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출산, 자연출산,제왕절개, 모두 옳다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맛집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나온 가족들이 왁자지껄이다. 엄마 아빠 저기 서 보세요. 하나, 둘! 잘 나왔어? 언니 것이 잘 나왔어! 언니 꺼 보내줄게! 사진 찍기가 어설퍼 보이는 노년 둘은 엉거주춤 딸들의 구령에 따라 서먹이 선다. 이십 년 전쯤 나도 더 많은 말을 깔깔거리며 했었다. 이제는 내가 포즈를 잡고 딸들의 구령에 따르는 날이 많아졌다. 여기 좀 봐! 아니 거기말구! 좀 더 가까이! 그렇지 그렇지! 뭐가 그리도 흥이 나는지 딸들은 젊었던 나보다 싱그럽다. 자식을 낳길 잘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 아름답다. 약속의 날과 시간을 기억하는 기다림은 만날 이에게 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산바람이 나를 휘감고 지나간다. 어디쯤 오려나 고개는 길어졌다 짧아진다. 무사히 내 앞에 나타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동안 어찌 지냈을까? 시간은 일 년을 슬그머니 지나쳐갔다. 일 년이 지났구나! 언제 보아도 변치 않는 사람은 시간의 흐름과 상관없는 세상에 산다.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우리는 포옹을 하고 눈을 맞추며 웃을 것이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서로 잘 살았다는 거다. 잘 살은 친구가 조금 후에 나타날 거다.

그 사람을 닮은 해바라기를 샀다. 곁들여진 주홍 작은 장미가 해바라기를 돋보이게 한다. 연 노랑 포장지에 초록 체크 리본이 상큼하다. 이 꽃을 좋아하겠지! 생일은 아니지만 꽃을 주고 싶었다. 만날 시간에 더하여 꽃집 가는 시간이 추가되었다. 꽃을 가지러 가는 길, 발걸음이 가볍고 세상이 더 밝았다. 소리와 냄새와 색깔이 모두 그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기다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다. 꽃다발도, 스치는 산 향기도, 분주히 먹을거리를 옮기는 남자들도 함께다.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기다림은 멋지다.


살았던 이야기,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만 고만한 일상들처럼 들리지만 각자의 무게는 스스로가 짊어진다. 고개를 끄덕이는 위로와, 미소와, 토닥임은 기다림이 주는 선물이다. 이거 더 먹어! 이게 더 크다! 많이 먹어! 맛있지? 스믈세살에 처음 만난 그녀와의 만남은 39년이 지나는 지금까지 한결같다.


그 아기를 기다렸다. 출산예정일이 지난지도 하루 이틀을 지나 일주일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나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교과서에는 출산예정일에서 2주까지만 기다리라고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아직 일주일이 더 남은 거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유도분만을 해야 하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 불안의 크기에 따라 출산의 방법은 달라진다. 서로가 불안한 건 마찬가지지만 아기품은 엄마만 하랴! 불안을 삭혀보려 병원 진찰을 권했다. 아기의 예상 체중은 4킬로가 넘는다고 했다. 외려 불안은 더 커졌다. 하지만 아직도 자연출산에 미련이 남은 엄마는 삼일만 더 기다리겠다고 했다. 산모의 의견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와 그나마 양수 양이 유지되고 있다는 두 번째 이유로 삼 일간 지켜보기로 했다. 아기들은 얄궂다. 딱 삼일째가 지나는 저녁, 진통이 시작되었다. 모두가 좋아했다. 아마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거 같다. 새벽 두 시까지 진통을 지켜보면서 아기가 크니 아주 천천히 진행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였다. 나는 앞으로 24시간 정도나 지나야 아기를 만날 거라 예상했다. 산모가 진통을 잘 견디는 것과 불안을 잠재우는 힘이 필요할 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진통으로 밤잠을 설친 산모는 필시 꾸벅꾸벅 졸릴 것이고 그로 인해 음식이나 물을 챙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 걱정되었다. 일단 샤워를 하고 정오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불안을 말했다. 다시 계획을 바꾸어 병원으로 출산 장소를 변경했다. 되도록이면 자연출산을 할 수 있는 곳, 산모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주는 곳으로 정해졌다. 오후 두 시 3cm의 자궁문이 열렸으나 머리가 크고 삐딱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아기는 골반 진입을 못 하고 있었다. 출산 진행은 지켜보겠지만 제왕절개를 할 수도 있겠다는 원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오후 다섯 시, 5cm의 자궁 개대가 되었고 양막이 열리자 태변 색의 양수가 나왔다. 이건 수술 감이다. 자칫 태아의 심박동수가 이상해진다면 응급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모두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4.26킬로의 건강한 아기가 제왕절개로 무사히 태어났다. 진통을 하다 제왕절개를 했으니 아기는 자연출산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

아기가 조금 작았더라면,

산모가 조금 더 열심히 운동을 했었더라면,

먹는 것을 좀 더 신경 썼더라면,

남편의 불안이 적었더라면,

열거한 것들에 미련은 남지만 이 또한 유니크한 인간세상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니 겸허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건강하니 되었다. 수술이라는 방법이 있는 시대이니 참 다행인 거다.

아기를 목 빼고 기다린 열흘, 나의 기다림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