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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은 Mar 02. 2021

그중에서 가장 죽이고 싶은 상사는?

나를 거쳐간 수많은 상사들을 떠올리며


그중에서 가장 죽이고 싶은 상사는?


“니가 지금까지 극혐한 상사가 몇 명인 줄 알아?”


친구와 만나 회사 뒷담화를 하던 자리였다. 이번 상사가 정말 최악이라는 말에 친구가 질문을 던졌다.


“너 처음 갔던 회사 사장님도 정말 싫다고 했어, 두 번째 간 회사에서 한 임원은 꼴도 보기 싫다고 했지, 지금 상사도 죽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까지 한 세명 죽은 건데. 누가 제일 죽이고 싶니?”


그 말에 나는 누가 제일 싫은지 데스노트를 펼쳐 보았다. 우선 첫 회사의 상사였던 대표님을 떠올렸다. 첫 회사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전까지, 대표님과 내 사이는 사수였던 대리님들이 커버해주었기에 우리 사이에 직접적인 마찰은 없었다. 하지만, 입사 1년 후 조무래기인 내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수였던 대리들이 모두 퇴사했다. 졸지에 나는 대표님이 사수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퇴사를 한 대리님들도 모두 어렸다. 그때부터 대표님께 직접 일을 배우다 보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써, 네 말투는 너무 의존적이야. ‘정해달라’라고 말하지 말고 ‘우리 의견은 이겁니다.’라고 주도적으로 써.”


대표님은 이메일 하나까지, 옆에서 고쳐주며 일을 가르쳤다. 전화를 할 때면 듣고 있다가, 바로 표현을 고쳐줬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다고 이런 말도 들었다.


“너는 이해력이 떨어져, 정리력도 떨어져.” 


그래서 사설을 아침에 읽고 쓰라는 숙제까지 받았다. 평소 책 읽고 독후감 쓰기를 좋아했지만, 괜히 그런 취미를 나불댔다가. 대표님께 책은 뭐하러 읽었었냐는 핀잔만 들었다. 사회생활에서 취미가 책잡히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서, 이 이후로는 취미를 묻지 않는 이상 먼저 말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숨 막혔다. 대표님과 어린 햇병아리로 만나 30년 이상의 갭을 메우는 게 어려웠다. 그때도 나는 상사를 흉봤다. 하나하나 꼬투리 잡고 신경 쓰면서 가르치는 게 꼰대 같았다. 지금은 그때 배운 게 가끔 생각난다. 얼마나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가 첫 회사였기에 그렇게 태도를 하나하나 봐주는 상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번째 후보로, 나를 거쳐간 M팀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앞서 언급한 대표님과는 다르게 정말 일을 안 했다. 사내 메신저로 자기 취미활동인 화초 재배 사진을 보내거나, 친구가 은행에 다니는데 계좌를 개설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사내 메신저에는 팀장님의 아이 사진, 화초 사진, M팀장의 개인과제에 대한 투표 등이 주요 안건이었다. 나는 그런 메시지들이 업무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팀장님께 보고를 할 때는 얘기가 달라졌다. M팀장은 대기업 출신이었다. 자료를 보고, 전체 매출이 아니라 일 매출을 봐야 하며, 동기간, 동요일, 등을 비교해야 된다고 말했다. 계산하는 법에 대해서 표를 그리며 설명해줬다. 본인이 직접 일을 하지는 않지만 지시사항은 명확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는 또다시 노래를 부르며 화초 사진을 보내는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는 빨리 일을 하고 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머리가 좋아진 것 같았다. 


그는 내 생일에 유일하게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해준 사람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껏 생일을 챙겨주는 문화의 직장에 있지 않았었다. 그는 다른 직원들을 동원해 케이크와 과자로 파티를 열어주었다. 미리 준비했다며 화장품 세트도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주었다는 자체보다 그런 팀장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그는 많이 일하지는 않았지만 효과적으로 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실제로 팀장님은 자신의 일을 빨리 끝내고 대학원을 다니며 자기 계발을 하고 있었다. 직장일과 육아, 대학원까지 다니는 그런 모습을 보며 어찌 보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죽이고 싶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던 상사, 그는 선택적 분노조절 장애였다.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에게는 걸핏하면 화를 내고, 윗사람에게는 싹싹했다. 반대로 인사를 하든 말을 하든 늘 무반응을 하던 상사도 떠올랐다. 두 사람이 제일 힘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들도 좋은 교훈을 주었다. 나중에는 절대 저런 상사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선물로 주셨다.

 

“웬만한 디자인 회사는 거의 다녀봤지요. 그렇게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제 나름대로 원칙을 만들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싫었던 것 하나씩만 하지 말자는 원칙이었죠.”

-『일하는 사람의 생각』 中 오영식 디자이너


제일 싫은 사람의 순위를 나누다 보니, 그나마 좀 더 나은 이들이 떠올랐고, 나은 점들을 비교해보다 보니 좋은 추억들도 떠올랐다. 배울 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첫 회사의 대표님은 본질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법, 태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M은 보고서를 쓰고 보고하는 법을 다각도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일 외에도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졌다. 가장 싫은 모습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오히려 좋은 추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상사나 또는 동료를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긍정적으로만 생각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싫은 모습에 흉을 보기 전 지금껏 지난 세월에서 ‘가장 싫었던 모습’을 찾아본다면, 내가 현재 그런 상황인지 비교해 볼 수 있다. 과거의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지 않다면 , 사실 현재는 꽤 행운인 셈이다. 


아울러 내가 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해보며, 나는 어떤 사람이고, 이런 점이 좋거나 싫구나를 깨닫게 된다. 그들이 무조건 나쁘기보다는 나와 좀 더 맞거나, 맞지 않을 뿐이다. 내 친구는 매너를 차리고 험담을 하는 사람보다 화끈하게 화내고, 뒤끝 없는 상사가 좋다고 했다. 나는 화를 내거나 권위적인 것 자체가 가장 싫기에, 절대 동감할 수 없었다. 상사와의 케미도 취향의 문제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죽이고 싶을 만큼 싫은 상사는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나를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가게 해 준 친구에 질문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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