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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7. 2020

처음에 신혼이란 게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4

  그렇게 힘들다면 힘든 신혼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던진 가시가 몸에 가득 꽂혀 고슴도치가 된 랑금, 그 가시들로 다시 공격을 받는 나.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하였다. 랑금 주변 사람들은 랑금이 불같은 성격이라는 걸 잘 모른다. 랑금이 남을 화나게 하지도 않고 남에게 화가 잘 나지도 않는 성격이기에. 좋은 곳에 사용하라고 배웠던 상담을 나는 남의 성질을 돋우는데 사용했다. 감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화날 말들만 골라 하고 아닌 척 뒤로 빼기 일수. 그리고 나는 고상한 척. 이곳 체스키크롬로프에 와서 아내와 참 많은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의 일을 얘기하며 자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해줬었다. 많이 안쓰럽고 미안했다. 당시의 내 모습이 아직도 남아있기에 내가 많이 밉기도 하고. 


  아내와 나는 꽤 솔직하게 대화를 하는 편이다. 이런저런 감정도 웬만하면 앞에 꺼내놓고 대화하려 한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우리가 솔직한 대화를  나눌 때면 왜 싸우냐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냥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뿐인데. 그러다 신혼생활의 어느 날, 랑금과 나는 가만히 차 한 잔을 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말이 없는 짧은 적막이 찾아왔다. 아마 많은 이들이 경험했으리라. 이 적막이 싫어 더 밝게 웃기도, 말을 더 많이 하기도. 근데 그때는 왠지, 행복이란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고 지금 우리는 행복한가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결과는. 결혼 이후로 단 한 번도 맘 놓고 행복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는 답변. 행복감보단 불행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답변이었다. 누구의 대답이 아닌, 우리 두 사람의 대답이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아, 부인도 많이 불행했구나. 만약 나는 불행한데 랑금은 행복했다면, 랑금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하는 생각에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니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이제야 뭔가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둘 다 감정이 이토록 좋지 않다는 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기에, 이제 그 문제를 찾고 해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관계를 개선할 좋은 방법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나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를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느끼기에, 랑금은 감정 표현에 사용하는 단어가 한정적이라 느껴졌다. 회사를 다녀와 피곤하다 할 때는 짜증 나 라는 한 마디로, 뭔가 불편할 때는 그냥 그래, 내가 무언가 잘 못해서 화가 났을 때도 짜증 나, 말하기 싫을 때는 됐어. 그래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를 모조리 정리해 긍정적인 단어와 부정적인 단어로 나누고 A4용지 네 개 분량으로 폰트를 맞춰 프린트해 랑금이 매일 자리하는 화장대 거울 위에 붙여주었다. 이후 아내가 내가 이해 못 할 짜증을 부릴 때면 손잡고 화장대 앞으로 데려갔다. 데려가는 그 상황이 웃겨 감정이 많이 잦아 들었고 평상시 같으면 됐어 했을 상황에서 굳이 자신의 감정을 찾아 말로 하게끔 하였다.


  두 번째, 출근할 때 무! 조! 건! 입 맞추고 나가기. 함께 대화를 하며 싸운 이후로 그 감정이 하루가 넘지 말자는 규칙을 정했다. 그럼 어떤 방법을 좋을까 생각하다 랑금이 어딘가에서 봤던 게 생각나 이렇게 하자고 제안을 했고 나도 좋다고 했다. 일상의 감정일 때에는 가볍게 입 맞추는 게 별일 아니었지만,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입 맞추는 행동은 두부에 입을 맞추는 느낌 같았다. 그냥 살과 살의 만남이랄까. 왜 이런 규칙을 정했을까라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우리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행동의 목적이 떠오르고, 아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면 안 좋았던 감정이 사그라 드는 것을 느꼈다. 참 좋은 규칙이었고 24시간 붙어있는 지금도 어딘가 떨어져야 할 때가 되면 이 규칙이 떠오르게 되어 가볍게 입을 맞추고 가게 된다.


  세 번째, 이건 나만의 규칙으로 스스로에게 내걸었던 것인데, 결혼을 하며 만들었던 혼인서약서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여 출근하기 전 꼭 한 번씩 나의 다짐을 확인하였다. 여러 줄의 글이 적혀있었지만 한 문장에 집중하였다. ".. 연약한 여인임을 기억하며.."라는 문장. 다투게 되면 두 사람이 아닌 두 맹수로 변하여 서로 공격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켜줘야 할 연약한 여인임을 꼭 기억하자라는 다짐을 매일 하였다. 여인으로서 랑금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이 내게 쉬이 와닿지는 않았지만. 노력했다.


  그렇게 노력을 한 결과, 행복감이 드라마틱 하게 높아지진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은 더 두터워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부부가 행복하기란 참 쉽지 않았다. 두 가문의 결합에서 오는 자잘한 마찰들, 우리는 괜찮은데 문화가 요구하는 여러 관습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직장이 주는 스트레스였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를 서로에게 온전히 사용하고 싶었지만 직장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남겨질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헌신하길 바라는 것만 같았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 된 세상, 일상적이지 않은 날들이 일상이 된 세상. 행복한 부부를, 행복하고자 노력하는 부부를 가만히 두지 않는 세상.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에 허탈이 공감하는 세상. 결론적으로, 나에게 이 한국 사회란, "부부가 서로 오해할 시간은 많지만, 이해시킬 시간이 없는 곳"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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