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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Jan 31. 2021

손소독제 뿌린 오뎅을 드셔보셨나요?

아는 척하기 전에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남편과 지하철 통로를 걸어가다 어묵집을 발견했다. 살짝 출출했던 우리는 오뎅을 먹고 가기로 했다. 나는 매콤한 고추 오뎅을, 남편은 매운 걸 못 먹어서 치즈 오뎅을 골랐다. 종이컵에는 얼큰한 오뎅국물도 담았다. 한 손에 오뎅국물, 한 손에 오뎅을 들고 바형태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매운 오뎅과 달리 소스가 없는 오뎅을 먹고 있는 남편을 위해, 식탁 위에 있던 분무기를 건넸다. 


“간장 뿌려서 먹어” 


분식점이나 오뎅을 파는 포차는 분무기에 간장을 담아 두는 곳이 종종 있었다. 종지에 덜어 찍어 먹는 수고도 덜하고, 분무하면 오뎅 위부터 아래까지 간장이 골고루 퍼져서 먹기 좋았다. 이 집도 분무기 간장을 택했나 보다. 누가 처음 생각했는지 몰라도 참 좋은 생각이다.


남편은 의심 없이 분무기를 들어 오뎅에 뿌렸다. 그런데 까만 간장이 아닌 투명한 물체가 오뎅에 퍼졌다.


“엥 뭐지?”

“왜 간장이 하얘?”


이제 몸에 좋은 하얀 간장이 나왔나? 생각하며 분무기를 들어보니 분무기 뒤쪽에 [압소 크린]이라는 글자가 크게 보였다. 매장 내에 고객들 쓰라고 비치한 손소독제였다… 내가 손소독제를 간장인 줄 알고 착각해서 준 것이었다. 의심 없이 나를 믿던 남편은 눈 옆이 길어졌다. 소독제 옆에는 버젓이 간장종지와 순대 소금이 있었다. 그는 멀쩡한 간장 종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간장 용기인 줄 알았다..
나는 속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너를 왜 믿었을까 매번 번번이 속으면서!

저렇게 간장도 있는데, 소독제를 뿌리라고!”


나는 내 오뎅을 먹으라고 건네줬지만, 남편은 매운걸 어떻게 먹냐고 날뛰었다. 남편은 삐졌다. 오뎅을 하나 더 사준다고 했지만 관두라고 했다. 남편은 오뎅을 1/3도 안 먹은 상태라서 버리려고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다.


“아니야, 내가 소독제 오뎅 먹고 죽으면 돼...”

“오빠 미안해. 그리고 아직 혼인신고 안 했으니까 죽으면 안 되지!”


나는 잠깐 소독제가 뿌려진 오뎅을 먹으면 정말 죽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삐진 남편을 달랬다. 씻어 달라고 하기도 뭐해서 먹다 만 소독제 오뎅은 종이컵에 담아 내버려 두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을 하려고 가는데 아주머니가 “어이구, 왜 다 안 드셨어요?”라고 했다. 우리의 실랑이를 못 보신 모양이었다. 저 큰 덩치들이 각자 오뎅 하나도 다 안 먹었다니 이상해 보일 거다. 남편은 나와서 “네가 나와 저 아주머니를 상처 입혔어. 저 아주머니는 자신의 음식 실력에 의문을 가지겠지” 라고 농담 투로 나를 나무랐다.


나는 종종 잘 알지 못하면서 뭔가를 추천하거나 알은 체를 하는 과오를 범한다. 예전엔 모르는 흑인 배우를 언뜻 보고 “윌 스미스 아니야?”라고 했다가. “너는 흑인이면 다 윌 스미스냐”라는 구박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윌 스미스가 아니었다. 인종차별을 하려는 마음은 아니고 정말 헷갈렸다. 그리고 “송지오”라는 패션 브랜드를 언뜻 보고 “런닝맨 송지효 씨가 옷도 냈네. 다재다능하다.”라고 해서 또다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남편은 이 두 가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는 경우’ 라며, “윌 스미스와 송지오” 사건으로 뽑았다. 


이번 <손 소독제 뿌린 오뎅 사건> 은 “윌 스미스와 송지오” 사건을 이겼다. 남편은 너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태도'가 이번에는 본인을 죽일 뻔했다며, 비난과 비약에 박차를 가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남에게 뭔가를 추천하거나 아는 척하기 전에 다시 한번 더 확인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또한 이런 작은 헤프닝으로, 코로나 19가 일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손소독제가 식탁 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닿는 물건들이 다 코로나 19와 연관 되게 변했다. 나는 분무기를 이전과 같이 안일하게 물이나 간장 뿌리개로 대했으나, 그들은 이제 코로나 방역 용기로 변했다. 직무가 바뀐 분무기를 보며 평소의 경험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 이 글을 쓰다가 ‘소독제를 먹어도 되는지’를 찾아봤는데요. 알코올 성분이므로 손에 뿌린 후 음식을 먹은 경우 완전히 날아가고서 먹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먹으면 구토, 복통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뎅은 씻더라도 먹으면 안 되겠죠? 오뎅보다 더 비싼 음식이었다면.. 정말 아까울 것 같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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