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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7. 2020

부부 vs 회사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5

  어느 일요일 밤 10시, 갑자기 랑금이 으앙 하고 울어버렸다. 깜짝 놀란 나는 무슨 일이야 하고 쫓아갔다. TV를 잘 보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울어 버리니 뭔가 큰일이 난 건가 싶어서. 울먹이며 랑금은 개그 콘서트 마지막 엔딩송이 나오는데 주말과 휴일이 끝난 거 같다고.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울어버렸단다. 뭐야 하고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다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많이 허탈했던 때였다. 회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감정을 써야 할까.


  결혼 뒤 처음으로 계획하게 된 여름휴가. 한정된 시간 안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함께 즐거운 계획을 했다. 그렇게 정해진 곳은 양양-속초-가평 코스의 여행. 연애할 때도 함께 여행을 다녔지만 결혼을 한 뒤의 첫 여름휴가라서 뭐랄까, 뭔가 더 새롭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우리 부부 특성상 구체적인 건 그때그때 정하기로 하고 기간과 장소만 계획했다. 계획이 정해진 뒤 회사에 휴가 날짜를 신청하였고 무리 없이 결재를 받았다. 랑금도 마찬가지로 결재를 잘 받은 듯해 보였다. 문제는, 휴가 기간에 발생했다. 


  랑금과 나는 각자 회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나에게 회사란, 나의 가치를 평가해 내 시간과 능력을 현물을 주고 사는 대상이고, 그런 현물을 받은 나는 업무/실적으로 대답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논리적인 관계이다. 그렇다고 기계처럼 일만 하는 건 아니다. 회사 동료들과 관계도 적절히 신경 쓰면서 일을 한다. 단지 불필요한 감정을 사용하는데 나의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그런 에너지는 지극히 소비적이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유로, 나의 휴게시간을 보상도 없이 방해받는 걸 정말 싫어했다. 이런 나를 보며 랑금을 이중인격자 같다며 비아냥 대기도 했었다. 


  랑금에게 회사란, 동료가 함께 힘을 합쳐 귀중한 가치를 이뤄내는 공간, 이 사회의 일원으로 본인과 그 가치를 증명해 내는 장소, 더 나아가, 내가 느끼기엔, 자아실현을 이루는 곳이라고까지 느껴졌다. 그만큼 아내에겐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인생의 일부분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더라도 맡은 일은 다 해내야 속이 시원하고, 하던 일을 집에까지 가져오는, 정말 부지런한. 아니, 성실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내가 사장이라면 아내 같은 사람을 채용하고 싶을 정도였다. 스스로 귀중하다 여기는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그들과의 관계는 정말 끈끈했다. 내가 질투가 날 정도로. 그런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조금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하루 종일 힘들어하기도 했다.


  이런 차이점이 있었기에,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더 많이 두는 랑금은 내게 바보 같아 보였다. 또한 랑금 회사의 대표를 내가 좋아할 수가 없었다. 뭐하나 제대로 챙겨주는 것도 없으면서 사람을 저리 부려먹다니. 몇 번이나 찾아가 뒤엎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었다. 


  그렇게 떠난 결혼 후 첫 여름휴가, 첫째 날 양양의 낙산사를 시작으로 우리의 행복한 휴가가 시작되었다. 처음 가보는 낙산사였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오랫동안 걸었음에도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함께 사진도 찍어가며 이런저런 추억을 담아 갔다. 관광을 마치고 근처 대포항에 새우튀김이 별미라 하여 잔뜩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만 이어질 줄 알았는데 문제는 둘째 날에 발생했다. 


  양양을 떠나 속초로 이동하는 길에 랑금 회사에 계속 연락이 왔다. 사실 어제부터 간간이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가 부인네 회사는 부인 없으면 잘 안 돌아가나 봐라고 약간 비꼬듯 이야기를 했다. 본인도 짜증 났었을 텐데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꼴로 랑금은 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럼 내가 맡은 일인데 대답을 해줘야지 전화를 안 받아?라고 대답을 했다. 서운함에 이야기한 것도 몰라주는 것 같아 가시를 잘 말아 다시 받아쳤다. 전화 계속 받을 거면 그냥 휴가를 반납하고 다시 휴가를 계획하던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모지랐다. 나빴다. 아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가슴 아팠을지 상상이 간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속초 아바이 마을에 들러 관광을 하며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생선구이 전문점. 그 사이에도 두어 번 전화를 받았는데 밥 먹고 있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가 심지에 불을 붙였다. 내 기준에선 우리들의 휴가를 회사가 망가뜨린 것만 같았고, 내 휴게시간을 침범당한 것 같아 기분이 몹시 상해 랑금에게 한 번만 더 전화받으면 이번 휴가는 끝이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또 고상한 척을 하며 알이 가득 찬 도루묵을 먹던 와중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안절부절 하던 랑금은 불안함을 못 이기고 전화를 받았다.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많이 반성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회사가 나보다 중요한 건가? 어떻게 내 말은 귀 똥으로도 듣지 않지?라는 감정만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는 귀한 휴가 중 몇 시간을 불편한 감정으로 보내야만 했다.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질을 부렸던 당시의 나는 참 못된 사람이었다. 만약, 회사가 전화를 하지 않았어도 나는 나쁜 사람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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