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제 아무리 발달했다손 치더라도 아기를 품고 낳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그저 우리는 좋은 마음으로 잉태를 축하하고 건강히 자라도로록 기도하며 제 때에 맞추어 태어나길 아기에게 부탁하면 된다. 아기가 크다고 혹은 작다고, 탯줄을 감았다고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새 생명의 잉태와 출산에 무리하게 참견하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기계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이야기한다. 참견을 기본으로 하면서 자연출산이라 말한다. 自然,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뜻과 거리가 멀다. 지금 대부분의 아기들은 여러 가지 약물에 취해 人工的으로 태어난다. 자연스럽게 기다려 주지 못하는 의료나 두려움에 기다리는 것을 못하는 산모들의 콜라보로 人工출산이 대세다. 그중에 약물을 거부하는 산모를 마치 미개인 취급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쯤 해서 사람의 태어남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아기를 낳고 싶어 하는 부부를 만났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음에도 아기가 순조롭게 찾아왔다. 사람 사는 일이 하루하루 다르듯 아기도 하루하루 다르게 커갔다. 시간이 흘러 아기를 만날 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양수가 나왔다. 대부분 양막이 열리면 진통이 오는 것이 상례임에도 24시간째 자궁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수축은커녕 계속 양수만 나오니 준비했던 나와의 자연 출산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기맞이를 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두 번째 나의 의무이다. 3차 병원인 순천향대학병원 모자보건센터와 연락을 취했다. 늘 따듯한 맞이를 해 주는 최규연 교수님과 분만실 팀장 최정 선생님의 배려에 감동한다. 출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실천해 주는 그곳과의 인연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양막이 터진 지 이틀째부터 유도분만을 시작했다. 진행이 순조롭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언제던 병원 출입을 할 수 있도록 선별 진료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다행히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음성결과가 나왔다. 오늘 밤에? 내일 밤에?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진통이 걸리기를 기다렸지만 유도제를 멈추면 진통이 사라졌다. 새삼, 출산은 더더욱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님을, 계획대로 되지 않음을 절실히 깨닫는 며칠이 지나갔다. 양막이 터진 산모의 진행이 순조롭지 않으면 산모를 보낸 나로서는 괜스레 의료진에게 부담만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안부와 진행을 묻는 것은 아기가 건강히 태어났으면 하는 나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유도 이틀째 되는 날 그들을 만나러 갔다. 내가 생각했던 상황보다 그들은 자연출산에 대해 더욱 굳건해져 있었다. 작은 조언을 해 주고 교수님과 팀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삼일이 지나가도록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며 원하는 유도된 출산마저 멀어져 갔다. 양막이 터진 지 만 4일 후, 유도제를 맞은 3일이 지난 토요일 오전, 그들은 제왕절개로 아기를 만났다.
최소한의 약물 사용과 최대한의 기다림이 있는 출산은 보기 힘들다. 인공 출산을 해야 하는 경우는 반드시 생기며 그럴 경우의 인공 출산은 생명을 살리는 거다. 순천향 병원 모자보건센터에서 지낸 기간 동안 자연출산을 위해 산모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해 주고 기다릴 수 있는 만큼 기다려 준 것에 대해 그들은 고마워했다. 만들어진 자궁수축이지만 출산을 유도했던 삼 일간, 아기는 자궁수축을 경험했다. 자연 출산한 것이나 진배없다.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대해서 후회나 미련은 나나 그들이나 하나도 없다.
처음 만난 그들에게 '아주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거예요'라는 말을 했다. 그것은 지금껏 살아온 그들만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젖을 먹이고 밤을 새우며 생명을 돌보는 일은 사랑의 시작이고 끝이다. 시작과 끝을 경험한 지 열흘 째, 그들과 화상통화를 했다. 모유수유에 대해 작은 정보를 전달하고 부모 됨이 주는 느낌을 나누었다. 아주 잘하고 있다. 부부의 목소리에서 벅참이 느껴진다. 그 목소리와 몸짓에서 나도 함께 행복하다. 엄마 아빠의 성을 따서 '그루'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김 한 그루!' 생명줄이었던 태반은 외할아버지가 사시는 시골 야산에 나무를 심으며 함께 묻을 계획이라고 했다. 해마다 그루의 생일이 돌아오면 열 그루의 나무를 심을 거란다. 그루가 자라 열 살이 되면 그 야산은 울창한 숲이 되겠지.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모두를 아우르는 일이다. 십 년 후, 칠십 살이 넘는 여름날에 그루의 산에 가 보는 꿈을 꿀 거다. 훌쩍 큰 그루랑 흙과 나무를 보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가장 촣고 훌륭하게 세상에 발을 딛은 그루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