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주저리

살아가기

by 김옥진

시골집에서 돌아와 다시 routine을 실행한다. 얼굴도 푸석하고 근육들도 알이 배겨 일어나고 앉을 때 '에구!'소리가 자동 발사된다. 여기저기 물린 모기 자국, 나도 모르게 긁힌 생채기가 삶의 현장을 대신한다. 집 떠난 스트레스로 밥도 안 먹고 똥도 싸지 않은 코기찬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밀린 똥을 두 번이나 싸고 동네 터줏대감 격인 까치를 보고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걸 보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에 코기찬열도 '좋아요'를 누를 거다. 하기 좋은 말로 '전원생활' 운운하지만 '전쟁 생활'인 거다. 새소리, 흰구름, 맑은 공기도 있지만 모기, 하루살이, 파리, 개구리, 가끔 뱀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공평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상당이 편협적이고 폭력적인 자연과의 동거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내게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ㆍ.


도시는 시끄럽다고 하지만 외려 고요하다. 어른들이 출근을 한 아파트 단지의 9시는 더욱 그렇다. 파랑 분홍의 씽씽카가 늘어선 유치원에 또 다른 씽씽카가 달려간다. 할머니와 씽씽카로 출근? 하는 아이는 아직도 잠이 덜 깨 보인다. 저 아이는 할머니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출근이 일러 아이들을 유치원 앞에 데려다주지 못한 아픈 마음이 일렁인다. 다 컸는데도 유치원 앞을 지날 때마다 꺼내지는 이 마음을 어쩔까! 이제는 잊을 만도 한데, 영락없는 소인배다.


계륵 같은 시골집을 왜 놓지 못할까!! 언젠가 나도 엄마처럼 훌쩍 떠날 건데 말이다. 삼 일간 내내 너저분한 것들을 치우고 나니 벽에 붙어있는 알록달록 돌들이 보인다. 열 번 이상 엄마의 손에 올려졌었을 돌, 동그랗고 예쁜 돌을 찾는 순간 가슴 설레었던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멀리 산과 강물을 보며, 허리를 편 엄마의 호흡도 들어 있다. 하나하나를 자식처럼 쓰다듬고 닦으며 말 걸던 돌, 살아내느라 들을 새 없던 엄마의 목소리가 배인 돌이다. 하나하나가 엄마다. 바닥에, 벽에, 기둥에 붙어있는 돌 때문에 나는 그 집을 외면하지 못한다. 마당 구석에 박혀 있는 조약돌 하나조차 허투루 버릴 돌이 아니다. 돌에게 말 거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았다. 시골살이에 긁히고 멍들고 애써야 해도 엄마를 보러 가듯 돌들을 보러 간다.


시골집은 내내 들고양이들이 들락거린다. 잘 보이던 뻔뻔이는 오지 않고 이호가 낳은 새끼만 밥 달라고 야옹거린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저녁 무렵 이호가 왔다. 요 녀석, 이제는 도망가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어슬렁 마당을 돌아다닌다. 전과 다르게 등뼈가 보이게 말랐다. 츄르도 두 개 주고 사료도 밥그릇 가득 부어 주었다. 배가 불러지자 어디론가 다시 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코기 찬열이 짖어댄다. 들고양이가 온 거다. 이호다. 코기 찬열의 시야를 피해 뒤뜰에다 먹이통을 놓았다. 허겁지겁 먹는다. 오마나! 젖이 불어 있다. 금방 새끼에게 빨린듯한 젖이 축 늘어져 있다. 어제저녁, 그저 불거져 나온 등뼈만 안쓰러웠다. 불어있는 젖은 보지 못했다. 새끼를 낳았구나! 그래서 말랐던 거구나! 어디다 새끼를 숨겨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주 후면 살아남은 새끼를 데리고 올 것이다. 가끔 보였던 새끼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 들고양이의 삶도 녹녹지 않아 보인다. 이러쿵저러쿵 먹고사는 이야기로 도배된 세상은 결국 나눔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들고양이 사료를 산다. 알량한 먹이지만 들고양이에겐 그만한 것이 없다. 시골집을 나오며 그릇 가득 사료를 내놓았다. 이 놈 저 놈이 오고 가서 며칠 가지 못할 양이지만 새끼 낳은 이호가 제일 많이 먹었으면 좋겠다.


양평의 옥천냉면으로 점심을 정했다. 문제는 냉면을 먹는 동안 코기 찬열을 어디에 두느냐다. 뜨거운 햇살 아래 차의 시동을 켠 채로 차 안에 두기도 그렇고, 차창문 열어 놓고도 마음에 걸렸다. 마침, 식당 마당 한편 나무 그늘이 제격으로 보였다. 주차장에 차들이 오고 가니 좀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무로 골랐다. 나는 먼저 식당으로 들어가 냉면 두 개를 시켰다. 멀리 남편과 코기 찬열이 보인다. 이리저리 끈을 묶었다 풀었다 한다. 그 사이 냉면이 나왔고 얼른 남 편 것까지 비벼 놓았다. 내 손과 입과 눈이 바쁘다. 코기 찬열이 남편이 사라지는 쪽을 쳐다보고 철퍼덕 바닥에 앉아있다. 맛집 냉면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비워졌다. 멀리 있는 찬열의 불안이 내게도 온다. 잰걸음으로 다가갔다. 두고 가는 줄 알았는지 시무룩 기가 죽은 눈빛이 금세 밝아졌다. 가져간 물도 마시지 않고 짧은 꼬리만 살랑된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번갈아가며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도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돌봄과 내어놓음의 콜라보다. 허겁지겁 냉면을 먹은 우리 맘을 코기 찬열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