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 남겨두고 다른 건 다 미뤄두자
8년 동안 알고 지낸 베프가 있다. 고등학교 때 뭐 난 항상 그렇듯 내성적이고, 늘 뒷자리에 앉아 혼자 공상하던, 애들 말로는 좀 이상한 애였다. 내 친구는 옆반이었는데 야자시간에 스윽 오더니 “너가 혜지니? 너 영화 좋아한다매?” 이러면서 운을 띠우더니 곧 우리는 친해졌다. 그 아이는 나같은 사람도 무장해제시킬만큼 재밌는 사람이었다.
사실 베프라고 하기 뭐할정도로 우리는 자주 안만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 되어보기는커녕 서로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학기에 한 두번 꼴오 만날 뿐이었다. 메세지를 매일같이 나누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아마도) 이 아이는, 서로가 가장 친애하는 사람 중 하나라고 확신한다.
관계는 빈도가 아니라 밀도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달에 한번 만나도 어떤 방학에는 10일간 해외 여행을 같이 했다. 메세지는 거의 안해도, 가장 힘들고 지친 때, 밤이든 새벽이든 불쑥 전화해 어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마주앉아서도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서로의 마음 정도야 어느정도 짐작은 하면서도, 그 이상의 공백을 채우고자 무례를 범하지 않는 그런 사이다. 우리는 베프다.
그런 우리가 이제는 “취준생”이 되었다. 이 아이는 지나치게, 부러울 정도로 성실하고 멋진 터라 나보다 1학년 전
정도 앞서 있다. 나보다 한 발자국 빠른 그 애는 그래서 나보다 먼저 실패를, 성취를 맛보는 중이다. 물론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어찌됐든 초년생이니까. 솔직히 지금 너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 될 거란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난 너만큼 강하지 않으니까. 난 금방 부서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너는 잘하고 있으니까. 너는 너무 잘하고 있다.
너는 이제 예전처럼 정신없이, 불쑥 전화하는 일이 없어졌다. 나도 이제 그러지 않는다. 너도, 나도, (너는 아마 나보다 더더욱) 이제 힘든 일에, 슬픈 일에, 멘탈이 부서지는 일에, 놀라거나 흥분하는 일은 없기 때문일테다. 힘들고 슬프고 무서운 게 일상의 기본설정값이니 놀랄 리가. 우리는 확실히 서럽게, 무던하게, 어른이 되었다. 절대 하고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항상 응원하고, 잘되길 바라고, 더 따뜻한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라고. 매일 말해주고 싶다.
“힘내”라는 말은 하기 싫다. 내가 본 너는 항상 가진 힘을 모조리 써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우리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더욱 말하기 싫다. 힘 빠지니까.
지금은 연락이 뜸해졌지만 확신한다. 이 시간만 지나면 너랑 나랑은 다시 새벽 언저리에 불쑥 전화해서 지금의 찌질하고 슬픈 시간에 대해, 그 날의 지친 감정에 대해, 맥주 한캔 안주거리러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은
“우린 이미 힘은 내고 있으니까, 더 잘 버텨보자”
만 남기고 다른 건 모두 미뤄두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