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따듯하고 친절하라.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몇 해 전부터 페이스북의 맨 앞 프로필에 "보다 따듯하고 친절하라"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올려놓았다. 얇지만 정곡을 찌르는 글들이 있는 책을 읽다가 꺼내어진 문구다. 살아갈 날들은 따듯하고 친절하고 싶다. 페북을 들락거리며 그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따듯한가? 친절한가?라고 되묻게 된다. 완벽한 것들을 추구하지만 사는 것들은 늘 모자라고 서툴다. 모든 것이 처음인데 완벽하려 애쓰는 것조차 어찌 보면 이룰 수 없는 욕심인 듯 보일 때 저 화두를 꺼낸다. 울퉁불퉁해도 따듯하고 친절하자! 따듯하고 친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밖의 일들도 함께 따듯하고 친절해진다. 가끔, 내가 왜 굳이 따듯하고 친절해야 하는가에 대해 흥칫뿡!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맘은 상대적인 마음이 들 때다. 상대적이지 않게 살 수는 없는 걸까?

사십 줄의 아내와 오십 줄의 남편에게 자연스레 작은 생명이 왔다. 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얼굴은 보이지 않았겠지만 커진 내 눈과 톤 올라간 목소리에서 나의 반김을 느낄 수 있었을 거다. 이어 그들에게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분명히 지금껏 살아보지 못한 다른 세상일 것은 불 보듯 뻔하니까. 작은 몸짓에 전율할 그들을 상상하니 입이 근질거렸다. 옹골진 남편은 내심 고위험산모인 아내가 자연출산을 하길 기대하고 있고 반하여 아내는 제왕절개를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정 언니들이 모두 제왕절개로 아기를 맞은 이유도 그런 마음을 먹게 한 이유였을 거다. 두 번의 개인교육을 어떤 강의보다 열렬히 경청해 준 그들을 만나는 건 내게도 신나는 일이었다. 당연히 아내는 자연출산을 하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런저런 좋은 결정에 싱글벙글하는 오십 줄의 예비 아빠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좋은 날 골라서 잘 나오너라 아가야!
출산 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날, 달이 차오르는 모습에 막연히 그들을 생각하였다. 혹시? 예감은 어느 과학적 근거보다 정확할 때가 있다. 진통의 시작 없이 물이 나온다고 연락이 왔다. 양막이 열린거다. 양수가 나온 후 자연스러운 진통의 시작을 기대했으나 밤이 지나고 낮이, 또다시 밤이 될 즈음까지 진통은 오지 않았다. 차선을 준비해야 했다. 출산 장소를 변경하고 그곳의 사정을 알아보는 것은 내 몫이다. 차선의 출산 장소는 당연히 병원이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음성이 확인되어야 입원이 가능하며 보호자 일인 이외의 사람은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내가 출산을 도우러 못 갈 수도 있겠지만 일단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틀 째 아침, 진통은 없다. 병원으로 가서 유도 분만을 하는 것이 다음 차선이다. 병원에 입원한 산모는 염증을 예방하기 위해 항생제도 맞았다. 첫째 날 유도분만은 별 효과가 없었다. 굳건한 자궁은 열리지 않고 아기도 골반에 진입이 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살짝씩 자신감은 잃어가는 듯 보이지만 할 수 있는 한 해보겠다고 말하는 그녀가 딴사람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이틀째, 입원을 하고 있는 부부를 만나러 갔었다. 마침 코로나 검사도 다행히 음성이 나왔기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병원에 머문다는 자체가 편안치 않은지 얼굴이 핼쑥하다. 용기를 슬그머니 내밀며 진통을 유발하도록 돕는 움직임 몇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돌아오며 설령 어떠한 방법으로 태어나던 아기의 첫 발자국이 좀 더 따듯하고 친절하기를 바랐다.


토요일이 되었다. 양수를 본 지 4일째 되는 날까지 기다려 준 의료진에게 주말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부부도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다. 자연출산을 위해 노력할 만큼 하였다. 차선은 제왕절개다. 판도라 상자가 열리자 아기는 탯줄을 세 번이나 감고 있었다고 했다. 기다렸다가는 문제가 될 뻔했다. 자연출산을 위해 최선을 다한 그녀나 나는 여한이 없다. 아기는 건강히 똑똑하게 세상에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 생명의 건강한 탄생을 위해 애썼다. 오랜만에 교수님과 분만실 팀장을 만났다. 자연출산을 모토로 일을 하는 나지만 의료적 처치가 필요한 출산을 만날 경우 차선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은 또 다른 나의 몫이다. 그분들의 받아들임이 없다면 차선은 존재할 수 없다. 차선을 받아주는 일은 사실 큰일이 아님에도 그런 곳은 대한민국에 두 세 곳뿐이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부탁을 드릴 때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아기를 낳은 지 삼일째, 젖이 붖고 단단하다기에 전화로 조언을 주었다. 유도분만을 하며 초조하던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수술 후 회복하느라 힘이 들 테지만 여느 엄마처럼 카메라로 아기를 찍느라 바쁘고 젖을 먹이려 모자동실을 하고 있는 그녀가 대견하다. '다른 세상을 만날 거예요'라고 말한 그 다른 세상에 흠뻑 빠져있는 그녀가 느껴진다. 비록 내가 아기를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다시금 내가 엄마가 되어가는 그녀에게 따듯하고 친절했나를 생각해 본다.

학의천 만보 걷기를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난다. 달이 차올라 두 아기가 태어나고 제 일을 마친 보름달이 삭는다. 발걸음 따라 흐르는 냇물이 파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어둠을 데려온다. 입춘이 코앞이라서 그런지 겨울바람 속에 따스함이 묻어있다.


사진출처

land art by Amber woodhouse

<full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