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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25. 2021

이제 실수해도 괜찮아, 엄마

머리 위 주홍빛 가로등 불빛과 이를 맴돌고 있던 날벌래들만 기억난다.



이제 실수해도 괜찮아, 엄마


 집에 오면 주식 티비가 틀어져있다. 화면은 온통 빨간색과 파란색이다. 알아듣지도 못할 기업들의 이름을 사회자가 말한다. 나는 그 채널에는 관심이 없다. TV에서 하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지만 엄마는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엄마는 “저게 다 돈이야 얘”라고 말한다. 나도 같이 앉아서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를 들어본다.


 엄마는 내가 어릴 적 직업이던 유치원 선생님을 그만두셨다. 어릴 때 동생과 어린 나는 집 앞까지 나와 가로등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괴로움 같은 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 위 주홍빛 가로등 불빛과 이를 맴돌고 있던 날벌래들이 생각난다. 엄마는 추운데 왜 기다리냐며 우리를 꼭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셨다. 엄마는 어린 우리가 마음에 걸려 일을 그만두셨다. 엄마는 지금도 그런 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벌레만 기억나는데


 그 후 엄마는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유치원 선생님, 음식점 서빙, 요구르트 아줌마, 집에서 하는 각종 부업, 백화점 판매원 등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2,3월이면 집은 초콜릿 향으로 가득했다. 반짝이는 포장지와, 긴 모양의 크런키 초콜릿이 집에 있었고. 엄마와 어린 동생 나는 앉아서 초콜릿을 포장지로 감쌌다. 엄마는 아이들이 일하는 게 싫었던지 한사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건 게임같이 재미있었다. 우리는 자원해서 초콜릿 싸기에 동참했고, 초콜릿이 부러진 경우 입안으로 쏙 넣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받을 수 있는 돈은 20원씩 깎였을 것이다.


나와 내 동생의 자격증을 합쳐도 엄마가 가진 자격증의 숫자에는 대지도 못한다. 한식, 양식, 일식 조리사에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다. 엄마는 오래 하던 백화점 판매원을 다리가 아파서 그만두셨다. 이후 딴 요양보호사 자격증으로 어르신들을 도와드린다고 하셨다. 엄마는 어르신들이 진상고객 대비 상대하기 편하다고 생각하셨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어르신들은 힘이 세고 상대하기 힘들었다. 엄마는 그 일을 오래 하지 못했다.


지금은 베이비 시터로 일하신다. 잘 울기는 하지만,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엄마에게 기쁨과 행복을 더 많이 가져다준다. 엄마는 아기의 움직임 하나에 대견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소음으로 가득 찬 지난날을 작은 존재가 씻어준다고 생각하면 고맙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내가 결혼했을 때도 엄마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묵묵히 할 일을 다 끝내시느라 바빴다. 나중에 엄마 내 결혼인데도 안 울었어?라고 말하니 뭐가 울 일이냐고, 아들 하나 생긴다며 기쁜 일이라고 하셨다. 


반면, 기억에 남는 엄마의 눈물이 있다. 샤인 머스캣을 보냈는데 엄마가 “사이먼 머스크 잘 먹을게”라고 카톡을 보냈다. 일부러 이게 뭘 말하는지 알면서 물어봤다. 


“사이먼 머스크가 뭐야?” 

“이거 네가 보내준 거”

“엄마 샤인 머스캣이야 카톡 좀 똑바로 쳐.. 남들이 모른다고 뭐라고 해.”


엄마는 그렇게 말할 거면 선물도 보내지 마라 라고 화를 내고 그 뒤로는 카톡에 답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가족들이 다 마주 앉았다. 예민하게 왜 그러냐는 내 말에 엄마는 갑자기 타박하지 말라고 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엄마의 감정이 그 정도인 줄은 몰라 당황했다. 아니 샤인 머스캣을 말하지 못하는 일이 이 정도로 속상한 일인가. 고치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며, 별거 아니라며 위로했다.


“너는 그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나는 자꾸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아. 그게 얼마나 속상한 줄 아니?”


샤인 머스캣을 틀리기 말하는 것은 단순히 실수가 아니라, 그녀에게는 자신감의 문제였다. 말할 수 있는 단어가 줄어드는 것이 성취의 불능과,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인 것이다. 엄마가 엄마로 변한 23살, 지금 생각하면 미쳐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나이다. 엄마는 그런 어린 나이에 혼자의 힘으로 여러 개의 직업을 거쳐왔다. 누구의 도움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하나 성취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에 꾹꾹 원한이 쌓여가는 기분일 거다.


아빠는 그런 엄마를 위로하듯 나이 먹으면 원래 그렇다며 받아들이라고 했다. 동생은 옆에서 엄마가 더 노력해서 외울 생각을 해야지 왜 누나를 타박하느냐고 했다. 나는 그저 더 이상 이런 엄마의 틀림을 따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갔던 그녀의 인생을 알고 있다. 그런 모습을 존경한다. 나는 절반도 따라 하지 못할 거다. 이제는 무언가를 많이 책임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실패해도, 틀려도 되니 더 많이 말씀하시라고 말하고 싶다. 


미끄러지고 올라가며 춤추는 그래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엄마 저 돈 다 잃으면 어떻게 할 거야. 엄마 예상이나 공부가 틀릴 수도 있잖아 라고 묻는다. 안경까지 쓰고 화면에 몰두하던 엄마는 저게 다 ~ 돈이지만 뭐 어쩔 수는 없지 라며 살짝 미소 짓는다. 그래 엄마 잃으면 내가 줄게 이제 뭐든 재미있게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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