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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7. 2020

행복을 찾아서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6

  "남편, 남편은 언제 가장 행복감을 느껴?"

  "행복감이라.. 글쎄.. "


  문득 물어오는 아내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다. 지인이 묻거나 지나가는 질문이었다면 생각 없이 대답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내의 질문이다. 진실된 대답을 해주고 싶었는데, 내 세상에 있는 국어사전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정의되지 않은 듯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없다. 행복해지려 하기보단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했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려 발버둥 쳐왔다.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어려서, 여섯 살 때였나?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 때 꼬마였던 나는 주방 입구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쪼그마한 놈이 뭘 저리 열심히 보나 싶어 엄마 요리하는 것 궁금해? 왜 그렇게 열심히 쳐다봐?라고 물었다고. 그러자 그 쪼그만 놈은 엄마에게, 가족 모두가 나를 언제 떠날지 모르니 엄마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한다 대답했단다. 기가 찰 일이다. 엄마는 너무 귀엽고 재미있었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어려서부터 남을 의지의 대상으로 생각하질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와 함께 신혼생활을 하며 이런 나의 성격은 큰 독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식의 논리를 아내에게 들이댔다. 내 세상, 내가 기준이었다. 그런 세상에 갇혀 원하지도 않는 기준을 강요 당하는 랑금. 아내에 대한 이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내가 기준이었으니까. 기준을 벗어나는 건 다른게 아니고 틀린 거였으니까.


  랑금은 자취를 오래 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으로 자라났고 대학 이후에는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이뤄나갔다. 매우 당차고 씩씩하지만 그만큼 사랑하는 이에게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자다. 집 밖에선 씩씩한 커리어 우먼으로 일하겠지만 집에선 위로받고 싶었을, 그런 연약한 여자. 그런데 집에 호랑이가 한 마리 떡! 하니 버티고 넌 사슴이 아니고 호랑이야! 풀 먹지 말고 고기 먹어! 호랑이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언제 어디서 더 강한 놈이 나타날지 모르니 항상 대비하며 살아야 해! 호랑이는 무리 지어 사냥하지 않고 혼자 사냥해. 남을 의지하지 마!라고 한다. 이것이 랑금을 최고의 여인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판 싸움이 났다. 시작은 정말 작은 일이었던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안 난다. 

  "너는 왜 그렇게 행동을 해! 그렇게 하면 손해만 보잖아!"

  "나한테는 그게 손해가 아니야! 난 그냥 그렇게 하면 좋고 맘이 편해!"

  "야, 네가 그렇게 해줘도 주변 사람들은 뒤에서 다 너 욕해! 정신 차려!"

  "남편이 뭔데 내 주변 사람까지 욕해! 그리고 내가 행복하고 내가 괜찮다는데 대체 왜 나한테 강요하는 건데!!!"


  아마도 내 눈에 퍼주기만 하는 것 같은 아내의 모습에, 답답했던 마음에 튀어나간 잔소리가 싸움의 불씨였던 것 같다. 그렇게 투닥거리며 싸우다 보니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


  "부인, 부인은 내가 날개를 날아주겠다는데 왜 그렇게 싫어해! 날개를 달면 더 높이서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잖아!" 

  답답한 마음에 아내를 쏘아붙였다. 그러자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 날아왔다.

  "남편은 왜 모든 사람이 하늘을 날고 싶을 거라 생각해? 그 전제 자체가 문제잖아. 어떤 사람은 나는 게 좋을 수 있지, 또 어떤 사람은 땅을 밟으며 걷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어. 나는 걷는 게 좋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 순간 멍 해졌다.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더 좋은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순간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한 것 같다. 이 여자는 뭐지???


  바깥에선 회사에, 집에선 나라는 사람에 고통받는 아내. 어떻게 해야 랑금이 웃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걸으며 행복해할 수 있을까. 행복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에게 원하는 것이 뚜렷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아내라도 행복하길 바랐다. 이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질 것만 같아서.


  언제 우리가 가장 행복했을까를 생각하다 신혼여행을 생각했고,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체스키크롬로프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러다 미스터 Kim이 했던 이야기가. 함께, 같이 살자던 그 이야기.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막연한 마음으로 다음 카페(당시에는 다음 카페를 통해 펜션의 예약 접수와 상담을 진행했었다.)에 들어가 글을 남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갈 텐데 나를 기억할지, 대화를 기억할지도 모른 채, 그때의 나라고. 문득 그때 나눈 대화가 기억나 이렇게 글을 남겨 본다고. 


  톱니가 맞지 않는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는 만큼 상대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믿게 된다. 또 믿는 만큼 자기 노출이 늘어나게 되고 이러한 자기 노출은 크고 작은 다툼을 만들어 낸다. 부부간의 다툼은 인생을 살며 생기는 여러 사건들과 더불어 서로의 튀어나온,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 주었다. 내가 아내보다 대단한 게 아니라, 아내가 나보다 대단하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단한 사람으로 존중할 때 톱니바퀴는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에게 행복이란 그런 것이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 때 서로를 존중하는데 이르러 그 일이 지나가게 될 때, 그 순간을 사랑하는 내 아내, 랑금과 함께여서 매시간이 행복으로 가득 채워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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