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지은 Feb 21. 2021

글 : 글로서 다정함을 내어주고 싶다

더운 여름 목이 말랐다. 직장을 그만둔 2015년 여름 카페로 출근한다.


글 : 글로서 다정함을 내어주고 싶다.


더운 여름 목이 말랐다. 직장을 그만둔 2015년 여름, 나는 카페로 출근했다. 집에만 있기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에어컨을 켜고 있기에는 나올 전기세가 아까웠다. 도착하여 익숙하게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자주 앉는 창가 자리에서 그날의 숙제를 펼쳤다. 


수요일마다 홍대에서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매주 글쓰기 숙제가 있고 써온 글을 서로 보며 평론해주는 방식이었다. 그전까지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선생님은 이런 말도 하셨다. “이름을 넣고 쓰거나 ‘나’라고 하고 쓰지 말고 객관적으로 써봐요, 객관화가 안되니까 감정에 빠져서 글이 너무 주관적으로 흘러요.”


그래서 이번에는 자기 얘기를 하되, 주인공을 ‘그녀’로 지칭해서 쓰기로 했다. ‘그녀는..’으로 시작된 문장이 점차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번 과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감동했고 술술 읽혔다는 평가가 있었다. 우쭐하고, 부끄러우면서도 기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고 말했다. 꼭 책을 내지 않아도, 모두 작가라고 말했다. 글을 쓰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면 ‘작가’라고 했다. 그 말이 깊게 남았다.


수업이 종료되고도 몇몇 사람들끼리 뭉쳐 글쓰기를 계속했다. 그러다가 ‘글쓰기 전시’를 하기로 했다. 장소를 알아보고 대관료를 걷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전시 장소를 기획했다. 18년 가을 우리는 전시를 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약속시간에 늦거나 과제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고, 서로의 의견이 달라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글을 내보이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전시 장소의 맨 앞쪽에 각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작성하기로 했다. 나는 이런 글을 썼다.


 <<마음속에 반짝임이 넘쳐흐를 때. 고통에도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좋은 글에 닿을 때, 그때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렇게 매달리듯 단어를 쓰고 나면 허무감도 들고 읽어보면 정제가 되지 않아 한심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쏟아내고 만다. 본능적인 마음으로 글을 썼대도. 글을 쓰고 나면 남을 조금 멀리 볼 수 있게 되고, 나의 이면을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는 나를 위해 쓴다. 그래도 정말 바라는 것은 나의 예민함이 활용되는 것이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미세먼지 같이 짜증스러운 사람이 아닌. 내리깔고 앉음에도 따스하게 감싸줄 수 있는 온열시트 같은 온기가 되고 싶다. 글로서 내 민감함을 포장하고 싶다. 위로를 잘 못하고, 고마움도 가까스로 표현하는 소인배 같은 내가. 내 마음속 상냥함을 글로 내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 벅찬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글로서 감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3일간의 짧은 전시, 가족과 친구들이 방문해주었다. 이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사람은 아무와도 연고가 없이 방문한 남자였다. 그는 우연히 전시에 온 것 같았는데 천천히 2시간 정도 글을 읽고 갔다. 작은 공간에 많지 않은 전시물을 사려 깊게 읽어주어 깊이 감동했다. 


전시를 마치자, 오래된 노래인 ‘연극이 끝나고 난 뒤’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가사에서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허무함과 조용한 정적을 다루고 있다. 그런 허무함만 남아있는 것 같지만 가슴속에서는 허무함과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벅찬 마음이 차오른다. 그리고 또다시 경험하고 싶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며칠 동안은 멍한 느낌이었다. 전시를 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또 전시를 하자, 아니면 책을 내보자 라는 약속을 했다.


회사에 다니고, 결혼도 하고, 자녀로서의 노릇도 하고, 내게는 여러 가지 의무와 직책이 있다. 그래도 나는 마음 한편에 내가 ‘작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 수업시간에 잘한다고 인정을 받아 좋아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좋아한다고 생각을 한 게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하나의 동력이 된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떠올려보면 계속 쓰면서 살아왔다. 


남자 친구와 행복한 순간에 나중에 일기를 썼고. 부모님과 싸운 감정을 글로 남겼다. 회사에서 겪은 일도 기록했다. 책을 한 권 낸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알지만 그래도 쓰고 싶다.


달과 6펜스라는 책에서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중계인으로서의 삶에서 빗겨나가 갑자기 그림을 그린다. 왜 그런 삶을 택했냐는 질문에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라고 말한다. 


물에 빠져서 헤어 나오는 욕망만큼 글을 쓰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껏 이렇게 해이하지는 않았으리라. 내게 쓰고 싶은 갈증은 더운 여름에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다. 더워지지 않으면 목이 마르지는 않을 정도로 게으르다. 더위가 엄습하듯 무슨 사건이 돋아나면 하나 둘 적고 싶어 진다. 지금 내게는 넘치도록 마실 수 있는 젊음, 건강이 있다. 그럼에도 막상 펜을 들면, 노트북 앞에 앉으면, 컵이 텅 빈 듯 막막하다. 뭘 쓰면 좋을지 막막하다. 그래도 내게 의미 있던 것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보려 한다. 내 마음속 상냥함을 글로 내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 마음속 벅찬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글로서 감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계절이 주는 다정한 약속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