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살아가기

by 김옥진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는 고민은 설렌다. 두둑이 봉투를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내 마음이 있는 선물을 주는 것이 더 좋다. 선물 받을 사람의 기억을 몽땅 꺼내놓고 퍼즐을 맞춘다. 둘이 했던 이야기들, 함께 했던 장소와 맛있는 음식들, 주고받은 위로와 찬사들, 혹은 따끔한 충고까지도 꺼내진다. 선물을 고르며 짓는 미소는 덤으로 받는 선물이다. 눈 맞추며 선물을 건네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선물을 생각하고, 결정하며, 사러 나가기 위해 단장하고, 운전을 한다. 큰 쇼핑몰 내에 진열된 선물의 장소를 기억하며 다가갈 때, 그 장소에 내가 고른 선물이 있을 때, 똑같은 물건이라도 살피며 고르는 내 맘도 선물이다.

손가락 하나로 선물이 오가는 시대가 되었다. 쇼핑은 핸드폰 안에서 하면 되고 결정되는 즉시 통장에서 선물값이 빠져나간다. 선물 중 어떤 것은 상대방이 모르고 받지 않아 되돌아오거나, 받을 줄 몰라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도 당혹스럽다. 감사의 표시를 하는 작은 선물조차도 부담스러워하며 안 받겠다는 답을 한 이도 있다. 그 사람은 나처럼 선물을 고르느라 고민도 하고 눈 맞추며 주고받는 선물을 진정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마음만 받겠다고 했는데 내 마음의 어떤 것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손가락으로 고르고 결정하는 선물엔 따듯함이 추가돼야 한다.

일만 하고 살던 남녀가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둘도 없는 선물이 왔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선물에 둘이는 어리둥절하다. '노릇'을 해야만 하는 선물이며, 되돌릴 수 없는 선물이다. 고를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아직 볼 수도 없다. 열 달 후에 개봉해야 한다. 그 선물은 부부만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좋아한다. 나누어 줄 수도 없는데 그들은 왜 좋아할까?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선물을 받는다. 어떤 선물일까 궁금도 하지만 '노릇'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살아갈 이유를 주는 선물이고 살아갈 힘을 얻는 선물이다. 웃음을 주는 선물이고 눈물도 주는 선물이다. 이런 선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대하는 부부는 선물에게 선물이고 싶다.

삶의 곳곳에 선물이 있다. 보이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너무 많아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의 이 자리는 내게 주어졌던 선물들 덕이다. 선물을 받을 땐 감격에 겨워 울어도 되고 함박 웃어도 된다. 내일, 내게 주어질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또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까?

오늘이 35주년 결혼기념일이다. 기념할 만한 날이 와도 심드렁하다 못해 잊어버리곤 한다. 올해도 그럴 뻔했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다 보니 이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오늘의 결혼기념일처럼 심드렁하다. 뭐 그리 신날것도, 우울할 것도, 행복할 것도 없다. 그래도 뭔가 이름 붙여진 오늘, 이케아 카페테리아에라도 가자고 했다. 정식이나, 레스토랑 음식은 양이 많아 더부룩해서 싫다. 간단히 한 두 개씩, 여러 종류의 먹을거리를 고르는 재미가 있는 그곳이 좋다. 따듯한 신맛 나는 원두커피 한 잔, 내가 좋아하는 사과파이 한 조각, 남편의 빵 페스츄리, 목 넘김 좋은 베이컨 감자수프, 볶아진 방울토마토와 검정 올리브 7개가 들어있는 샐러드, 어린이 요구르트 두 개를 골랐다. 사람이 별로 없는 널찍하고 한가한 노랑 테이블에 앉았다. 아주 천천히 먹었다. 결혼을 기념하여 그에게 멋진 분위기도 선물하고, 갖가지 먹을 것도 선물하고, 그곳까지 운전도 하고, 따듯한 내 손도 선물했다. 그는 내게 그를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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