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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21. 2023

미용사 흉내 내다가 그만!

명랑남편

둥그렇게 가운데 머리가 점점 사라지는 남자는 이발소에 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가뜩이나 숱이 점점 없어져서 머리가 시려오는데 왜 자꾸 깎으라고 하냐며 말을 듣지 않는다. 이발소도 먹고살아야지~깎고 나면 훨씬 젊어 보이는구먼~ 나도 좀 멋진 남자랑 한번 살아보자~내가 같이 가줄까? 에잇! 인심 썼다 내가 이발비도 내줄게~아니면 내가 잘라버린다! 온갖 꼬심과 회유와 협박을 당하고서야 슬그머니 일어서는 그는 미운 일곱 살 같다.

살짝 곱슬머리인 그가 이발을 하러 갈 시기는 곱슬이 빛을 발하는, 머리카락 끝이 둥글게 구부러 기 시작하며 추레해지는 때다. 오늘도 물끄러미 그의 뒤통수를 보다가 꼬부라진 머리카락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려 두어 달 동안 틈만 나면 꼬시기 작전을 펼쳤으나 늘 허탕을 쳤다. 오늘, 그 꼬부라진 머리카락이 또다시 내 눈에 들어왔다.

핑계를 대며 뺀질거리는 그를 위해 내가 나서기로 했다. 실패하면 이발소 보내면 되지! 진짜로 가기 싫었는지 나의 도전을 순수히 받아들이며 의자에 앉는다. 황금보자기 가운데를 동그랗게 잘라 남자의 머리에 씌우니 제법 이발관 행색이 나온다. 면도기 부속품에 있는 이발기를 장착하고 코기 이발 가위도 등장시켰다. 사실 이런 나의 용기는 코기의 이발을 도맡고부터 키워 온 자만심이다.

현장을 증명하려 딸이 동석했다. 머리카락을 흡입할 청소기도 준비했다.


아! 어디부터 자를까? 맛있는 것이 아닌데 침이 나온다. 목에 가까운 뒤통수부터 잘라야지. 고운 남자 빗으로 이발소에서 하듯 모든 머리카락을 싹싹 빗어 내렸다. 싹둑! 흰머리가 없는 까만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크! 절로 뒷걸음질이 나오는 이유는 무얼까!  아직 잘못한 것은 없는데. 애써 조심스레 또 한 번 침을 삼키고 가위질을 했다. 어머나 이를 어째! 왼쪽 귀 뒤쪽 머리카락이 뭉턱이로 잘려 나갔다. 괜찮아 괜찮아! 속살이 보이는 곳을 아주 살살 그러데이션으로 잘랐다. 문제는 옆선을 맞혀야 하는 것, 한참을 자르고 또 잘랐다. 대충 그럴싸한 이발이 된 듯 보였지만 껑둥하니 뒤통수 반이 민머리 통이 되었다. 이걸어째 이걸어째! 딸이 옆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웃다가, 위로의 말도 조심스레 했다. "아빠! 그래도 봐줄 만해요. " 그 남자는 어리둥절했다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가...

숱도 없는 남자 머리를 자르자니 슬슬 허리도 아프고  손에 쥐도 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더 망칠까 봐 헐렁한 앞머리는 그냥 두기로 했다.  남자의 예쁜 뒤통수는 영구처럼 되었다.

영구고 뭐고 내가 힘들어서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만! 거울로 뒤통수를 보는 그는 이만하면 되었다고 했다. 

도둑이 제 발이 저린지 책상에 앉은 그의 뒤통수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아무래도 내일 이발소에 갔다 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미용사들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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