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래도
나는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특히 엄마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랑은 표현해야 전해진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집 안의 공기처럼 늘 곁에 있었다.
나는 그와 달랐다.
표현은 서툴렀고, 감정은 안으로 접어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얕았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사람을 쉽게 믿는 쪽에 가까웠다.
속은 늘 사람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어릴 적의 나는 정의감이 많았다.
한 사람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선택이 아니라 원칙이었다.
우리 반에 왕따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도 혼자가 되지 않게 하려 애썼다.
그러다 조용한 왕따가 생겼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아이의 편에 섰다.
도와주는 일에는 이유가 필요 없다고 믿었다.
돌아온 것은 배신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시기와 질투는 이유가 되었고,
사실이 아닌 말들은 사실처럼 덧붙여졌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어른의 판단 앞에서 깊이 무너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옳다고 믿은 선택이
항상 나를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다행히 진실은 밝혀졌고
사건은 정리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일 이후
사람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서
또 다른 배신을 마주했다.
허위의 말들은 조용히 퍼졌고
나의 학창 시절은 오해로 덮였다.
외모에 변화가 생겼을 때
사람들의 태도는 더 노골적이 되었다.
축하보다 비교가 앞섰고
호의보다 불편함이 먼저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관계를 잃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어떤 감정이 분명히 식었다.
사람에 대한 정이었다.
이후 나는 관계를 최소화했다.
대학교에서도
친구는 한 명이면 충분했다.
호의는 늘 의심부터 불러왔고
친절은 계산처럼 느껴졌다.
의심은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의심은
아주 사소한 순간들 앞에서 흔들렸다.
문을 잡아주며
“먼저 가세요”라고 말하던 낯선 사람.
아무 말 없이
화장실 줄을 양보해 주던 누군가.
잠깐 마주친 눈빛에
괜히 따라 나왔던 웃음.
아무도 나를 모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순간들.
그 안에는 계산도, 목적도 없었다.
중고거래를 하러 나간 날도 그랬다.
나는 이미 의심한 채 그 자리에 있었다.
학생이라는 말은 핑계처럼 들렸고
나는 마음을 닫고 있었다.
그러나 학원 가방을 멘 학생이 나타났고
알바로 모은 듯한 돈을 조심스레 건넸다.
그 얼굴에는
기대보다 기쁨이 먼저 있었다.
그날 깨달았다.
사람을 의심하게 된 나는
결국 사람에게서만 다시 흔들린다는 것을.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 세상에는 정이 없다고.
모두가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해졌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의심을 버리라고 하지 않겠다.
나 역시 여전히 의심하며 산다.
다만,
말도 안 되는 사람 하나 때문에
세상 전체를 부정하지는 말자고.
그중 누군가는 분명
아무 이유 없이 문을 잡아주고
아무 대가 없이 순서를 양보하며
아무 계산 없이 친절할 것이다.
나는 의심 끝에 남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