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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7. 2020

여행 준비하는 방법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8

  여행을 떠나기로, 체코로 거주지를 옮기기로 결정한 것은 2014년 10월, 출국은 2015년 3월로 정하였다. 남은 시간은 6개월 남짓. 제법 규모가 큰 여행이다 보니 준비할게 많다 생각했다. 다니던 직장부터 시작해서 신혼집, 자동차, 보험, 구입할 물품들, 보낼 수화물 등등.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한국의 남겨질 것들을 전부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기를 맞고 바로 올 수도 있다 생각해,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은 남겨놓자는 결정을 하였다. 우리의 마지막 보험으로. 


  중간중간 미스터 Kim과 연락을 하며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러다 다음 해 1월,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다 하여, 서울대병원 근처에서 킴을 만나게 되었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만나 대학로에 있는 이*야 커피집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8년 만의 한국 나드리라고 했던 것 같다.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이 모든 자동차가 새것이라는 점, 그리고 대출광고가 이리도 많이 텔레비전에서 나온다는 얘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전화로만 하던 이야기들을 좀 더 세세히 묻고 답변을 들을 수도 있었다. 궁금했던 부분들 역시 우리가 감당할 수준의 내용들이라 결정에 변함은 없었다. 잠시 머물다 다시 돌아간다는 킴과 체코에서 보자는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우리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 이*야 커피집을 방문해보고 싶다.


  짐을 정리하면서 깨달은 점들, 아 난 참 가진 게 많았구나. 입지 않는 옷들, 사용하지 않는 물품들, 집안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아내가 잡다한 것들 사지 말라고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참 귀 똥으로도 듣지 않았구나. 왜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 것일까. 버려야 하는 것들이 하나 둘 튀어나올 때마다 이건 왜 샀지, 이건 또 왜 샀지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이곳에 정착한 다음, 불필요한 것들을 꾸역꾸역 짐 싸서 이곳으로 보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지. 정리하며 이건 쓸 수도 있어, 그리고 이건 필요할 수도 있어 했던 것들을 몇 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여행의 기간이 길던 짧던, 규모가 크던 작던, 여행을 준비하는 방법은 동일하다 생각한다. 내게 필요한 최소의 물품만을 챙겨 가는 것! 덜 필요한 물품들은 여행지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다. 심지어 그곳에는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가방 무게를 훌쩍 넘는 까닭은 아마도,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잘 몰라서 그럴 것이다. 여행을 하면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싶다. 


  출국이 점점 다가오던 어느 날, 짐이 거의 정리될 때쯤 문득 아차! 싶은, 아찔한 생각이 지금 들이닥친 것 같이 느껴졌다. 일을 저질러 놓고 행복 회로 만 돌렸던 건 아닐까. 식은땀이 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순간 불안이 엄습해오고 아, 이미 엎질러진 물인 현실의 무게가 어깨를 무겁게 눌렀다. 이 상황에 의지할 곳이라곤 옆에 있는 랑금 뿐.


  "랑금, 우리 이렇게 떠났다가 정말 사기당하면 어떡하지?"

  "뭘 걱정해, 사기 맞아도 몇백만 원은 남지 않을까? 그럼 남은 돈으로 유럽 여행하고 오면 되지~"

  아내의 한마디가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아, 아내는 대인배였구나.


  아, 양가 부모님께 말씀드린 얘길 빠뜨렸다. 나의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에는 우리가 알아서 잘 결정하라고 하셨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 원하는 대로 해보라며 응원해 주셨다. 아마 이렇게 오래 다녀오리라곤 생각지 않으셨을 듯하다. 반면 처가댁에는, 지금 생각하면 죄송하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지 못하고 이서방이 회사의 해외지사로 파견 가게 되었다 거짓말을 했었다. 장인어른은 랑금을 많이 사랑하고 아끼시는데, 신혼생활을 하는 우리가 대뜸 저 멀리 이국땅으로 간다는 말씀을 드릴 용기가 없었다. 우리도 그리 길지 않게 다녀오리라 생각했으니. 차후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는데, 아마 어른들은 이미 알고 있으셨지 않나 싶다. 우리의 결정을 존중해 주시고 우리를 배려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던 듯하다. 


  그렇게, 몸과 마음, 그리고 정리할 것들이 하나하나씩 정리되어 갔다. 체코가 우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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