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올해 김하랑 정남이가 대학가요"
2002년, 조산원을 연 해에 태어난 아기들이 올해 대학에 간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 해에 태어난 아기, 김하와 정남! 김하를 낳은, 이젠 서로의 멘토가 된 향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의 기억 속엔 아직 이도 나지 않은 채 함박 웃고 있는 백일 된 아기로만 기억되는 김하! 간간히 커가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했는데 그러는 사이 몇 년의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갔다. 김하와 정남이를 포함해서 네 명이 자주 모였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 육아의 고충도 나누고 가끔은 슬링에 아이를 품고서 나들이도 함께 했다. 가끔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나와 15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던 젊은 새댁들은 나의 좌충우돌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곤 했었다. 젖 먹고 건강히 자라는 아기들은 콩나물처럼 하루가 다르게 건강히 커갔다. 홀로 앉고, 까르르 웃고, 기어 다니고, 아랫니가 나고, 따따를 서고, 한 발짝을 떼는 모습들은 아직도 내 기억에 있다.
똥기저귀를 빠는 복이 아빠는 다른 집 남편들에게 공공의 적이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복이 엄마는 늘 어깨에 힘이 들어 있어 보였다. 모두가 모유수유는 기본이고 천기저귀를 쓰며 아기의 먹을거리를 손수 만들어 먹이는 열혈 엄마들이었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 아이를 볼 때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젊은 엄마들이 어떻게 저런 생각 들을 할 수 있을까? 갈수록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들을 알게 된 나는 슬슬 자부심도 생기게 되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도 그들 삶 중에 하나였다.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아이들을 업고 시청광장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덩달아 나도 내 생애 처음으로 촛불시위에 함께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평화적 시위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이 무얼까? 내가 하는 일도 아기들에게 좋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그 답은 점점 더 명확해졌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 중 내가 할 일은 건강한 출산을 돕는 것이라는 것을!
백일잔치를 조산원에서 치른 정남이도 올해 수시에 합격했다. 한 때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빌려 백일이나 돌잔치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정남이 엄마는 소박한 백일잔치로 절약한 돈을 기부하려는 목표가 있었다. 기꺼이 조산원을 백일잔치 장소로 내어 주었다. 몇몆 또래 엄마들이 정남이의 백일을 축하해 주러 아기를 둘러업고 찾아와 주었다. 백일 음식이 남으면 어쩔까 은근 걱정이 들었는데 그건 기우였음을 금방 알아챘다. 젖을 먹이고 돌아서면 배고프다는 모유수유를 하는 어미들의 먹성은 놀라웠다. 하루 종일 머물며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소화했다. 더 이상 갈아 줄 천기저귀가 없을 때 즈음 모두는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초창기 엄마들은 내게 적잖은 자극제였으나 열정적인 그녀들도 아기를 키우는 일은 녹녹지 않아 보였다. 종종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커가는 아기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자라고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어떤 이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가고 몇몇은 여전히 가까운 곳에 살았다. 그럼에도 서로는 조산원 동기의 의리를 지키는 듯 보였다.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아기들이 나보다 더 커진 어른의 모습으로 조산원에 찾아왔다. 전자공학도가 될 정남이와 융합미술을 전공할 김하가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아기를 받는 절정의 순간을 표현하기엔 인간의 언어는 하잘것없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도 그 느낌과 똑같았다.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속삭였던 수 없는 사랑의 말들을 나는 증언할 수 있다.
김하와 정남이가 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고 며칠간 궁리를 했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언제까지 이야기를 하게 될지 결정하지 못한 채로 약속 날이 다가왔다. 만나자마자 내가 한 일은 이십 년 전 출생 장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건강히 잘 태어났다는 것을 우선 알려주고 싶었다. 앞쪽 페이지에 김하와 정남이의 출생 일시가 적혀있다. 그 당시 살았던 주소도, 잊고 있었던 태어난 시간과 신체 사이즈도 적혀있다. 키 52센티, 머리둘레 36센티, 체중 3.4킬로... 머리가 커서 애썼던 엄마, 향지 이야기를 듣는 김하는 미안한 듯 피식 웃었다. 건강하게 낳으려고 노력한 엄마들 덕분에 지금의 아이들이 있다. 구석에서 찾아낸 먼지 쌓인 앨범엔 정남이의 백일잔치 사진과 함박 웃는 확대 사진도 찾아냈다. 축하하러 와준, 기어 다니는 김하의 젖 먹는 사진도 있었다. 이십 년 전 사진을 보면서 정남과 김하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밤 열 시! 집에서 걸려온 남편들의 전화를 받고서야 늦은 시간을 알아챘다.
나보다 훤칠하게 큰 아이들이 떠나간다. 간직했던 추억의 사진은 김하와 정남에게 선물로 주었다. 올곧은 부모에게서 바름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없다. 단지 천태만상의 세상에서 자존감 있는 멋진 여성으로 살아가길, 늘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이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