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와 양수를 담고 있는 양막과 융모막은 대체로 진통 중에 터지게 된다. 서로 붙어있어서 구별하기는 쉽지 않으며 사실 아기 낳는 입장에서는 물이 흘러나오면 양수가 새거나 터졌다고 여기면 된다. 막이 터지지 않았다면 자궁 수축은 막 내의 압을 올려 자궁경부를 열리도록 돕는다.
(최면출산 책에는 모든 출산에 관한 단어들을 순화시켜 사용하고 있다. 막이 터진다고 하는 것보다 '열린다'라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열린다'라는 표현과 '터진다'의 의미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터진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어떤 이의 막은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그대로 있다. 아기의 머리가 양막에 싸인 채로 보인다면 의료진은 출산 전 막을 터뜨린다. 반대로 진통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앞서 양막이 먼저 터지기도 한다. 문제는 후자의 경우이다. 진통의 시작 없이 막이 터져도 자연스레 진통이 오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현대 의료는 대부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양수가 터진 즉시 입원을 하여 항생제를 투여받고 유도분만을 하게 되며 태어난 아기에게도 예방적 차원의 항생제가 들어간다. 산도를 통과하며 만난 아기에게 유익한 균들은 항생제로 인해 사멸하거나 약화된다.
양막이 진통보다 먼저 열려 당황한 산모는 자연스레 오는 진통을 기다리지 못하고 출산 장소로 달려간다. 불행히도 우리는 양막이 열리고 자연스레 진통 오기를 기다리라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 병원은 양막 조기 파수(SPRM spontaneous pre rupture of membrane)의 위험성을 고지하며 유도 분만의 당위성을 알린다. 스스로 아기를 낳으려 준비했던 산모는 두렵다. 산모와 아기의 몸에서 천연적으로 분비되는 옥시토신(oxytocin hormon)은 진통을 생기게 하는 호르몬 중 하나이지만 막이 터진 후 투여된 합성 옥시토신 영향으로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 양수가 흐른 후 24시간까지는 기다려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유도분만에 쓰이는 옥시토신을 닮은 합성된 피 토신(pitocin)은 진통을 유도한다. 합성된 피토신은 자연스러운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를 교란시키고, 옥시토신 호르몬과 연관되어 있는 젖 분비에 관여하는 프로락틴 호르몬(prolactin hormon) 분비도 방해받는다. 유도분만은 모유수유의 첫훼방꾼이 된다.
이태원이 시작되는 모퉁이 카페서 수지를 처음 만났다. 작달막한 왜소한 그녀는 입 크게 활짝 웃었다. 아직 배도 부르지 않을 임신 20주인 수지는 첫아기를 받아줄 조산사를 구하다가 나를 찾아냈다. 의료적 처치는 최후의 수단이며 자신의 몸을 믿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 보겠단다. 작은 체구에 당찬 결심이다. 일단은 지켜보자고 했다. 별 탈 없이 막달이 되었다. 수지는 처음 겪는 몸의 신비한 변화, 아기의 움직임으로 숨이 턱에 닿으면서도 꿋꿋했다. 미국인 아빠의 서양 유전자를 닮은 아기는 생각보다 많이 컸다. 양수가 먼저 나올 것 같다.
내 예상대로 결국 진통이 오기 전에 양수가 나왔다. 자연스레 와야 할 진통도 하루가 지나서야 시작되었는데 그나마도 진통은 큰 아기를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병원으로 출산 장소를 변경했다. 수지는 잘 먹고 견뎠지만 양수는 계속 흘러나왔다. 감염의 우려로 항생제도 투여되고 수지의 의견을 반영해서 자연진통이 좀 더 세어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하루하루가 기록 경신이었다. 기다리는 의사도, 조산사도 애간장이 녹았다. 이렇게 기다려도 되는 걸까? 그럼에도 수지도 태아도 꿋꿋했다. 지루한 진통은 벌써 5일째! 드디어 6일이 지나가는 밤에 출산이 임박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출산 방은 숨이 넘어가는 수지의 힘쓰는 소리와 그녀를 응원하는 열기로 가득했다. 3.8킬로! 튼실한 아들은 작은 그녀의 몸을 간신히 빠져나와 품에 안겼다. 지쳤을 만도 했겠지만 수지는 또랑 한 목소리로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을 세었다. 결승테이프를 통과한 마라토너 같은 수지에게 남편은 볼을 비벼대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양수가 터진 지 6일, 수지는 그녀의 의지대로 아기를 낳았다. 둘째 아기는 남편의 나라인 미국에서 조산사와 함께 집에서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들 수지의 출산이 무모하다고 했다. 위험하다고 했다. 두 생명 모두 건강한 것은 운이 좋아서라고 했다. 다시는 그런 기다림은 하지 말라고 충고도 했다. 하지만 수지의 의지와 무관하게 출산이 진행되었다면 수지는 제왕절개로 아기를 맞았을 것이다. 수지의 자연출산 성공은 그녀의 의지와 엄마 닮은 아기의 강건함, 수지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준 의료인들의 콜라보였다. 양수가 터졌다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 이유로 기다림 없이 수술로 아기를 만나는 것 또한 옳다고 할 수 없다. 수지의 기록은 아직도 경신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