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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Lee May 21. 2020

머피의 법칙_1

안녕 나의, 우리의 체스키크롬로프_ #13


  체코에 도착한 첫해, 열정 가득하고 힘이 넘치는 시기인 덕분일까, 하나님이 겸손하라며 여러 가지 시험을 한 번에 준비해 주셨다. 때는 앞서 말했던 이상한 외국인 여자친구를 둔 커플이 다녀간 뒤 5월 말에서  6월 사이. 띵동~ 소리와 함께 정문을 열어보니 태국에서 온 두 명의 여성 백팩커가 도착했다. 에너지를 눈에 가득 담아 안녕하세요, 이곳에 예약을 하셨나요? 하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첫인상에서도 지쳐 있는 모습이 역력해 얼른 들어오라 손짓을 했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었으니, 기온도 따뜻해 걷기 참 좋은 날씨다. 정문을 닫고 뒤돌아 여행자를 스치듯 지나 사무실로 인도하려는데 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뭐지 싶었지만 여행을 오래 해서 그런가 하고 넘겼다. 사무실로 모셔 의자에 앉힌 뒤 체크인을 진행하는데, 아까 맡았던 비린 냄새가 점점 더 거슬렸다. 이건 뭐랄까, 피비린 내에 가깝다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피비린 내와 땀 냄새가 섞인? 그런 냄새였다. 아, 백팩커라 거리에서 지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애써 낭만스럽다 맘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본능적으로 노란 불이 들어왔다.


  여행자로 여행을 대할 때와 펜션 사장으로 여행을 대할 때 자세는 사뭇 다르다. 개인적으로 백팩커 여행을 해본 적은 없지만 존중하고 멋진 여행자라 생각한다. 또 진짜 여행에 가깝다고도 생각이 든다. 정해진 것 없이 길이 나있는 대로, 주머니 안에 있는 재정에 따라 흘러가는 게 여행에 가깝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장으로 백팩커가 올 때면, 지금 적는 이 사건 이후로,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온다. 한 번의 경험이 너무 강렬하면 좋았던 감정을 싹 다 덮어 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한 사건이기도 하다. 



  "부인, (공기를 들어마시며)스으으으읍... 하아아아.. 뭐지 이 불안한 마음은?"

  "응? 왜 그래? 뭔 일 있었어?"

  "아니, 방금 체크인을 끝냈는데, 백팩커의 두 여성 여행자야."

  "응, 근데?"

  "아니 이게 참 뭐랄까,, 하아.. 왜 맘이 이렇게 불편하지?"

  "왜 그래 남편, 불안하게."

  "그냥. 그냥 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를 맡았는데 그 뒤로 그러네. 처음 맡는 냄새라 별로 기분이 안 좋았나 봐. 아무 일 없겠지 뭐. 미안 신경 쓰게 해서."


  체크인이 끝난 뒤, 랑금에게 뭔지 모를 이 불안한 맘을 털어놓았다. 별일 있겠나 싶은 생각으로 불편한 맘을 날려보냈다.

  다음 날, 조식이 끝난 뒤 조용히 백팩커 여성 중 한 명이 찾아왔다. 혹시 베갯잇을 갈아줄 수 있겠냐고. 두 사람은 펜션에서 2박을 묵기로 했기에, 커버 교환을 요청하면 갈아줄 수 있다. 원한다면 이불커버까지 모두 갈아줄 수 있다 했는데 베갯잇만 갈면 된다고 한다. 흔쾌히 교환해 주겠다 답변을 하고, 새 베갯잇을 빨래방에서 챙겨들어 위층의 1번 방(트윈룸)에 가서 똑똑 노크를 하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는데 문틈으로 공기가 드나들며 어제 맡았던 비릿한 냄새와 함께 그 위로 알코올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미스터 Lee입니다. 베갯잇 갈아드려도 될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1번 방을 들어서면 가로세로 1미터 정도의 현관과 같은 공간이 있고 왼쪽에 메이플 우드 색의 미닫이문이 달린 수납장과 옷장이 있고, 오른쪽 여닫이문 뒤로 샤워부스와 화장실이 위치해있다. 중간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침실이 나오는데 문을 열고 바로 왼쪽에 허리 정도 높이의 의자 하나 들어가는 테이블이 있다. 그 테이블 위에 이미 사용하고 난 알코올 솜이 한가득이었다.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는 게 보여 좀 꺼림직했다. 테이블 아래 휴지통이 있는데. 중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가로 60cm 세로 80cm 정도의 오래된 창문이 있고 창문 뒤로는 체스키크롬로프 마을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 창문 왼편에 세로로 싱글 침대가 하나 벽 모서리에 붙어있다. 창문 오른 편으로 싱글 침대 두 개가 평행하게 떨어져서 머리가 벽을 향하게 가로로 배치되어 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두 개의 침대를 쓰고 있었다. 두 개의 침대 중 중문에 가까이 있는 침대의 베갯잇을 갈려고 보니 군데군데 피가 묻어있었다. 응? 이게 뭐지? 여드름을 쥐어뜯었나? 싶었다. 아까 보았던 피가 군데군데 묻어있는 알코올 솜이 침대 옆 협탁 위에서 서너 개 있었다. 오래 머무르면 손님도 불편할 수 있으니, 빨리 갈아주고 가자 싶어 베갯잇을 후딱 갈고 나오는데 두 사람이 모두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데, 그 표정이 뭔가 미안해하는 듯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제부터 너무 신경을 써서 그렇게 보였던 건가?


  백패커 커플에게 체크인 시 정산을 언제 하길 원하냐 물었었는데 체크아웃 할 때 하길 원하다고 말하였었다. 베갯잇을 교체한 날 저녁, 뭔가 쎄한 느낌에 부킹닷컴 메신저로 다른 불편한 건 없냐는 질문과 함께 내일 체크아웃 시간을 물어보았다. 새벽 6시. 저녁 6시가 아닌 새벽 6시에 출발을 할 것이라고. 아.. 이게 무슨 경우일까. 그럼 정산은 언제 하려고 하지? 예약한 부킹닷컴에 분평 체크인과 체크아웃 시간이 떡하니 나와있는데. 5시에는 일어나야 하는 걸까.


  다음날 새벽,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4시 반쯤 일어나 사무실에서 대기하였다. 아무리 체크아웃을 6시에 한다 하더라도 5시에 문을 두드리는 것은 실례일 테니, 새벽 기도하는 마음으로 5시 반까지 기다렸다. 인기척도 없고 정말 6시 체크아웃하려나 싶어 1번 방으로 올라가 똑똑! 노크를 하였다. 생각해보니 이분들 할인가로 예약을 했었구나.. 원래 가격이 성수기 기준 70유로였는데 해당 방이 남아있어 가격을 50유로로 낮췄었다. 이게 왜 기억이 나냐면 초록색의 100유로 지폐 한 장 받은 게 기억나서다. 그렇게 정산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앉자 조금 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나무계단이 삐걱댄 뒤 정문이 쾅 하고 닫혔다. 그렇게, 태국 여성들로 구성된 백팩커 팀과 이별을 하였다.


  그리고 아침, 조식을 끝내고 손님들 체크아웃을 시킨 뒤, 베라가 조식을 치우는 동안 객실 체크를 위해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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