시 당황하셨다. 방 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동생을 불렀다.


“동현아!! 동현아!!”

“아 저 지금 못 나가요!”

“야 이거 누나 연말정산 뭐한다는데 와서 좀 봐줘라”

“아이 죽는데~~X#AG@@”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동생이 이내 전화를 받았다. 

“누나 이거 인증해서 알려주면 돼?”

“응”


그리고 동생은 얼마 후 인증을 했다고 카톡을 했고, 나는 아버지의 소득, 세액 공제 자료를 조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엄마와 동생을 ‘부양가족’으로 조회해야 했다. 이 또한 다시 엄마와 동생의 주민등록증과 핸드폰 인증이 필요했다. 동생은 게임을 하다가 구시렁거리며 다시 소환되었고, 엄마도 민증을 불러주었다. 


그렇게 부양가족 등록 후 아빠의 소득. 세액 내역을 보니 전보다 2배 이상이 되어 있었다. PDF로 파일을 받은 후 아버지 직장의 이메일을 받아 PDF 파일과 가족관계 증명서, 라섹 수술비 영수증을 메일로 보냈다. 내가 딸이며, 더 필요한 서류가 있으면 말해달라고 메일에 인사말을 덧붙였다.


회사에서는 종종 나이 많으신 이사님이나 부장님들이 도와달라고 하면 연말정산 서류를 도와드렸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서류를 도와드린 건 처음이었다. 남편은 ‘얼마나 딸이랑 아들이 어려우면 이런 것도 편하게 부탁하지 못하고 포기하시냐’ 고 타박했다. 


그동안 <업데이트> 글자에 놀라는 아빠에게 이런 건 그냥 누르면 된다면서, 신문물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가르쳐준답시고 짜증 섞인 대꾸를 했었고 부모님을 가르치려 들었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그는 인터넷만 고집하는 공무원들과 싸우기도 한다. 그 영화를 봤을 때는 참 슬펐었다. 하지만 내가 그 원리원칙만 따지는 공무원이 된 것 같았다.


조금만 알면 연말정산이나 복지의 혜택을 받는 것이 점점 편해지고 있다. 지금 세대에게는 참 편한 일이, 아버지 어머니 세대에서는 포기해야 하는 ‘낯섬’과 ‘어려움’으로 변했다. 그 어려움을 먼저 헤아려주고 먼저 다가갈 걸 하고 후회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먼저 손 내미는 딸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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