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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r 01. 2021

나를 결혼하게 한 말, 퇴사하게 한 말

누군가 “누구 씨 결혼 안 해?”라는 말을 했다면, 남이사라고 했을 거다


나를 결혼하게 한 말, 퇴사하게 한 말


“내가 지금 00살이잖아요, 그러면 20년 뒤의 부모님의 나이를 생각하게 되고, 그때 나는 어떤 가족의 모습으로 있고 싶은 지 생각해보니,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회사를 퇴사한 한 과장님이 회식자리에서 한 말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과장은 젊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 전에는 자유롭게 많은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지금의 와이프에게는 자주 꽃을 사 가고, 애피타이저부터 메인디쉬까지 상을 차려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자유로운 남자에서 환골탈태하여 일등 남편이 되었을까 궁금해서 왜 결혼을 결심했냐고 물어봤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를 계획해봤다고 했다. 자신의 삶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나이, 아이를 가져야 할 나이, 은퇴 계획 등을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여자 친구였던 자신의 와이프를 사랑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쯤이면 결혼을 해도 좋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티브이 속 한 연예인은 첫 만남부터 와이프가 반려자라는 것을 운명처럼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게는 그런 확신이 없었다. 당시 나는 29살, 20대의 마지막 나이였다. 남자 친구와 4년 이상 만났으니 결혼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딱히 결혼을 해야 할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하늘에서 계시라도 주듯 바스락거렸으면 눈치챘을 텐데 작은 짤랑 임도 없었다. 딱히 결혼을 언제쯤 해야겠다는 로망도 없었다. 그러다가 과장님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이는 교과서에 나오던 인간의 ‘생애주기’였고, 나도 따져보기 시작했다.


나, 남편, 부모님, 시부모님의 나이 이런 생각을 하니 슬슬 결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나이가 어느 정도 되기 전에 손주를 보여드리는 게 좋겠다는 꿈도 꿨다. 이런 계기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하면 친구들은 “참 대단한 효녀 났네!”라고 말하지만, 딱히 효도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생각해봤을 때 나는 그런 평균의 삶을 굳이 거부할 이유도 없었고, 비혼을 하거나, 결혼에 대한 대단한 로맨틱한 계획이나 신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그런 개인의 가치관에 뜻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저 언젠가 결혼과 자녀 출산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미래의 가족 모습과 그때 내 상황이 어떨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물론 당연히 내 남자 친구를 사랑했고, 배우자이자 친구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심각하게 생각을 하든, 아니면 가볍게 생각을 하든 굳이 결혼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 친구는 너무 현실적이다. 꿈도 로망도 없다고 했다. 이에 나도 동감했다.


그러자, ‘결혼 전 해보고 싶던 자취’를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멀리 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고, 따로 살 이유가 없어 가족과 함께 살았다. 이유가 없어 나오지 않았던 집을 독립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나왔다. 1년 동안 월세를 내는 경험을 했다. 밥을 해 먹고 열심히 썩히기도 했다. 굳이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했지만, 혼자 살아보는 게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남편과 결혼을 했다. 혼자 사는 것도 같이 사는 것도 아직까지 즐겁다. 


그 과장님과는 많이 친하게 지내지 않았었고, 딱히 지금도 연락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계기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혼을 했다. 누군가 “누구 씨 결혼 안 해?”라는 말을 했다면, 남이사? 라든가, 왜 저렇게 결혼에 얽매여?라고 넘기고 말았을 것 같다. 하지만 “미래 나의 가족의 모습을 생각했다.”는 말이 생각의 씨앗을 던져주었고 깊이 인상에 남았다.


반면, 기억하지 못한 나의 말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전 직장의 친하게 지냈던 대리님이 있었다. 나중에 오래간만에 만나 밥을 먹을 때 그녀가 말했다. 


“네가 지금 회사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계속 PT를 준비한다고 했잖아, 그건 지금 회사뿐이 아니라 이 업종의 생태계이고 어디를 가도 같을 거라고, 그럴 때 너는 계속할 수 있을 자신이 없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 나도 생각을 해봤고, 이직을 하게 되었어.”


그 말을 그녀에게 한 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광고회사를 퇴사하고 브랜드 회사로 이직을 할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경쟁 PT를 준비하는 과정은 즐겁고 좋았다. 하지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PT를 준비하는 과정은 광고회사의 순리였다. 더 큰 광고 회사에 가서 돈을 많이 받건, 작은 광고 회사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든, 대부분 광고 회사에서는 이 프로세스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계속 일 하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마케팅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대리님은 좋은 회사로 이직을 했고 현재의 선택이 좋다고 했다. 다행인 결과였지만, 내 말이 영향을 미쳤음에 무거움을 느꼈다. 내 몇 마디가 타인의 퇴사와 이직의 계기가 되다니.


예전에,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로 친구가 상처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억에 남지 않는 말이 남에게 칼이 되기도 하고, 행동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 늘 예쁜 말만 하지는 않아도 이게 칼인지는 돌아봐야 한다. 말에는 행동을 불러오는 힘이 있다. 사람들의 귀중한 말을 기지개로, 몸을 일으키고 싶다. 선물을 건네는 마음으로 신중히 포장한 말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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