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아이를 낳을 미국 산모 티나는 자신은 절대로 병원서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입에 힘을 주어 말했다. 산업적인 현대의 출산을 경험한 그녀는 그래서 더 강력하다. 강성의 남편마저 이 결정에 토를 달지 못한다. 내게 깐깐하게 보이려 애쓰는 남편과 자신의 출산을 도울 조산사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그녀가 대비된다. 아마 매번 출산 때마다 출산방법에 대해 부딪치지 않았을까? 까탈을 부릴 시간에 사랑을 전하는 것이 좋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는 여전히 그런 제스처가 아내와 아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출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미국에서의 첫 아이의 출산은 티나에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행복하지 않았고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래서 둘째는 미국 조산원에서 낳았다. 훨씬 인간적이었다. 그때도 남편은 불만스러워했으며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장소와 사람들을 원했다. 연이어 셋째는 대만에서 조산사와 함께 가정 출산을 하였다. 제일 행복한 출산으로 기억되었기에 어느 나라에서든지 앞으로의 출산은 집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남편의 발령지는 한국, 넷째 아기가 생겼다. 발령지마다 가정 출산을 할 수 있는 조산사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캠프 내에 거주하는 산모가 가정 출산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와의 첫 만남.
미군부대 입구의 검열을 마치고 미군가족이 머무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당신의 조산사 라이선스를 가져와라!
수중 출산을 하고 싶다!
풀은 어떻게 준비하냐?
물 끌어오는 호스는 가져오냐!
그냥 일반 수돗물을 써도 되냐!
위험하면 어쩔 거냐!
산소는 가지고 오냐!
만약 조산사가 늦게 오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 부대 내의 병원으로 가게 되면 얼마를 지불해야 하냐!
진행과정에서 병원으로 후송할 경우 너의 서비스는 어디까지며 그것 또한 얼마를 지불해야 하냐!
너 혼자 오냐! 아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오냐!
아이 셋을 낳은 남자의 질문은 첫아기를 낳는 것처럼 경직되어 있다.
.
.긴긴 질문 중에 아주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산소였다!
반대로 내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을 안정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두 번째 만남에는
출산 상황 연습과 포터블 수중 출산 풀을 만들기,
집안 구석구석 위치 알아놓기, 출산물품 챙기고 부족한 것 알려주기, 큰 아이들과의 인사가 끝났다
참, 친정어머니도 먼 곳으로부터 도착해 있었다.
어머니의 존재는 남편의 단단함을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방문 때도 또다시 "산소"예기를 꺼낸다
가져올 것이니 걱정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편의 미심쩍어하는 눈초리는 기분을 상하게 했다.
"이그!!!! 그냥!!!!!"
새벽에 수축이 시작되었단다
그 산소!
벌떡 일어나 산소부터 챙겼다. 그 남편의 긴장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미리미리 티나 집 근처에 가 있는 것이 상책이다 싶다. 아침 일곱 시, 반포대교 근처에 도착했다. 어떠냐고 문자를 했더니만 아직 불규칙하단다. 일찍 들어가 봤자 불편할 것 같아 반포대교 한강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편의점에서 물 한 병 사고 자전거족과 롤러 브레이드족, 조깅족들을 바라본다. 나는 대기 중인데 그들은 한가로워 보인다. 늘 남의 떡은 커보이는 법! 좌우지간, 강바람은 좋다. 가정 출산은 낯선 곳의 풍경과 함께하는 신선함이 있다.
아홉 시쯤, 묵뚝뚝한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티나네 집에 들어갔다. 티나는 침대에 그냥 누워있다. 아기 심음은 정상이고 진통이 미약한 듯 보여 내진은 하지 않았다. 산소통과 출산준비물들을 들여다 놓고 수중 출산 풀을 준비시켰다. 진통이 약해서 다시 부대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이 없다. 이제 막 셔터문을 열고 있는 이태원 뒷골목의 작은 커피숍이 보인다. 가게 안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앉아 모닝커피를 마신다. 인쇄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조간신문도 뒤적거려 본다.
남들이 보면 이른 아침, 참 한가로운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내 속은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난다.
자기네 집 근처서 머물고 있는 내가 부담스러운지 자꾸 아직 수축이 불규칙하다고 문자가 온다. 미안한 마음일 거다. 괜찮다고 했다. 내 삶의 많은 부분은 기다림이며 이미 충분히 익숙하다.
열두 시!
다시 들어갔다.
미군부대 문지기 아저씨가 자꾸 들락거린다고 눈치를 준다. 여긴 대한민국이고 난 이 나라 국민이고 아무리 치외 법권 지역이라지만 정당하게 들락거리는 것에 눈치를 주는 것이 화가 난다. 자국민 들볶아대는 것은 위아래가 없는 나라다.
수축이 아직도 시원찮다. 아기 소리만 듣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내진하고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 진찰을 했더니 6센티나 열려있다!
집에 갔다간 큰 일을 치를 뻔했다. 빠르게 수중 출산 준비를 한다, 물의 온도를 맞추고 풀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출산을 위한 물품들을 내 방식대로 준비했다.
"산소!"도 눈 앞에 있다.
산모는 물에 들어가 한 시간 반 정도 있었다. 거의 진행이 되었는지 강한 수축에 양수가 터졌다. 깨끗지 않은 태변 색의 양수가 나왔다. 올 것이 왔구나!
덜컥! "산소"가 생각났다.
그리 까칠하게 굴더니만 결국 산소 쓸 일이 생기려나?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불안하게 만들었을까?
양막이 터진 후 몰아치는 진통에 아기 심박수가 떨어진다. 사실 보통의 산모였다면 그냥 물안에서 아기를 낳도록 했겠지만 남편의 불안은 내게 계속 전이 되고 있었딘. 태변 섞인 양수를 보니 더욱 더 불안했다.
기다려? 말어? 기다려? 말어?
그 사이 산모는 힘이 들어간단다.
안 되겠다! 남편의 불안이 나를 이겼다.
내 호흡이 빨라진다. 티나에게 짧은 설명을 하고 물 밖에서 아기를 낳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내가 지휘권 자다.
이미 아기는 거의 세상 나오기 직전이었다.
힘주지 말고 황홀하게 낳자고 한 계획은 지킬 수 없다. 힘을 줘야 했다. 산소도 이미 주기 시작했다.
수축이 오자 아기 머리가 까맣게 보인다. 두 번째 수축이 오자 머리가 나오고 몸이 스르르 나왔다.
우렁찬 울음과 더불어 나의 "산소" 트라우마는 한방에 날아갔다. 탯줄 색깔과 피부도 깨끗하다
태변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호흡과 맥박도 서서히 잦아든다
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족 모두가 뛰어나왔다.
딱딱한 그가 웃는다. 그를 만나고 처음 보는 웃음이다. 아! 저 사람도 웃을 줄 아는구나!
남편의 허세와 불안에 맞춰진 산모들을 종종 본다. 그들에게 "출산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고 ,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남편에게서 전이된 불안은 두 생명에게 이롭지 않음을 절실히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