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이한다고 대부분 이름이 달린 날들을 지나쳐 가곤 했다. 외려 참석하지 못한 미안함보다 당당함이 앞섰다. 대부분 가족들도 질끈 눈을 감아주었다. 돈 버는 사람은 그래도 되는 세상에 지금까지 살고 있다. 순서대로 세상을 떠난 부모님 덕에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었다. 어른인 나는 새해를 이틀 남기고'새해 마지 꼰대 이야기'를 장황히 준비했다. 이미 어른이 된 자식에게 꼰대는 환영받지 못할뿐더러 괜히 사이만 멀어지기도 한다는 걸 안다. 제 몫을 하고 거처가 준비되었다면 벌써 나가도 나갔을 자식들! 미련 그득한 어미의 욕심에 함께 살기로 하고 2년의 말미를 두었다. 그중 일 년이 지났다. 내가 원해서 함께 한 일 년, 더 묘한 사이로 지냈다. 2020년을 하루 남겨놓고 벌어 먹이는 사람으로서 일방적인 '꼰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계획대로 삶이 살아지면 참 좋겠지만 대부분 계획은 계획으로 막을 내린다. 꼰대 이야기를 하려고 모아두었던 기운은 예상치 못하게 시작된 출산에 모두 써 버렸다. 예전 같으면 없던 기운도 꺼내 쓸 만큼 단단했겠지만, 없던 기운은 이제 없다. 대신 그 기운으로 출산을 도와야 하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힘의 안배를 위해 '2020년 꼰대 이야기'는 뒤로 미루기로 한다.
12월 초에 올해 마지막 아기를 받았다. 한 달여를 잘 쉬었다. 새해에 태어날 아기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요즈음을 보냈다. 여유로워지니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새삼 아기를 받아내는 일처럼 즐거운 일이 있을까라는 자족하는 마음도 들었다. 게다가 아기를 받는 일을 하며 호구지책을 해결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아기들을 만나고 싶어 얼른 한 해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와! 급한 녀석이 태어나려 한다. 2020년 마지막 날 새벽에 알려온 진통 소식은 오랜만에 나의 온 세포를 깨웠다. 몸과 마음에 시동이 걸리고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심장이 둥둥거린다. 아기의 탄생은 나를 살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12월 31일의 새벽 출근길, 보름달이 지고 있다. 머리 위가 아닌 코 앞에 닿을 듯이 나타난 달의 기운에 흠칫 숨이 멎었다. 별들은 달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달빛은 가뜩이나 영하로 내려간 날씨를 더 창백하게 한다. 바깥 온도는 영하 15도! 미처 말리지 못한 머리카락이 서걱서걱 얼어버린다. 달이 아직 둥근 것을 보니 오늘이 보름인가? 그렇지! 아기들이 좋아하는 보름을 잊고 있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해가 바뀌는데, 얄궂게도 녀석이 태어나겠단다. 동그란 달을 붙잡고 싶은가 보다. 만월의 기운으로 잘 살아갈 사람이 되라고 읊조렸다.
아침부터 시작되었던 아기마지는 저녁이 다 되어 끝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탄생의 순간을 함께 했다. 새 생명은 모두의 기운으로 자라고 태어난다. 탄생의 순간은 '행복'이라는 단어로 충분치 않다. 오글거리는 그 어떠한 단어도 아기를 받으며 얻는 느낌을 설명할 수 없다. 낳는 이나 산모 곁을 지키는 모두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체험한다.
진통을 살피고 움직임을 도왔다. 내어준 나의 몸과 마음 덕분에 아기는 제 길을 잘 찾았다. 2.4킬로의 아기는 너무 작아 '꼬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작은 몸이 허공에 처음으로 버둥댄다. 무릎을 펴고 발차기도 한다. 열 손가락을 폈다 오므리다가 내 손가락도, 옷자락도 잡는다. 방금 태어난 아기는 어미의 가슴에서 안정을 찾았다. 우리도 덕분에 '안정'을 선물 받았다. 태어난 지 여덟 시간 만에 고 녀석은 두 살이 되었다.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된 나의 노동은 저녁 아홉 시에 끝이 났다. 또다시 모두가 떠나간 공간에 홀로 남았다. 밖에 눈발이 날린다. 몸에 힘을 빼고 멍하니 앉았다.
한 해가 네 시간 남았다. 매일이 모여 일주일이 되고, 그렇게 한 달이 가고 한 달이 모여 한 해가 간다. 시간의 흐름은 숙성되어 깊이를 더한다. 올 2021년은 환갑 해이다. 맛있게 숙성된 나이인가를 되돌아보며 마지막 날에 정리한 '새해마지 꼰대 이야기'를 내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