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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15. 2021

코끼리 똥 냄새 그만 맡고 퍼뜩 가자

시간이 지나도 시작되지 않는 쇼에 할머니는 분통을 터뜨리며 외쳤다.


“더운데 코끼리 똥 냄시 그만 맡고 후딱후딱 가자!”


2012년의 여름 우리는 태국의 한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시작되지 않는 쇼에 할머니는 분통을 터뜨리며 외쳤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족 모두 힘들어지고 있는 참이었다. 손부채로도 해결되지 않는 더위, 할머니의 짧은 머리 사이로 흘러내리던 땀과, 입을 삐쭉 내밀며 “퍼뜩 가자!”라고 크게 외치던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기억이 난다. 나와 동생은 웃었다. 주변에 관광객들은 아마 할머니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거다. 엄마만 당황해서 “엄마 이제 금방 해 금방! 아유 주책이야.”라며 할머니의 입을 막듯 얼음물을 건넸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할머니가 걱정되는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음식점에 가서도 우리 가족은 애를 먹었다. 외할아버지는 해외여행 때마다 몰래 소주를 가져왔다. 페트병에 소주를 담아와 물인 것처럼 위장해 물컵에 몰래 따라 드셨다. 나는 종업원이 오나 안 오나 눈치를 보면서 할아버지의 음주를 도왔다. 한 번은 종업원이 물도 매장 것을 사 먹어야 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눈치를 채고 말했으리라. 할아버지는 “오케이 쏘리 쏘리”라고 말하며 엄마에게 물을 누가 사 먹냐고 외국 놈들은 미개한 놈들이라고 욕을 했다. 


가족끼리 마사지를 받으러 갔을 때는, 손녀뻘 되는 마사지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 같은 어린 아가씨들에게 마사지를 받기가 민망하셨나 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몸을 누르니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냈다. 아가씨는 “세게요?”라고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한숨만 내쉬셨다. 할아버지는 기어코 일어나셨다.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마사지사의 손에 쥐어줬다.  “그만하소.. 아가씨 힘드네.. 그만하소.” 나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괜찮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이 사람은 이게 직업이에요~ 그냥 마사지받으세요.” 달래고 설득하며 할아버지를 다시 눕혔다. 할아버지는 “아이고.. 힘들어서 어쩐다.” “아이고오..”라고 넋두리를 하시면서 마사지를 받았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몸을 주무르던 청소년 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마사지들은 킥킥댔다. 나는 부모님이 경비를 대준 비싼 마사지 1시간을 이렇게 실랑이하며 낭비하는 게 아쉬웠다. 나는 남은 시간이라도 최대한 마사지를 받아볼 요량으로 아가씨에게 말했다. “세게.. 세게!”


가족이 함께 갔던 여행지는 관광지보다는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전까지 내게 할아버지의 이미지는, 엄마의 말마따나 마을의 훈장님이었고 교양이 넘치는 분이셨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투박하고, 억센 노인이었다. 


지나와서는 그런 민낯을 마주하려고, 가족끼리 함께 여행을 떠났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만나면, 투박하고 솔직한 모습이 나온다. 나는 명절 때 만나는 어른들의 인자한 모습 외에는 그런 얼굴을 볼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함께 가지 못하는 여행을 떠올리며, 그런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재정적 심리적으로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이 들어 고마워진다.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른 듯 가슴 언저리가 묵직한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나도 언젠가 그런 추억을 만들어줄 나날을 계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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