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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27. 2021

드립으로 분위기를 해장해요

발이 크면, 손 대신 발 잡고 다니면 되죠.


드립으로 분위기를 해장해요


“저 발이 되게 큰 데.. 샌들 신고 가면 놀라실걸요”

“그럼 손 대신 발 잡고 다니면 되죠.”


연애 때 나눴던 수만 개의 카톡 중 하나다. 발에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던 남편은, 이 말을 듣고 부담감을 덜었고 내게 매력도 느꼈다고 했다. 지금도 결혼해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하면 '재미있다.'라고 한다. 우리는 하루하루 배가 째지도록 웃는다. 


퇴근 후, 나는 문을 열고 “이리오너라! 배가 고프다.” 외친다. 남편은 밥통으로 돌진하는 나를 보고 “감자탕집에 침투한 멧돼지” 같다고 표현한다. 주변의 <로맨틱, 성공적>으로 살아온 지인들은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사냐고 묻는다. ‘남편 애정이 식은 거 아니냐.’ ‘남편이 너무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한술 더 떠 감자탕집에 침투한 멧돼지를 흉내 낸다. (어떻게 하냐고요?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남편이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서 입을 손으로 막으면, 그는 혀로 손을 핥는다. (코로나 19 시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입니다.) 윗몸일으키기를 하다가 부적절하게 튀어나온 내 방귀소리에 남편은 “3.2.1 발사!”를 외친다. 내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해서 벨소리로 한 적도 있다. (막상 적다 보니 부아가 치미네요) 이런 소소한 장난과 드립으로 우리의 연애와 결혼생활이 이루어져 있다, 매일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니 기쁘다.


회사에서도 많은 순간을 유머로 넘긴다. 


“회사 상사가 나한테 야! 이렇게 부르는 거 있지.. 요즘 시대에”

“그러게 호! 하고 대답해줘.” 


이런 남편의 부장님 같은 개그도 가끔은 좋다. 대들라든가 녹음하라든가 아니면 맞서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웃어서 상사를 나름의 방식으로 욕보인다. 그다음에 그가 나를 또 “야”라고 불렀을 때 나는 속으로 “호” 했다. 언제는 “2시에 너랑 나랑 미팅하자”라고 반말을 하길래 속으로 담에는 “아 너랑 나요?” 이렇게 받아치는 상상을 하며 웃었다. 그런 생각으로 혼자 피식하다 보면 분노가 좀 줄어들고 복수한 기분이 든다. 


때로 미팅 시에도 작은 드립을 준비한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부장님 회사 로고가 초록색 이잖아요? 그래서 저 오늘 초록색 옷 입었어요.” 이런 농담을 싫어한 사람은 여태껏 보지 못했다. 미팅을 온 거래처에 커피를 드리면서 “커피 한잔 드릴게요, 이게 스페셜티 커피라 농장에서 한 알 한 알 따서 온 거랍니다.”라고 장난을 친다. 그러면 웃으시는 분도 있고 “아 이게 한알.. 한알.. “ 하며 감탄하는 분도 있다. 나는 후자가 더 웃기다. 어떤 반응이든 이런 대화로 분위기를 풀면 손해 볼 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천하장사 마돈나”이다. 이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와 ‘드라마’이다. (*글 내용 중 천하장사 마돈나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동구는 여자가 되고 싶은 씨름선수이다. 동구는 씨름대회 상금인 5백만 원을 타 트랜스젠더 수술비에 쓰려고 씨름부에 들어간다. 나는 여자가 되고 싶다는 남자아이가 씨름을 한다는 어울리지 않는 모순이 좋다. 씨름대회의 최종 결승에서, 상대방은 동구의 점에 난 털을 보고 풋! 웃다가 힘이 풀려버리고 만다. 다리의 힘이 풀려 쓰러지고 결국 동구는 우승을 한다. 실력의 부족이나, 힘의 판가름으로 나는 결말이 아니라. 작은 웃음을 통해 승리의 원인이 되는 결말이 무겁지 않고, 지혜롭다. 

 

인생은 너무 괴롭다. 하루하루의 무게가 과하다. 삶은 괴로운 게 기본값이다. 돈벌이는 특히 그렇다. 이런 삶 속에서 유머가 있어 그나마 어깨 힘이 풀린다. 드립이 있어 다행이다. 전날의 숙취가 해장국으로 시원하게 풀리듯이 유머는 어려운 분위기를 녹인다. 딱딱한 관계를 물렁하게 풀어준다. 웃음이 있어 좀 더 다정해질 수 있다. 나는 평소 진지충이지만, 누군가 드립 버튼을 눌러주면 언제든 기다렸다는 듯 되받아친다. 앞으로도 더 재미있고, 가볍고, 다정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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