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지막 집을 치우다.

살아가기

by 김옥진

온통 푸르러진 유월의 날에 아버지 생의 마지막 집을 치웠다. 쓰러진 지 두 달째, 우여곡절은 혼란스러웠고 요양병원의 아버지는 실낱같은 푸름을 잡고 있다. 나를 알아보며 빙그레 웃는 아버지는 다섯 살 어린이가 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개미 소리로 말하고, 정신이 들라치면 죽고 싶다고 슬픈 얼굴을 비친다. 짬이난 시간에 아버지의 몸을 본다. 깊은 주름은 나이에 걸맞고 하얀 머리카락이 기력을 말한다. 아버지의 귀가 이렇게 생겼는지 처음 보았다. 휘어진 손가락은 생의 고단 함이다.

키워내느라, 살아내느라 애쓴 몸은 이제 힘이 없다. 스스로 먹지 못하고 서지 못하니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고난했던 삶의 기억은 사라지고 다섯 살 개구쟁이로 별이 되길 기도한다.

구석구석 참 살림도 많다. 혼자 살아도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남겨진 살림들을 보며 아버지의 눈높이를 알아간다. 평소에 무얼 갖고 싶어 했는지, 무얼 하고 지내셨는지 알게 되었다. 언젠가 엄마가 살아계실 때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주방가구를 샀다가 며칠 동안 잔소리를 들어야 했던 아버지다. 칭찬 한번 받아보려다가 외려 민망해하셨던 아버지는 그 일로 한동안 엄마와 말을 하지 않으셨다. 이 년 전 아홉 번째 이사를 하신 임대주택의 살림들은 대충 내 눈에 익다. 엄마의 살림을 몇 개 들고 나오셨고 간간히 들러 주방을 살폈기 때문이다. 싱크를 열어보니 서슬이 퍼런 주방칼 셑트가 꽂혀 있다. 베란다 선반을 보니 칼을 담았던 박스가 깨끗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새로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다. 혼자 사시면서 구석구석 인스턴트가 즐비한데, 해 잡수시지도 않을 거면서 주방칼 셑트를 새로 사신 거다. 칼이 좀 닳아 있었으면 내 마음이 좀 좋았을까! 못 보던 새로 들여놓은 듯한 냉장고 안에도 먹을거리가 그득하다. 새 냉장고를 사시면서 설레었던 마음만큼 더 사시지...

군인생활을 많이 하셨던지라 나름 집은 군대 막사같이 바르게 정리되어 있다. 어떤 물건이던 제자리에 두라고 하셨던 아버지 덕에 바름에 대한 강박은 아버지에게서 얻은 유산이 되었다. 함께 집을 치우던 동생이 수첩에 적힌 메모를 보여준다. 갈겨쓴 듯 보이는 글씨, 예전의 아버지 글씨와 같지 않다. 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생긴 변화로 보였다. 몸이 이상해지면 자식을 찾으시려나 했다. 쓰러지는 날 까지 그런 일은 없었다. 되려 새로 사귄 어떤 할머니의 이간질에 놀아나서 더 우리를 멀리했다. 저승 갈 시간이 비슷한, 돈 받고 친구 해주는 할머니는 돈의 무게 만큼의 시간만 할애해 주었다. 쓰러지기 하루 전날, 할머니에게 왜 안 오느냐고 섭섭해하며 투덜대신 아버지의 문자가 남겨진것을 보면 그렇다. 아버지의 죽음 포트폴리오엔 국립묘지에 갈 것과 장례를 치러줄 상조회 보험이 있다. 스스로가 참 지혜롭게 산다고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홀로 살 수 없는 때가 온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셨다. 더하여 쓰러지신 지 삼 일 후에 연명의료 의향서가 배송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자식에게 조차도 알리지 말아달라는 추신 내용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자신의 죽음이 그 누구에게도 누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나름 당당하게 죽음을 준비하셨다. 사실 머리끝 치솟는 화도, 미움도 이제는 모두 소용이 없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면 다툼이 좀 줄어들었을까? 이어령 교수가 자주 이야기하는 "모멘토 모리"가 생각났다. 아버지의 삶이 선뜻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굳이 모멘토 모리를 상기하면 살아갈 것 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긴 모멘토 모리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원룸에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라던 버지는 어머니를 여의신 후 갖가지 원룸을 섭렵하셨다 채 게약기간이 끝난 기도 전에 또 다른 원룸을 찾아다니셨으니 허투루 쓰이며 지나간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는 한동안 간섭받기 싫다는 아버지에게 수신거부를 당하기도 했다. 일 년에 몇 번씩 , 아버지의 행적을 찾느라 골탕도 먹었다. 찾고 나서는 "그래! 잘 계시니 됐지 뭐."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려니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는다고 억울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내 아버지는 그런 자식들의 고충을 아셨을까? 자식이고 뭐고 아내가 사라지자 날개를 단 듯 멋대로 사셨다. 여자 할머니도 여럿 사귀시고 연금으로 으쓱대기도 하신듯 보인다. 어찌보면 아버지 생애중 가장 황금기를 사신거라는 생각도 든다. 어리숙한 노인네에게는 갖가지 사람들이 붙는다는 것도 알면서 우리들은 그저 모르는 척했다. 결국 가랑비에 옷 젖듯 알량한 남은 돈은 그들의 차지가 되었다. 평생 용돈 타서 쓰던 양반이 덥석 쥐어진 큰돈? 에 얼마나 심장이 뛰었을까! 병이 도지고 어린아이가 돼서야 아버지를 자세히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인연이 여기까지 인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한다. 하나씩 정리를 한다. 아버지가 맺은 것을 아버지가 해결할 수가 없는 시간이 왔다. 오늘, 마지막 자식의 도리로 아버지 생의 마지막 집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