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흘리기

살아가기

by 김옥진

나의 무기는 웃음을 흘리는 것이다.
좋아서도 웃고, 가끔 당혹스럴 때도 웃는다. 알고 보니 가부장적 사고가 가득했던 아버지의 훈육 중엔 웃음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여자는 웃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웃으려 노력했던 거 같다. 덩달아 어머니는 곰보다는 여우가 좋다고 하셨다. 말없고 뚱해 보이는 곰의 느낌보다 살랑거리며 꾀부리는 여우의 느낌을 긍정적으로 보는 어머니도, 진심 아버지와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말을 받아들인 내가 실죽거리며 혹은 교태스럽게, 아님 박장대소하는 웃음 아래엔 그런 가정교육이 들어 있었던 거다. 강제적이던 그렇지 않든 간에 나의 웃음은 부모님의 교육으로부터 왔다. 가짜 웃음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른이 되자 가끔은 정신건강을 위해 입꼬리를 올리려 노력하곤 했다. 화가 나도 입꼬리만 올리면 인체는 웃음기전으로 받아들인다는 말도 믿었다. 어쩌면 웃는 버릇이 나를 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와 정 반대 성향의 남자와 콩깍지가 씌워지고 한통속인 그의 가족을 만나고부터일까? 나와 같지 않다는 이유로 참 많은 언쟁과 다툼을 했다. 웃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웃을 일이 줄고 교태를 부려야 할 일도 전혀 없어진 결혼 생활 중, 사진 속 나의 표정은 잘 웃는 내가 아니었다. 버럭쟁이가 되어 있었다. 바쁜 일상에 웃음을 되찾을 여유가 없었다. 입을 꼭 다물고 각오를 다지는 듯한 얼굴로 살았다. 내가 잘 웃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간이 여유로워지면서 다시 본 내 모습은 곰처럼 뚱하다. 웃지 않는 것은 자유겠지만 나이 먹은 여자의 뚱하면서 화난 모습은 나조차 낯설다. 무기 없이 살아온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가부장적 사고에서 비롯된 웃음일지언정 부모님 슬하에서 자주 웃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아기가 웃는다. 아기의 웃음은 온 가족, 세상 사람들을 웃게 한다. 웃음은 평화다. 그 모습에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엄마젖 안에 들어있는 엔도르핀은 아기를 웃게 만든다. 어미는 아기에게 웃음을 준다. 태어나서부터 아기는 웃음을 먹는거다. 힘들고, 또 힘들고, 미치도록 힘든 것이 모유수유지만 웃음을 선사한다. 웃음의 가치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일깨우는 모유수유는 그래서 멋지다.

비대면 교육이 주류가 된 요즘, 줌에서 보이는 내 표정에 신경이 쓰인다. 비디오를 끄고 화면에 보이는 내 모습을 점검하며 각도와 빛을 조절하고 씨익 웃어보기도 하고 함박 웃어보기도 한다. 잠깐 다른 것을 준비하다 보면 평상시 내 얼굴이 다시 보인다. 뚱한 내 얼굴! 다행히도 줌에서 강의할 때 내 얼굴을 내내 볼 수 있는 것이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예쁘게, 예쁘게! 웃으며 강의하는 나를 보는 것이 기쁘다.

코로나로 본의 아니게 입을 가리고 다닐 때 좋은 점은 마스크 안에서 자주 웃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오 분간만이라도 웃어야지!' 생각하며 걷다 보면, 금세 입꼬리가 내려가 있다. 입꼬리가 참 무겁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입꼬리를 다시 올리며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웃음 흘리기를 한다. 마스크 안에서 나는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씨익 웃기도 한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웃기다. 혼자 낄낄거리는 것을 다른 사람이 모른다는 것도 웃기다.

이젠 나에게 웃음을 흘린다는 것은 더 이상 삶의 무기도 아니고 부모님의 가르침도 아니다. 거울을 보며 나를 위해서도 웃어주고 장성해 품을 떠나갈 어른, 여자, 딸들에게도 웃음을 흘린다. 만물 중에 웃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받은 나, 나만의 무기 '웃음 흘리기'를 다시 써먹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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