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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혜BaekJi Sep 02. 2021

참을 수 없는 만남의 가벼움

틴더와 관계에 대한 생각

틴더라는 앱을 처음 사용한 것은 2년 전, 내가 미국에 있을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어플을 통해 누구를 만났다는 사실은 조심스레 밝히는 그 무엇이었다. 미국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자친구를 어떻게 만났냐, 그 사람 어디서 알게 됐냐, 하면 꼭 고개를 내 쪽으로 바싹 가져와서는 속삭이듯 말한다. “틴더… 아니?” 다만 틴더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혹은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는 점이 달랐다.


예상만큼 신세계였다. 사람 얼굴이 뜬다. 0점 몇 초만에 이뤄지는 스와이핑, 맘만 먹으면 10초 안에 30명의 얼굴을 볼수도 있다. 그런 인터페이스보다 놀라웠던 것은 이용자들의 대담함이었다. 자연스러운 얼굴사진에 FWB(friends with benefit), ONS(One Night Stand)라는 프로필 소개가 자랑스레 각인돼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이럴 수 있을까. 더군다나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 기숙사에 머무는 미국 대학 특성상, 어제 스와이핑-매칭된 애랑 한번쯤은 스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쿨할 수가 없다.


대화는 마치 깃털이다. 10분만에 변심하면 대화를 잘 이어가다가도 읽씹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내 성향을 밝히기도 한다. M인지, S인지. Casual을 원하는지 serious한 것을 원하는지. 틴더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가벼움”이었다. 요근래는 이 감수성이 정확히 한국에도 자리잡은 것 같다. 멀지 않은 지인으로부터 틴더”썰”을 듣게 되니 말이다.


가벼움을 비난만 하지 말아달라.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 매일 채우고, 더해야 하는 20대의 몸은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졌다. 그 몸뚱아리로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뺄 수 있는 것은 빼야 한다. 한 편에서 더하는 삶이라면 다른 한 편에서는 뺄셈의 삶이다. 가장 손쉬운 뺄셈은 인간관계의 피로함이다. 연애라는, 새로운 친구와의 관계를 향한 설렘은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겪어보면 알게 된다. 연애만큼 지친 것은 없다고. 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지친 짐더미를 맬 수 있을 때는 정해져 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 과감히 빼버린다.


사랑과 책임의 무게, 그 피로감을 벗어 던진 20대들, 남녀(혹은 동성)관계를 표현하는 단어는 이 세상 개인의 수만큼 많아졌다. 사랑 없는 섹스의 밤을 보내기도 하고, 낯선 남녀(혹은 동성)의 설렘은 간직한 채 친구처럼 술을 먹고, 취미를 나눈다. 혹 누군가는 사랑을 찾기도 한다. 외설스러울 수도, 건전할 수도, 건설적일 수도, 실없을 수도 있는 만남들이다. 이런 가벼운 만남을 비판하는 것도 자유고,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자유다. 다만 이 다양한 형태의 만남들은 사랑을 빼버리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이 지점은 생각해 볼 법하다. 사랑이 없어서 오히려 20대들은 사랑있는 관계= 정석, 남녀관계는 love or nothing이라는 고정적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가능해진다. 비참해지지 않을 권리. 상대방이 나를 연애상대로 여기지 않아도, 우리가 혹여 원하는 것이 달라 엇갈려도, 비참해지지 않을 권리. 온전히 파트너로, 친구로 남아 있어도 스스로의 여성성, 남성성 혹은 다른 무언가가 무시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게된다. 가벼움이 가져온 관계규정의 자유, 곧 자기 자신의 자유가 된다.


그러나 누구는 여전히 가벼운 관계에서 “쿨하지 못하다”. 아쉽지만 인간의 행동은 교과서대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가벼움을 찾는다고 해놓고 상대방에게 마음이 기우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 빠진 관계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상당한 규칙위반이다. 규칙위반의 결과는 아웃이거나, 경고다. 사랑이 침입한 마음을 부여잡은 이들에게는 비참하지 않을 권리가 박탈된다. 이쯤되면 알법하다. 온전히 자기 자신의 기분과 성향에 맞춘 관계의 모습, 스스로가 비로소 컨트롤할 수 있는 관계.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스스로의 마음에는 자유를 주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 오히려 내 마음을 꼭 부여잡아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만남이 가벼워진만큼 그 상처도 가볍다. 다르게 말하면 상처가 여전히 있다는 말이다. 서로의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당혹스러움, 목적은 같은데 미세한 차이를 느낄 때의 아쉬움. 회복기간이 무척 짧지만 상처는 상처다.


뺄셈의 삶은 언뜻 보면 쿨하다. 하지만 무거운 관계를 회피할수록 우리의 마음이 견딜 수 있는 생채기의 크기도 점차 작아질 것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 그래도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심신은 너무 지쳐있으므로. 좀 가벼운 게 어떻단 말인가. 서로의 관계를 규정하는 단어들을 쌓아가는 것, 자그마한 상처들에 현명하게 대응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 참을 수 없는 관계의 가벼움에 몸을 던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서글프게도 무게만 다를 뿐 귀찮은 일은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원래 그렇다, 인간관계라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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