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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14. 2021

술 : 음주예찬, 다정한 재시작

술은 다정하게 다가와서 마사지하듯 나긋나긋하게 몸을 풀어준다.



음주 예찬 - 술을 마시는 이유



아침에 출근을 하고, 같은 경로로 걸어가고, 같은 사람들과 만난다. 가끔 누군가가 평소와 다른 복장을 입고 와서 주목을 얻는다. 회사의 빌런들이 사고를 치고, 이를 욕하며 하루가 시작된다. 컴퓨터를 켜고 매일, 매주, 매월 하던 일을 한다. 오늘이 14일인 것을 확인하면 문서 파일 맨 뒤에 _210214을 붙인다. 2.1.0.2.1.4 한 자 한 자 타이핑하면서 느낀다 ‘정말 평화롭고 지겹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신다. 


"권태가 두려운 사람은 일을 저지르고, 허무가 두려운 사람은 모범적으로 행동하려는 거예요. 여기에 행복과 쾌락에 관한 것도 비슷해요. 제가 볼 때 행복은 반복에서 오는 것 같아요. 반면에 쾌락은 일회적인 것에서 오고요. 그런데 작고 반복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은 권태예요. 반대로 강하고 일회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이하는 것은 허무죠." (이동진의 빨간 책방 ) 

 

나는 저 말을 깊이 동감한다. 인생은 권태와 허무 사이에서 진자 운동이다. 20대에는 권태가 두려워 일탈을 꿈꿨다. 권태를 날리기 위한 술은 양이 많았다. 웃음소리가 높아지고, 음악소리가 높아지고, 모르는 모든 이가 소중한 사람으로 변한다. 술을 마시고 모르는 사람과 비밀 얘기를 하기도 하고,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엄청나게 무례해지거나 상당히 가벼워질 수 있다. 그러나 속 쓰림과 텅 빈 지갑이 후유증으로 찾아온다. 술자리에서 소중해 마지않던 그들의 이름조차 희미해진다. 별거 없다는 허무함도 손님처럼 찾아온다. 물론 그런 일들은 한동안 소소한 기억 거리가 된다. 그런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동경만 남고, 실체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잠깐이다. 즐거움은 길지 않다는 것을 아는 과정을 거친다. 글을 쓰고 느끼는 벅참,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의 기쁨, 가족들과 정을 나눈 행복. 이런 기쁨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 행복감을 주는 반면, 술을 많이 마시고 느끼는 즐거움은 짧고 휘발적이었다. 

 

 그래서 허무감을 피하기 위해 권태를 잊기 위해 일탈 대신, 적당한 술을 택한다. 술은 다정하게 다가와서 마사지하듯 나긋나긋하게 몸을 풀어준다. 술은 매일 만나는 일상적인 일들도 처음처럼 느끼게 해 준다. 술을 마시면 호기심이 생기고, 감정이 고양된다. 작은 웃음이 생겨도 썰물이 밀려온 듯 웃을 수 있다. 처음 탄산음료를 마시고 눈이 동그래지는 아이처럼, 눈앞의 음식이 갑자기 낯설게 맛있어진다. 눈 앞의 친구가 이산가족처럼 반갑다. 눈이 맑아진다. 눈앞에 있는 사물과 사람과 흘러가는 말을 집중하게 할 수 있는 맑은 시야. 모든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하게 볼 수 있는 시각. 술은 다정한 위로와 재시작을 할 수 있는 기운을 준다. 물론 이는 적당히 먹었을 때이다. 너무 과음하게 된다면 소중한 기억을 다 잊어버리게 되어 후회하게 된다. 20대 때 느꼈던 허무함을 다시 되풀이하게 된다.   

 

비단 술뿐 아니다. 산책을 하거나, 노래 듣기, 만화책 보기 이런 삶의 소소한 소확행들이 쌓였다. 그중 하나로 술을 적당히 마시는 것을 택한다. 혼술 또는 친구들과의 적당한 술자리를 통해 나는 작은 일탈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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