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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18. 2020

체스키크롬로프 미스터Lee 탄생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10

  체코에 도착하자 공항에 미스터 킴이 마중 나와 반겨주었다. 멀리 체스키크롬로프에서 프라하 공항까지 왕복 5시간 거리를 픽업 와준 것이다.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오느라 제법 피곤할 법도 한데 체스키크롬로프로 이동하는 내내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후일담이지만 랑금이 우리 사이를 보며 서로 사귀냐고 얘기할 정도였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 도착한 펜션, 캄캄한 밤이 내리운 타운. 다시 만나니 반갑고 이전에 왔었을 때로부터 시간이 이어진 듯 뭔가 아련하다. 이 도시는 변한 게 하나 없구나. 3월의 찬 밤공기, 조용한 거리, 뭐하나 변했다 싶은 게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싼다. 그리고 킴의 향수 냄새. 이제 도착했구나 싶다. 피곤할 텐데 다른 얘기는 내일 하자며 안틱룸B로 안내를 해준다. 예전에 신혼여행으로 왔을 때는 안틱룸A에서 묵었었는데. 따뜻한 분위기의 객실, 우리가 며칠간 잠시 묵을 공간이다. 새벽시간이겠지만 한국에 계신 어른들께 잘 도착했다 카톡을 남기고 피곤함에 골아 떨어졌다. 


  일찍 떠진 눈에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쉬 잠들진 못한다. 랑금은 많이 피곤했는지 곤히 잘 잔다. 잘 때가 가장 예쁘다 그러면 안 된다 했는데. 동이 트기 전 푸르스름한 색이 마을을 가득 메우고, 가만있을 수 없어 산책을 나선다. 다시 들어오려면 키는 잘 챙겨야지. 아, 진짜 왔구나. 도착했구나. 아직 현실감은 느껴지지 않고 마치, 다시 여행 온 것만 같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나 혼자 걸으니 생각이 깊어진다. 그렇게 바빴던 하루하루, 치열했던 삶, 랑금과의 행복을 찾아 여기까지 왔구나. 시작하는 지금! 정말 행복하려 노력하자!!!


  랑금과 나는 바로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일 잘하기로 소문났던 랑금은 하나라도 놓칠까 모든 걸 받아 적으려 하고 머릿속에 담으려 집중하였다. 나중에 펜션 사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를 자세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며칠 뒤부터는 바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랑금은 행정을, 나는 대민업무를 하는 것으로 업무를 나누었다. 내가 한국에서 이직을 하게 되면, 옮긴 회사에 처음 출근을 하며 연간 사업 계획서와 연간 사업 결과 보고서를 달라고 한다. 회사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익숙해질 때까진 이전 근무자의 업무방식을 최대한 따라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하나하나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내가 원하는 방법대로 일을 진행하였다. 처음 해보는 장사, 새로운 분야라 아는 게 전무하니 이전에 했던 방식대로, 킴이 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흡수하여 펜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킴은 색이 뚜렷한 사람이다. 칠흑같이 검은 색깔 같으면서도 자신의 색을 상대방에게 덫 씌우지는 않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검은색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맘 놓고 자신의 색을 내비칠 수 있는 듯싶다. 순백의 상대 앞에서 함부로 내 색을 비추기 부담될 수 있으니. 솔직하고 자신감 넘치는 그런 사람. 이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일할 때 나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편이었지만, 되도록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이제는, 그런 부분을 내려놓으려 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놓아야 하는. 이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생각해보니 이전까지는 는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하지도, 모두에게 미움받으려 하지도 않았던 듯싶다. 회사는 가치교환이 이뤄지는 곳이고 크게 감정을 쏟을 필요가 없었다. 장사를 해보니 내 것에 대한 가치창출을 직접 해야 하고,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했다. 손님들에게 그 확신을 보여줘야 했기에 감정을 붓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서비스는 교환되는 재화에 비례해야 하는, 또는 그 이상이어야 고객이 만족하는, 참 생각해야 할게 많다. 그러한 미스터 Lee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어서 와요! 오느라 고생했어요."

  띵동하고 벨을 누른 손님, 문을 활짝 열어주며 자신감 가득 찬 목소리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캐리어는 로비에 잠시 두게 하고 사무실로 따라오라며 눈을 맞춘다. 처음 발을 딛는 체스키크롬로프라 여행자들 대부분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 창가에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들, 예술가 느낌을 풍기는 이젤까지, 우리의 사무실은 펜션의 얼굴. 따스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의 긴장을 녹여준다. 그리고 그곳에 나, 미스터 Lee가 있다. 


  "오는 길 진짜 힘들죠? 아주 돌길이 지랄맞아요.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악명 높기로 유명한 체스키크롬로프의 돌길,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일환 중 하나로 타운 내 길이 모두 돌로 덮여 있다. 하나하나의 돌이 충격을 흡수해 길 양쪽의 건물에 진동을 주지 않게 한다고.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며 의미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노력했고, 그렇게 하다 보니 나라는 존재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뉜다. 싫어하는 사람들까지 만족시키려 노력하기보단,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선순환이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어떤 부분이었냐 하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 덕분의 나에 대한 가치를 확인할 수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곤고해져 갈 수 있었고 이는 다시 날 바라봐 주는 사람들에게 더 큰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체크인할 때는 좋아하지 않던 손님들도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는 이해해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뭐랄까, 마치 도미노 같달까.


  "남편, 적당히 해. 남편이 여행하는 건 아니잖아?"

  체크인을 하다 보면 가끔 랑금에게 카톡이 온다. 사무실 옆에 우리가 생활하는 방이 있어서 체크인이 오래 진행된다 싶으면 이렇게 브레이크를 잡아줬다. 맘이 맞아 신나게 떠들다 보면 1시간은 금방 지나버렸기 때문에. 처음 펜션에서 살 때에는 무식하게 오래 손님들을 붙잡고 있는 나 때문에 랑금이 많이 고생하였다. 체크인이 끝나면 조용히, 빼꼼 방문을 열며 랑금의 상태를 살폈다. 부인 괜찮았어? 이번에도 좀 길었나?라며 애교를 부려본다. 거들떠도 안 보면 길었던 거고 괜찮으면 랑금이 문을 먼저 열고 나오곤 했다. 되돌아보니, 이때가 참 재미있었다.


  그렇게 펜션 아달베르트는 주인이 바뀌고도 아무 문제 없이 모든 것이 잘 운영되는 것만 같았다.

  그 이상한 외국 손님이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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