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Lee May 18. 2020

체코 가는 길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9

  "전기밥통을 가져올 수 있으면 꼭 가져와. 생활하는데 큰 도움 될 거야."


  체코 출발을 준비할 때 미스터 Kim이 추천을 해준다. 자, 이제 짐 정리도 끝났고 나중에 EMS로 보낼 짐은 박스화 다 했고. 아,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정들었던 신혼집을 가만히 둘러본다. 우리의 최후의 보험으로 남겨둔 이 집은 내 친형 샤인이 들어와 살기로 했다. 랑금도 흔쾌히 동의해 줬고 이후 우리가 한국에 방문할 때 형의 배려로 이곳에서 편히 지낼 수 있기도 했다. 우리의 추억이 깃든 첫 번째 집을 가만히 둘러보며 떠나는 게 실감이 났다.


  떠나기 전에 처가 댁에 인사를 갔을 때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장모님, 살면서 귀한 딸을 이리 멀리 보내는 건 처음이라 많이 걱정이 되셨을거다. 우리가 간다고 작은 집부터 처형 네까지 모두 모여 식사를 하였다. 작은 아버님께서 이런저런 당부 말씀을 해주시고, 둘이 갔다 셋이 되어 오라는 덕담도 챙겨주신다. 식사를 마치고 가족이 모여 다 함께 사진도 남겼다. 다음날, 먼 길 떠나는 랑금과 나에게 잘 다녀오라며 장인어른께선 따뜻이 안아주시고 말을 아끼셨다. 마지막 모습이라 생각지 못했던 랑금의 할아버지. 아직도 생각만 하면 죄송한 마음이 가득하다. 기력이 쇠약해지셨는데도 떠나가는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시며 방긋 웃어주셨던 할아버지. 출발하기 전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좀 좋지 않으셨는데, 우리가 체코에 온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하늘나라에 가시게 되었다. 처가댁을 떠나오는 길 랑금은 창밖을 한참 바라보며 손으로 얼굴을 슬며시 닦았다.


  나의 아버지, 무엇을 시작함과 동시에 마무리를 생각하시고 목적과 목표,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상세히 준비돼야 속이 시원해 하셔서 우리의 여정이 준비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아, 생각해보니 결혼할 때도 그랬었지. 여하튼, 세세히 하나하나 빠뜨린 건 없는지 다시 확인시켜주셨다. 장모님처럼 어머니도 이것저것 먹을 것 위주로 많이 신경 써 주셨다. 그중에서 건강식품을 특히 이것저것 챙겨주려 하셨다. 가방이 터질 듯, 정말 더는 들어갈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이, 허용 중량을 넘지 않는 선에서 꽉 채웠다. 랑금이 새 식구가 된 뒤로 가족이 모두 모여 찍은 가족사진이 없었다. 떠나기로 결정이 되었을 때 사진을 남기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아버지도 좋다고 하셔서, 일정을 잡아 모두 모여 가족사진도 남겼다. 


  친구가 먼 곳 간다고 민비, 뽁, 쑤가 휴가를 냈다. 출발 전날 공항 근처 호텔을 잡고 함께 저녁을 보내자며 이런저런 준비를 해줬다. 출국 전날 오후, 집에 인사를 드리며 바리바리 짐을 뽁의 차에 실는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걱정하지 마시라고, 저희가 잘 보내고 오겠다 인사를 전하는 뽁, 민비. 이 친구들이 있어 든든하다. 한참 못 볼 수 있으니 아버지와 어머니, 형을 꼭 끌어안고 차에 몸을 실는다. 군대 갈 때 느낌도 나고, 잠깐 떠나는, 마치 내일 다시 돌아올 것만 같은 느낌도 들고. 아직은 뭔가 실감이 안 난다. 당시 일이 바빴던 민비를 조금 기다리다 합류해서 민비의 차로 갈아타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데, 마치, 그냥 놀러 가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영종대교에 불이 들어온 게 보이며 아, 진짜 공항이 코앞이구나 싶었다. 떠드는 사이에 벌써 다다라 간다. 칠흑같이 내린 어둠 때문에 다리 양쪽에 있는 바다가 물인지 밭인지 구분이 안 간다. 먼저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뽁&쑤, 객실로 이동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데 쑤가 갑자기 울어버렸다. 어떤 감정인지 와닿았지만, 애써 담담한 척 웃으며 왜 그러냐고, 어디 죽으러 가냐고. 울지 말라 다독였다. 뽁이 좋은 호텔을 잡아줘서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민비는 다음날 일찍 급한 일정이 있어 늦은 저녁에 다시 돌아가야 했다. 피곤할 텐데도 멀리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꼭 끌어안으며 잘 다녀오라는, 도착하면 연락하라는 인사를 하며 아쉬운 이별을 나눴다.


  출국하는 날, 전망이 좋은 조식 장소에서 여유 있게, 정말 여유 있게 천천히 조식을 함께 했다. 전날 밤에는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몰랐는데, 날이 밝아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탁 트여 풍경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여유로운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 아 이제 정말 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밥통을 옆으로 메서 그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짐이 정말 많았는데 아마 항공사 측에서 우리의 행색이 멀리 떠나러 가는 사람인 줄 알고 짐 제한을 좀 양해해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체크인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데 랑금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미미가 왔다. 멀리 가는 친구를 마중해 주러 이곳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줬다. 뽁, 쑤, 미미. 떠나가는 길을 누군가 마중해준다는 게 사람 마음을 이렇게까지 편안하게 해주는구나 하는 걸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 쑤가 또 눈물이 터졌다. 이 땐 나도 어떻게 참을 수가 없어 터지려는 눈물을 애써 꾹꾹 눌러봤지만 몽글몽글 차오르는 눈물에 앞이 뿌예졌다. 그런 우리를 보며 뽁은 무슨 이산가족 되냐며 우스갯소리로 따스함을 전해줬다. 


  무사히 출국장에 도착하여 어른들께 전화로 인사를 드렸다. 잘 다녀오겠다고, 건강하게 돌아오겠다고 안심시켜 드리며 도착하면 늦은 시간이겠지만 연락드리겠다 말씀드린다. 당시 주변을 참 많이 챙겼는데 그 모습을 보며 랑금은 무슨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 같다 웃어댔다. 


  비행기 탑승 전, 한국의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적이지 않은 체코의 일상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날, 시간을 거슬러 다시 오늘로 이동하는 비행기. 누가 선을 그어놓은 것도 아닌데, 보이지도 않는데 그 선 밖으로 나가는 것만 같은 우리였다. 불안함보단 설렘과 기대감이 컸었고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던 나. 그런 나를 믿고 따라주는 랑금. 


  당시 우리에게 절실했던 건 돈도, 안정적인 생활도 아니었고, 우리의 행복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하자고 다짐하며 비행기에 발을 올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 준비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