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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Apr 10. 2021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느와르의 외피를 쓴 멜로물" 감독의 말이다. 이 영화 감독 말대로 흘러간다.


한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안보던 때가 17년도였다. 그래서 본래 퀴어영화를 많이 찾아봄에도 한국영화계에 작게 일었던 불환당 신드롬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친구의 추천과 지천명 아이돌 설경구 배우의 소식을 뒤늦게나마 접하고 영화를 찾았다. 느와르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대표작들은 다 봤다. <신세계>, <무간도>, <무뢰한> 등(이보다 더 많이 보기는 했다.) 신세계나 무간도가 전형적으로 남자들의 세계에서 배신이 난무하는 영화라면, <무뢰한>은 그보다는 느와르에 항상 드러나는 신뢰관계를 남-녀 관계로 이끌어 온 작품이다. <무뢰한>이라는 작품을 굉장히 좋아한다. 감정선이 세밀한 점이 정말 좋았는데, 7할은 전도연의 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뢰한>처럼 느와르와 멜로 사이에 걸친 작품이라면, 밸런스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느와르적 쾌감과 멜로영화에서 볼법한 그 애틋한 감정선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것. <불한당>은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느와르+멜로인데 남자들의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멜로라는 점에서 한국영화로서는 꽤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다. 그렇게 흥행한 영화지만, 이정도 반응을 이끌어낸 것은 꽤 성과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느와르적 쾌감이 주목적이 아닌 영화이기에, 클리셰가 난무하는 것 정도는 어치저치 넘어가기로 했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은 이 영화가 '멜로'에 방점이 찍힌 영화라고 관객에게 알리고 있다. 재호가 현수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반전의 핵심은 (느와르영화치곤) 김새게 일찍, 그것도 두번에 걸쳐 나온다. 재호와 현수의 직업적 줄다리기가 핵심인 느와르 영화라면 이는 최악의 선택일테지만, 영화는 그 최악의 선택을 함으로써 선언한다. "이런 재호가 현수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지 지켜봐라." 그렇다면 이 영화의 묘미는 느와르적 스타일에 녹아든 퀴어코드, 감정선일테다.


다만, 그 감정선이 몇몇 장면에서 투박하게 드러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세밀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물론 퀴어코드의 주체는 재호다. 이 재호라는 인물이 표현할 사랑이란 감정은 투박할 수밖에 없다. 그 세계에서 사람 믿지말라고 말하는 사람이 표현하는 사랑은(어쩌면 자신이 그 감정을 느끼는 지도 모를 사람) 세밀할 수 없다. 다만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꼭 인물의 연기나 대사로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출이라는 측면에서 미쟝셴이나 분위기 연출 등을 통해 분명히 그 혼란스러움, 무지함, 애틋함을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그 단계가 생략되어 있던 것 같았다.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을 모르는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퀴어영화의 사례는 찾기 힘들다. 그러나 타이타닉에서도 전혀 사랑에 빠질 수 없는 두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에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부여한 장면이 선수상 명장면이었던 것은 그 두사람이 키스를 해서라기 보다는 그 장면이 감독이 표현한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설령 키스를 하지 않아도 그 장면을 통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신이 아쉬웠다. 동성애 코드에 익숙한 나였기에 이 장면이 어떤 감정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단편적 장면이 너무도 좋았던 것에 비해 그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강도는 다소 약했다. 감정의 맥락이 앞서 제시되지 않아 그 효과가 덜했다. 물론 엘리베이터 씬이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퀴어코드를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후에 현수를 죽이지 못하는 재호의 모습이나, 죄의식을 가득 담아 현수가 재호를 죽이는 장면으로 귀결될 때까지 관객은 느와르라는 표피에서 멜로를 읽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사랑이 느와르의 세계에서, 재호라는 인물에게, 현수라는 인물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그 심층 서사가 드러나지 않아 멜로 또한 평범한 수준에서 머문다는 점이 아쉬웠다.


평범한 영화라고 느꼈다. 일찍이 멜로에 느와르적 재미를 넘겨준 것치고 멜로의 서사도 평범한 점이 아쉬웠다. 퀴어영화이기 때문에 다른 멜로와 차별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연출적인 미장센 등의 장면에서 얼마든지 그 세밀한 감정선을 그려냈을 수 있었을텐데, 그러한 독창성이나 창의성 측면이 다소 무난한 점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한국 느와르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퀴어코드를 녹여낸 영화가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놀랍기는 하다. 


특정 코드를 서사에 녹여내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 여성서사나, 퀴어서사나 모두 많은 작가들이 노력을 해 대중적이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서사를 고안해내야 하는 단계이다. 그전에는 이야기된 적이 많이 없으므로. 기존의 컨벤션을 탈피하면서도 더 세밀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만한 그 서사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불한당은 그 초기작 정도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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