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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Jun 19. 2023

한 소녀에 대하여

최근에 퇴사 후 급전이 필요해 B마트 일일 알바를 했었다. 이틀 정도. 몸을 쓰는 알바는 거의 5년 만이라 힘들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머리를 복잡하게 굴리기보다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몸을 기민하게 움직이면 되는 일. 운동이라 생각하고 하면 되는 것이니까.


여덟시간 정도 하는 일이었는데 하루 하고 느꼈다. 이건 정말 오래 할 일이 못 되는구나. 이전에 했던 식당알바는 손님이 들어오는 양에 따라 요령껏 쉴 수 있는 시간이 5-10분씩 주어졌던 것 같은데 여기는 정해진 휴게시간을 제외하고는 말그대로 컨베이어벨트처럼 몸을 계속 움직여야 했다. 지점 근방에 있는 몇 개의 동에서 주문이 오니 그 간격이 짧을 리가 없다. 주문이 오면 물건을 담고 포장을 해서 라이더에게 전달한다. 주문된 물품의 무게는 때에 따라 9kg을 육박하기도 한다. 라이더에게 전달하고나면? 주문은 쉴새없이 들어온다. 그럼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여덟시간동안.


좋은 경험이긴 했으나 다시는 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왜 일일크루라는 이름의 일용직을 쓰는지 사업자의 마음도 알 만했다. 왜냐면 매일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거든. 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곳에도 상주직원은 있었다. 일일크루라기보다는 정기적인 출근일이 있으신 것 같은 분들.(아니면 일일크루로 계속 일을 잡으시거나) “오늘 출근하는 날이었어요?”라는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바닥에 서 꽤 잔뼈가 굵으신 분들. 일일크루가 하는 일에 더해 매장 재고 관리나 고객 관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일용직이 대부분이더라도 조직 운영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사람은 여전히 필요하니까.


나이대는 20대부터 50대 정도로 다양했다. 젊은 축에 속하는 상주직원 두 명은 사무실에자리가 있는 정도로 그 공간에서는 관리자로 통하는 듯 했다. 그 외 분들은 사실상 매장관리, 고객관리까지 할 뿐 하는 일은 일일크루와 같다. 그분들이 어느정도의 급여를 받는지 혹은 우리와 같은 일용직 처지인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체력적으로 굉장히 고된 일을 자신의 업(중 하나)로 삼고 계신 것은 확실했다.


단연 눈에 들어온 건 같은 타임에 일했던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잔뼈가 굵은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살짝 막혀있던 업장의 흐름이 시원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분위기 메이킹 능력. 30초만 있어도 손이 얼어버릴 것 같은 냉동실에서 얼음팩 박스룰 꺼내오며 그녀는 “아 시원하다!”할 뿐이었다. 낭창한 목소리로 일일 크루에게 업무 디테일을 알려주신다. “수박은 박스채로 가져오셔야 돼요!”, “상품 누락 안되게 해주세요~!” 미디어가 묘사하는 소위 ‘억척아줌마’와는 다른 느낌의, 어찌보면 명랑 만화에 등당하는 ’소녀같은(지극히 스테레오타입에 기반한)‘ 분이었다. 아들, 딸 뻘 되는 직원들에게 ”나 아직도 밥 못 먹었다?“라거나 말을 편히 거는 그 모습이나 그녀의 목소리나.


그녀는 소위 플랫폼 노동업에 잔뼈가 꽤 굵은 것 같았다. 남들은 ‘투잡’이나 ‘위험에 노출된 긱워커’라 여길지 모르는 배민 라이더라는 업을 두고 “그거 꽤 좋지 않아요?”라고 라이더 출신 크루에게 묻는다. 그래 신문이 말하지 않는, 실무자들만 아는 무언가가 있겠지. 스스로가 오만한 것을 알지만, 난 소녀같은 그녀가 이 말을 할 때, 정말 오만하게도 그녀에게 잠깐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플랫폼 시장이 커짐에 따라 노동 시장도 변화했다고. 플랫폼 노동자층의 확대가 이에 속한다. 기존의 노동자 보호체계가 규정한 ‘노동자’로 보기에 애매한 노동의 형태와 지위를 가진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N잡의 일부로 이 업을 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지민, 이걸 ‘전업’으로 삼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저마다 사연은 다양하겠다. 돈이 되서 하는 사람도 있겠고. “밀려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밀려난 사람들”. 대형마트가 현대적 자동화라는 명목으로 셀프 체크인 계산대를 설치하며 밀려난 ‘캐셔’, 은행이 창구 자동화를 명목으로 밀어내 버린 창구직원 등등. 그래. 교과서에서 그러지 않았나. 4차 산업 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가장 빠르게 ‘도태 혹은 대체’되는 노동자들은 ‘저숙련 노동자’라고.


밀려난 이들은 생계를 위해 새로운 일거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들은 플랫폼 노동이라는 별천지에 아마 가장 먼저 발을 들인, 개척자였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세계의 ‘격변’을 가장 먼저 그리고 온 몸으로 겪어야 했을 사람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먼저 발을 맞춰야 했을 사람들, 그 변화에 누구보다 빨리 ‘적응해야 했을 사람들’.


더 건방지고 오만하게 나는 다시 ‘소녀같았던’ 그녀를 생각한다. 그 분의 명랑 소녀스러움을 나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을 플랫폼 노동자의 ’자질‘에 연결짓는다. 물불 가리고 할 것 없이 주어지면 군말을 하기보가 일단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움직여서 1인분은 해야했을 테니까. 빠른 적응에 있어 명랑하고 밝은 성격은 꽤나 필요한 성정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타고난 성정이 혹은 삶의 궤적이 그런 성격과 더불어 적응력을 길러주지 않았을까. 난 어딘가에서 밀려난 사람이었을, 그래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했던, 이렇게 고된 노동 현장에서 밝게 일하는 그 50대 여성이 대단하면서도 참으로 오만하게도 애처로웠던 것 같다.


글을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라, 이제 계속 그녀의 삶에 대해 궁금해 했던 내 감정의 근원을 알 것 같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오만한 사람인지도 역겨울만큼 통감한다. 같은 곳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잠깐 들른 사람이니까’라는 태도로 동물원 원숭이 보듯 사람을 평가한다는 사실이. 지독하게도 역겨운, 우월감에 사로잡힌 관찰자.


분석과 자기혐오를 동시에 하게 되다니. 나란 놈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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