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 이야기-
3주나 남은 출산 예정일, 느긋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배가 아프다. 설마 진통은 아니겠지! 점점 더 아프다. 아무래도 아기가 나오려나 보다. 조산사에게 배 아픔을 알렸으나 초산이고, 예정일이 아직 남았으니 좀 기다려 보자고 한다. 내 생각도 그녀와 같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아픈 간격이 오분 이내이다. 진통 같다. 상황을 알리자 담당 조산사는 빨리 준비해서 오라 한다. 사실 준비할 겨를도 없다. 옆자리 동료가 고맙게도 자기차로 데려다주겠다 하는데 나보다 더 당혹스러워한다. 남편이 근무지로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차 안에서 아기가 나올 것 같다. 고마웠다. 가는 길에 진통이 더욱 휘몰아쳤다. 동료는 조산사와 통화를 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세어진 진통은 양수를 터지게 했다. 이젠 힘까지 들어간다. 내비게이션이 십 분 후면 도착한다고 한다. 힘을 주지 말라는데 진통이 올 때마다 힘이 들어간다. 어떻게 십 분을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일층까지 데리러 나온 조산사의 휠체어가 내달린다. 엘리베이터에 어떻게 올랐는지 모른다. 출산 방에 들어가 엎드렸다. 저절로 나도 모르게 그랬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그곳은 어둑하고 따듯했다. 또다시 진통이 온다. 똥이 나온 것 같다. 진통이 사라졌다. 잠시 후 아기의 켁켁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나왔나 보다. 무릎을 꿇은 채 다리사이로 건네지는 알몸의 첫아들은 미끄덩거렸다. "수고했네~고맙네~고마워 ~" 주술을 외듯 중얼거림은 계속되었다. 출산했다는 소식에 근무를 뒤로하고 달려온 남편의 눈가가 그렁그렁했다.
-하연을 본 내 이야기-
아기가 크지 않고, 예정일이 삼주나 남았으며, 산모의 골반은 충분하고, 그 마음은 넉넉하다. 얼굴에 구겨짐이 없고 자신의 몸에 100% 확신이 있다. 초산이라 진통의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배아픔은 견딜만해서 견뎠다고 했다. 양수가 차 안에서 터지고 힘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그녀의 모든 상황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온갖 불편한 상황을 상상하고 걱정했던 내가 이상했다. 자신의 몸처럼 아기도 더불어 건강할 것을 믿었다. 아기도 자신의 몸이었다. 정신없이 아기를 낳은 후 만난 남편에게 자랑스레 아이를 보여준다. 티끌만큼의 반하는 감정이 없다. 누군가에게, 어떤 것에게도 탓하지 않는다. 지금 같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사람이다. 엄마가 된 그녀의 미소로 방안 최고조의 긴장이 사라졌다. 아내에게 입을 맞추는 그도 따뜻해졌다. "아기는 이렇게 나오는 거 아닌가요?" 내가 한 수 배웠다.
둘째도 그렇게 태어났다. 미리 준비한 덕분에 남편은 둘째 낳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보는 아내의 출산을 덤덤히 함께한 그도 알고 보니 그녀와 한 통속이다. 부창부수,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그들에게 외려 내가 고맙다.
셋째를 품었다. 역시 남편은 출근을 했고 어영부영 지내다가 자칫 혼자 아기를 낳을 뻔했다. 첫 애처럼 남편은 그 자리에 없었다.
선천성 대사이상 검사 결과도 가져다주고, 막내가 눈곱이 자주 낀다길래 겸사겸사 그 집을 찾았다. 이제 막 보름이 지난 셋째는 아기 침대에 누워있다. 셋째를 낳을 때와 똑같이 흐트러진 동화책과 장난감은 거실 가득하다. 어서 오라고 네 사람이 반긴다. 주말을 맞아 마당을 치우는 아빠는 직장에서 보다 바빠 보인다. 겨울바람에 코끝 빨간 이이들은 연신 떠들어댄다. "선생님, 솜사탕 한 개 만들어 드릴까요?" 아들 셋을 돌보는 부산한 그는 마당 한편에 있는 솜사탕 기계를 켜며 내게 묻는다.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내 아버지도 붕어빵을 만들어 손자들에게 주고 싶어 하셨다. 순식간에 나를 위한 하얀 솜사탕이 만들어졌다. 가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먹였을 솜사탕을 아빠맘으로 내 손에 쥐어준다. 아이들은 내 얼굴에 흰 수염처럼 붙어버린 솜사탕을 보며 깔깔거린다.
넷은 낳아야지 했는데 아들 셋 키워보니 충분히 족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와중에 한 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대답을 해 주는 이 부부가 경이롭다. 모든 것이 바뀌었는데 그녀의 구겨짐 없는 얼굴만 그대로다. 아이들의 얼굴은 그녀를 닮았다. 나도 그녀를 닮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