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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Feb 28. 2021

다정함이 인정되는 날 '생일'

‘생일자’로 알람이 뜨면 그와의 인연을 되돌아보게 된다.


다정함이 인정되는 날 '생일'


 어릴 적 어머니는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셨다. 평소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생일은 모두가 앉아 밥을 먹었다. 엄마는 학교에 등교하는 아이들과,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5시부터 일어났다. 


압력밥솥으로 해서 더 고슬고슬하고 맛있는 새 밥. 푹 고아 부드럽게 찢어지고 달짝지근한 맛이 입 안에 감도는 갈비찜. 참기름의 향이 고소하고 간이 슴슴해서 숭덩숭덩 넘어가는 미역국. 짭짤한 콩나물 무침, 아삭아삭한 시금치, 쫄깃쫄깃한 고사리. 당근 양파가 오밀조밀 박혀 있고 폭이 두툼한 계란말이. 나는 졸린 눈을 겨우 떠 거하게 차려진 상 앞에 앉는다. “아 꼭 생일 아침에 고생스럽게 밥해 먹지 말고 그냥 밤에 외식해.” 볼멘소리를 한다. 그래도 한술 뜨고 나면 눈이 슬슬 떠지고 침이 고인다. 숟갈이 계속 가서 결국 “엄마 더 줘.”라고 말하는 아침. 가족 모두가 머리도 안 감은 채 다들 생일밥을 먹고,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른다. 생일 아침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게 우리 가족의 행사이고 추억이다.



얼마 전, 결혼 후 남편의 첫 생일이었다. 남편은 생일에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코로나로 외식도 꺼려진다고 했다. 깐풍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퇴근 후에 시켜 먹자고 얘기했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하고 출근을 했다. 남편이 오늘 생일이라고 하자 우리 엄마부터 회사분까지 모두 “미역국”을 끓여줬냐고 물었다. 우리는 평소 아침을 함께 먹지 않고, 그래서 나도 저녁에 함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미역국 먹었냐’는 질문을 듣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엄마가 차려준 생일밥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저녁에는 미역국을 끓여 먹고, 남편이 먹고 싶었다는 깐풍기를 시켜 먹으며 보냈다.



새로운 가족인 남편과의 생일 이벤트로는 <책 선물>이 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6년 동안 생일에 서로 책 선물을 주고받았다. 기억에 남는 책은 ‘스님의 주례사’ ‘달과 6펜스’ 다. 책을 주며 앞장에 우리는 서로를 위해 편지를 쓴다. ‘달과 6펜스’ 앞 장에 남편이 적어 준 ‘너는 나의 달이자, 6펜스야’라는 편지가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지나 선물을 받은 것도 잊었을 때, 책꽂이에서 책을 펼쳤다가 우연히 메시지를 만나면 반갑다. 매년의 메시지가 조금씩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다정한 메시지로 시작한 독서는 더욱 소중한 느낌이 든다. 앞으로의 생일날 얼마나 또 많은 책을 만날까.



어릴 적 든든하게 먹어온 생일 아침밥이 단전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있어, 나이를 먹는 속 쓰림을 완화시켜주는 것 같다. 그런 추억이 내게 기억에 남기에, 앞으로 남편과도 <생일에는 아침밥 먹기> 문화를 이어가야겠다. 책 선물 이벤트도 계속 해 갈 생각이다. 책 안의 문구를 새기고, 글처럼 나이를 먹고 한 해를 보내자 소망하게 된다.   



최근에 맞은 소중한 사람들의 생일도 코로나 19로 만나지 못한 채, 기프티콘을 주고받은 추억뿐이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아쉬워도 멀리서 보내는 게 현명하기는 하다. 그래도 그 날 하루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가깝거나 멀어진 사람들 모두 ‘생일자’로 알람이 뜨면 그와의 인연을 되돌아보게 된다. 요즘은 꼭 선물을 하지 않더라도 축하 메시지라도 보낸다. 생일 초대장 없이도 다정하게 축하해주려 한다. 조금 멀어진 관계라도 서로 간의 다정함이 인정되는 날인 생일, 잊지 말고 나와 만난 이들에게 다정을 퍼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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