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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Oct 13. 2024

제 29회 부산국제영화제 Dump

10/08 - 10/10

10/9


단편섹션-2

<과녁은 어디에>

단편 시나리오의 정석이 아닐까 싶었다.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소리를 강조한 사운드는 보는 내내 묘하고 묵직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중반부에 양궁의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는 선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현란한 컷편집 연출은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결국 주인공이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장면이 다소 상투적으로 연출되었는데 의도인 건가 싶었다. 상투적인 연출 덕분에 마지막 반전이 더욱 더 임팩트 있게 다가왔으니. 

그럼에도 영화가 내러티브에 너무도 많이 종속되어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마지막 반전에서 오는 통쾌함, 현란한 컷편집이 전하는 전율 외에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인가? 하면 의문이 남는다. 잘 짜여진 내러티브, 정석을 따르면서도 도발적이고 트렌디함을 가미한 연출이 곁들여졌지만, 인물의 감정마저 '정석' 수준에 머물러 있는 지점은 다소 아쉬웠다. 


<드라이버>

이번 섹션 중에서는 가장 담백하게, 그러면서 강하게 와닿았다. 이 작품 또한 정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상투적인 면이 많다. 그럼에도 캐릭터에 대해 애정을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유림>

이야기가, 대사가, 샷이, 감정선 묘사가 다소 상투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때로는 투박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상투성과 투박함 안에서도 작가이자 연출자가 굳게 밀고 나가는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된다. 


<일렁일렁>

제목과 소재에 어울리는 신선한 연출. 


<사스콰치 선셋>

대담하지만 아쉽다.

빅풋 가족이 주인공이다보니 대사가 사실상 없다. 

원초적인 동물의 행동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코믹한 순간을 만들기도 하고, 죽음의 순간에는 공포감을 강하게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차원적 묘사로 주욱 밀고나가는 듯한 영화는 어느샌가부터 기이함이나 매력은 잃어버리고 평평해진다. 


<나미비아의 사막>

아마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중 최고였다. 

지인의 소개로 야마나카 요코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이 영화를 영화제에서 보았다. 칸에서 수상을 했다든지 일본 인디영화 씬에서 야마나카 요코가 이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든지 하는 외부적 요인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영화를 보고자 했다. 

이 영화를 '독특한 젊은 여성 감독이 그려내는 도발적이고 발칙한 20대 여성의 초상' 정도로만 치부하는 건 아무래도 아쉽다. 이 영화는 그보다 깊고 넓으며 섬세하다. 

성긴듯 촘촘하게 짜여진 이야기와 섬세한 샷 안에서 관객들은 '카나'가 왜 이토록 무료하고, 무력하고, 불안한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혹자는 카나를 좋아할 수는 없겠지만, 섬세한 샷 연출들은 그 누구라도 카나의 소외와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도 몇 몇 샷들이 기억에 남는다. 감독인 야마나카 요코의 따뜻함과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주인공을 이해하려 하면서도 섣불리 '이해했다'고 자만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녀와 그 비행을 비난할 수 없게 된다.

도발적인 인물을 다루는 여성 서사 영화에서 요코 감독이 보여준 시선이 참 좋았다.


<블랙독>

중국사회에 대한 비판, 풍자 이런 것들보다도 그저 감독은 중국을 배경으로 기깔나는 서부극을 찍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난 그 어린 패기가 좋았다. 


<빛이 산산이 부서질 때>

이 영화의 이야기는 참으로 문학적이다. 그래서 좋다. 높은 성당을 아래에서 위로 훑으며 뒤로 걸으면 발이 땅에 붙어 있어도 날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 아이디어와 이미지는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이들의 경쟁과 연대, 사자와의 작별에 다시 한 번 변주되어 쓰이며 그 작은 행동의 의미를 확장한다. 

다만, 초중반부에서 의도가 뻔히 보이는, 혹은 지나치게 형식화된 샷들은 어째 감정의 맥을 뚝뚝 끊는 듯하고, 흥미로운 인물의 감정을 다소 상투적인 시퀀스와 장면들에 담아내어 인물의 감정에 대해 '논리적 이해' 이상의 '감정적 공감'을 해볼 수가 없다. 얘네들이 슬퍼하는구나, 슬프네. 이런 상황이 참 난처하다는구나, 난처하네. 에 머무는? 


<리얼 페인>

<나미비아의 사막>과 함께 올해 부국제에서 본 영화 중 최고였다. 다소 정도를 따르는 듯한 서사다, 싶으면서도 각본가인 제시 아이젠버그의 재기와 인생에 대한 통찰이 덕지 덕지 묻은 대사 안에서 관객은 완벽히 그에게 '조련당한다'. 

다른 긴 말은 필요 없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인생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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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성과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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