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두렵지만 여전히 설레는...
살아가기. Pieces of woman
조산협회 보수교육을 들었다. 초음파 보는 법, 임신 중의 검사 종류 등 새삼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다시 재생된다. 임신과 출산을 병으로 보는 관청의 보수교육을 들으며 내내 아기를 받아낸다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인 듯 느껴졌다. 지금껏 저런 일들을 헤치고 살았던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래 맞아 저런 일도 있었지" 인생 필름이 되돌아 가면서 겪었던 일들이 꺼내진다. 근원적인 두려움이, 아주 오래전부터 느꼈던, 내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불안이 기어올라왔다. 산모가 진찰받으며 듣는 설명은 보수교육의 내용처럼 경고성이다. 너나 나나 두려움이 증폭듼다.
보수교육을 듣고 난 후, 누군가에게 꼬심을 당해서 홀딱 속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내내 모든 임신은 병이며 출산은 그것의 꼭짓점이라 말하고 있었다.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어느 간 큰 여자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으며 어느 산과 의사나 조산사가 아기를 받아낼 수 있을까?
병원의 경고로 잔뜩 기죽고 무서워하는 산모들을 일으켜 세우며 함께 아기를 낳았던 나를 얼른 데리고 온다." 대부분의 여성은 건강하다. " "괜찮다"
현대 의료는 죽음, 비정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모두가 건강해야 되고 아기를 받아내는 의사나 조산사는 그렇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산모의 모든 상황을 책임지라는 어처구니없는 법과 제도를 빠져나갈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임신과 출산이 병이 돼버린 세상에서 조산사나 산과 의사의 입지는 서서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설령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은 아기를 낳을 거다. 의료적이지 않아도 생명은 그렇게 이어진다. 최선을 다해 아기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맞닥드리는 슬픈 결과들의 원인은 산과 의사나 조산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세상은 아기를 받아낸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건강하지 못하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도 돈을 꺼내온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간단하게 돈으로 슬픔을 해결한다.
위로와 공감도 돈과 바꾸어진다. 출산은 최소한 돈에서 멀어져야 하지 않을까? 비록 출산이 병으로 인식되는 세상이지만 아기를 품고 낳아본 여성들은 병이라는 인식 위에 다른 것이 있음을 안다.
보수교육 마무리에 영화 "Pieces of woman"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소개되었다. 영화의 주제가 '조산사에 의한 가정 출산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아기를 잃은 후 성숙되어가는 한 여성의 말에 눈물을 쏟았다는 강연자의 이야기는 아기를 받아내는 내게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누구든 아기를 받으며 티끌만큼이라도 좋지 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퍼부어 생명을 살리려 최선을 다한다. 영화 속 조산사도 최선을 다 했지만 아기는 별이 되었다. 아기의 죽음으로 고소를 당한 조산사에게 법정에 선 엄마의 최후 변론은 의미심장하다 "저 조산사에게 벌을 준들 내 아기는 살아 돌아오지 못합니다"
19년 전, 2002년, 조산원을 열겠다는 내게 친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만류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기 받으며 최선을 다했음에도 감옥에 가야 한다면 기꺼이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다들 고개를 내 저었다.
난들 그러한 일들이 없었을까! 운이 좋아 조용히 지나갔을까!
여전히 두렵지만 여전히 설레는 나는 지금도 아기를 받고 있다. 보수교육에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나의 오솔길로 되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