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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기 Feb 01. 2021

‘도시락’이다. ‘다이어트 도시락’이 아니다.

나는 곧 45kg다. 아브라카다브라.


'도시락'이다 '다이어트 도시락'이 아니다.


자취를 할 때, 다이어트를 했다. 물론 365일이 다이어트 기간이기는 했다. 다이어트를 할 때 나는 냉동 도시락을 먹었다. 299kcal가 안된다는 도시락부터, 마라토너가 먹는 도시락까지 다양한 종류를 먹어봤다. 도시락을 먹으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무슨 음식을 먹을지 고민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 냉장고에 있는 도시락을 3분에서 5분가량 돌린다. 그동안 옷을 정리하고 세수를 한다. 그때쯤이면 날 위한 식사가 준비 된다. 먹는데도 얼마 안 걸린다. 양이 적다. 대부분의 구성은 연근-현미-귀리 등등의 잡곡 밥, 브로콜리 데친 쭈꾸미 같은 반찬, 닭가슴살이나 오리고기 소시지 등이 들어있다. 주로 닭가슴살을 다양하게 다른 모양으로 만든 고기류와, 약간의 반찬, 곡물과 함께 조금 들어있는 밥이 다이어트 도시락의 구성이다. 그리고 소스가 따로 제공된다. 소스를 찍어먹으면 25kcal가 더 찐다는 설명도 있다. 물론 나는 꼭 소스를 찍어 먹었다. 먹으라고 줬는데 먹는 것이 미덕이다. 한국인은 정의 민족이다. 정의 민족으로 태어나 너무 거절하는 것도 인간미가 떨어진다. 다이어트 도시락은 설거지도 아주 간단했다. 물로 플라스틱의 용기를 씻기만 하면 된다. 세제도 없이 양념들만 씻어서 플라스틱 쓰레기에 넣기만 하면 끝! 참 간단했다.


다이어트 도시락은 비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인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인 식품이다. 합리적인 양, 가격, 시간, 뒷처리! 가성비, 가심비, 시간절약 전부 최고다. 나는 도시락을 ‘약’처럼 빠르게 먹고 삼켰다. 결혼전까지는 이 도시락으로 체중관리를 했다.


결혼을 하고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냉장고에 여러가지가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온 음식들, 그리고 부모님들이 챙겨 주신 반찬들이 있었다. 반찬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했다. 안 먹으면 썩서 버려야 했는데 그건 너무 속상했다. 반찬과 함께 끓이기만 하면 되는 국들을 사서 밥을 먹었다. 때로는 나가서 먹기도 하고 시켜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이어트 도시락과는 멀어졌다.

 

달콤한 신혼생활과 풍성한 식도락의 세계, 그리고 이어진 집콕과 무운동의 세계. 코로나 19는 매주 가던 운동을 방해했다. 매주 가던 요가를 갈 수 없었다. 나는 비를 맞이해 한껏 자라나기를 기다린 새싹들처럼, 먹는 족족 찌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발생한다는 확.찐.자, 그게 나였다. 씻기 위해 옷을 다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이전에 본 뉴스가 떠올랐다. 인근 산속에서 멧돼지가 탈출해 감자탕 집으로 들어간 사건이었다. 무시무시한 멧돼지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뉴스 속 현장이 내 눈앞에 있었다. 음, 나는 인간이다. 멧돼지로 살수는 없다. 결국 옛 연인에게 문자를 보내 듯, 쿠팡 구매내역에서 한참 아래로 내려가 다이어트 도시락을 다시 구매했다.


저녁은 남편과 함께 먹어야 하니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었다. 출근을 하면 마법의 가루가 뿌려진 듯 너무 배가 고프거나, 너무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다. 누군가 자리에 앉지 못하게 마법가루를 뿌려 놓았나 보다. 마법에 빠진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배고픔에 허겁지겁 도시락을 먹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남들과 같이 도시락을 먹는 것도 금지되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먹는둥 마는둥 도시락을 빠르게 비웠다.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이 싹싹 비웠다. 하지만 3시에서 4시쯤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허기짐과 화가 밀려왔다. 커피를 마시며 참아내기는 했지만 ‘내가 뭐 하려고 이러나’ 라는 기분에 서러움이 밀려왔다. 동료가 뭐 하나 물어보면 짜증을 냈다. “제가 메일 보냈잖아요!! 읽어보세요!” 화를 내는 내모습은 흡사 조금 헬쓱해진 멧돼지였다.


저녁에 집에 와서는 또 많이 먹었다. 남편은 다이어트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다이어트 도시락 먹으니 너무 배고파..”

“그래 이제 다이어트 도시락이라고 하지 말고 도시락이라고 해”


이 네이밍의 근원은 이렇다. ‘도시락’ 이라는 말은 연인과 처음으로 소풍 가는 날 김밥을 싸갈지, 간단히 샌드위치를 도시락으로 싸갈지 고민하며 준비하는 음식이다. 그런 소풍지의 바람처럼 설레고 달콤한 말이다. 그런데 ‘다이어트’가 붙으면 왠지 도시락의 성격이 궁색해지고, 구성이 변변 찮아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더라도 그냥 ‘도시락’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도시락’의 사랑스러움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브랜딩이고 네이밍이다. 사실상 ‘도시락’ 이라는 말로 풍성한 한끼 식사를 먹었다고 자신을 속이자는 거였다. ‘내복’을 ‘히트택’이라고 부르듯 말이다.


결국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 멧돼지는, 그리고 말빨이 딸리는 멧돼지는, 이 초라한 ‘다이어트 도시락’을 그냥 ‘도시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나는 도시락을 렌지에 돌리고 도시락의 돌아가는 모습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어둡고 네모난 지하실 같은 곳에서 주홍빛 불빛을 받으며 혼자만의 댄스브레이크를 즐기는 ‘도시락’. 뜨끈한 몸을 밖으로 꺼내 쭈글쭈글해진 비닐을 벗겨내니 한껏 멋스러워 보이는 ‘도시락’. 닭가슴살의 고기내음을 커피향처럼 맡으며 ‘도시락’을 음미하며 먹었다. 마치 ‘도시락’을 처음 먹는 사람처럼.


자기 합리화를 통해 내 배와 뇌를 속이고자 했으나. 3시경 회사 동료들과 떡볶이 내기 사다리타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기합리화와 세뇌로 몸을 속이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21년 초 또다시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이건 풍성한 도시락이다. 참자. 이건 배가 든든한 도시락이다. 참자. 나는 멧돼지가 아니다. 나는 곧 45kg다. 아브라카다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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