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낳는 일이 소풍이었으면...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예정일이 삼주 정도 남았는데 피가 나와요!' 한 밤중 걸려온 전화는 허투루 넘길 내용이 아니다. 왜 그럴까?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부위에서 나오는 피 일까?
"대개는 자궁 경부에 있는 약해진 혈관이 터지면 그런 증상이 있을 수 있어요. 예정일이 다 되어가니 자궁경부가 조금 열리면서 나올 수도 있겠고요. 피가 계속 나오거나 핏덩이가 나온다면 병원 진찰을 하는 것이 안전할 듯합니다" 그 후 뒤척 이며 잠을 잤다.

출산이 줄어 한가해진 탓에 늦잠과 불면으로 중구난방인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약속이 있어도 느긋하게 산모들과 만나고 헤어지니 서두르는 아침은 이제 낯설다. 굳이 아침 일찍 만나자는 산모의 성화에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고는 혼자 구시렁댄다. 스스로 일어날 자신이 없으니 오랜만에 알람을 켰다. 아침 일곱 시, 알람이 세 번 울린 후에야 간신히 눈이 떠졌다. 문자가 와 있다. 어제 피가 비친 미아가 아침 여섯 시 반에 보낸 진통 시작을 알리는 문자다. 아직은 긴가민가 하니 더 기다려보겠다고 한다. 그 후 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아서 병원은 다녀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기는 꼬무락 꼬무락 잘 논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조금은 염려스럽다.

진통 중인 산모를 두고 상담을 할 수 없기에 오전과 오후 약속은 모두 취소다. 출산은 모든 일들의 최우선이며 특히나 아기 낳은 경험이 있는 경산모인 경우는 급작스럽게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반대로 생각 외로 느린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오직 한 사람만의 출산을 위한 '비움'을 준비한다. 가득 채우기 위한 '나만의 비움'이다. 통화 후 아침 여덟시경, 미아는 진통이 시작된 지 한 시간 반이 채 지나지 않아 자궁문이 다 열려서 도착했다. 남편은 짐을 내려놓으며 "잘 낳아! 걱정 말고! 잘할 수 있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쿨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출산 시 남편의 부재가 더 편안할 것이라는 것에 합의를 했었다.

아무도 없는 산실, 진통이 강하다. 작은 아기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양막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또다시 꺼지기를 반복하며 아기를 미끄러트린다. 그녀 옆의 나는 이완을 돕고 출산하기 순조로운 자세를 안내한다. 힘주기는 산통을 감소시키므로 짪은 힘주기를 시켰다. 아기를 낳아 본 미아지만 첫아기 출산의 경험을 꺼낼 겨를이 없다. 강한 진통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지금 내가 도울 일은 힘을 빼게 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참 아이러니 하다. 탄생 부터 삶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양막이 찢어졌다. 샘물 같은 양수가 바닥에 질척하다. 아기가 나올 차례다. 그런데! 방금 전 양수는 샘물 같았는데 빨간 핏물이 나온다. 자주 오는 강한 진통에 태반의 일부가 먼저 떨어진 증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두 방망이 처지며 나의 생각과 손과 말이 민첩해진다. 빨리! 빨리! 아기를 나오게 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히도 진통은 강하게 자주 온다. 머리카락이 보이고, 머리가 나오고, 몸은 후다닥 나왔다. 작다!
아기가 작다! 예정일을 채우지 못해 눈사람처럼 하얀 태지를 온몸에 두르고 있다. "컥컥 으엥~켁"아기는 양수를 뱉어내며 온 몸을 비트는 듯 보인다. 숨은 쉬니 일단은 되었다. 핫팩 온도를 적당히 하여 아기 등에 덮어주고 피부색이 발그스름해지도록 따듯함을 더했다. 아기가 나오며 함께 태반이 떨어졌는지 *태맥이 잡히질 않는다. 자주 강한 진통으로 태반의 작은 일부가 먼저 떨어졌던 것 같다. 살았다! 아기도 그녀도 나도... 늘 아무렇지도 않게 숨을 쉬며 사는데 이번 숨은 진정으로 간절한 숨이다. 특히나 작은 생명에게 숨은 생과 사를 오가게 하는, 살아갈지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결정체이다."컥컥~"양수를 뱉어내며 용트림하는 아기의 몸짓은 삶이다. 내손에 튕겨지는 아기의 버둥거리는 탄력은 온몸의 쭈뼜거림을 사라지게 했다. 아기가 나오며 뿜어낸 붉은 양수를 감사한 마음으로 공손히 엎드려 닦는다.
"고맙습니다~"

아기의 혀가 길다. 젖을 잘 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작은 생명체가 최상의 기운으로 젖을 빤다. 예정일보다 18일이나 일찍 태어난 미아의 아기는 *태지가 온몸을 덮고 있어서 마치 눈사람 같아 보인다. 태지는 예정일보다 좀 일찍 태어나는 아기에게 수분 증발과 피부를 보호하려 붙어 있는 것이다. 병원 근무 시절, 분만실에서 갓 올라온 태지 뒤덮인 아기의 몸을 닦아내느라 꽤나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거즈로 태지 닦임을 당한 아기들의 속살은 다른 아기들보다 더 빨갛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마구 울어대는 아기들보다 더러워 보이는 태지를 닦아 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더럽지도 않거니와 갓 태어난 생명에게 매우 유용한 태지는 그렇게 버려지곤 했다. 지금도 많은 탄생에 관련된 자들은 생명유지에 도움이 되는 태지를 닦아내느라 애쓰고 있다.
미아의 아기 몸을 뒤덮었던 태지는 두어 시간이 지나자 핑크빛 속살을 보이며 거의 흡수되어 사라졌다.

전송된 사진을 보고 미아의 남편이 왔다. 호들갑이 없다. 고요히 들어온다. 첫아기 때엔 해보지 못했던 켕거루 케어! 아기의 맨살과 아빠의 맨살이 닿는다. 깊은 한숨 같은 호흡이 계속되니 아기의 숨도 고르다.
이 신비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기 낳은 지 세 시간 만에 주섬주섬 돌아갈 채비를 한다. 남편이 말한다. " 소풍 다녀온 것 같네~" 멀쩡히 걸어 나가는 산모의 뒤를, 아기 안은 내가 따라간다. 그리고는 차에 앉은 미아의 품으로 아기를 건넨다. '건강히 잘 살거라~' 소풍 와서 보물찾기 하고 가는 듯 보이는 그들의 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차 꽁지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문득 아기 낳는 일이 소풍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