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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y 14. 2023

카네이션 부심

일상


오월은 바쁜 달이었다. 과거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더더욱. 부모님보다 내 새끼를 챙기는 마음이 조금 더 커서 미안했던 달이기도 했다.

지금은 부모님의 반은 세상을 뜨셨고 아이들도 장성해서 어린이날도 시큰둥해졌다. 한때는 어버이날에 내 자식들의 이벤트를 기대한 적도 있었다. 그 카네이션이 무어라고 꽃이 없는 어느 해엔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이 부끄러움을 어찌할까. 나이를 먹는 중에도 끊임없이 철이 들어야 하나보다. 그리보니 어른이 되는 과정은 죽기 직전까지다.

몇 년이 흘러갔다. 오월만 되면 카네이션 부심이 올라온다. 올 해도 동네 화원은 이미 여러 종류의 카네이션들로 가득 차 있다. 지나는 길, 제일 예쁘고 싱싱한 카네이션 화분 한 개를 샀다. 양가 부모님이 뇌리에 스쳐간다. 연이어 우리 부부도 떠올린다. 어버이날에 꽃을 사 오거나 말거나 스스로에게 위로와 감사를 보내는 self carnation이다. 혼자 싱글벙글 웃었다.

햇살 좋은 창가에 카네이션 화분을 놓았다. 녀석들은 근처로 갈 때마다 향기를 뿜어낸다. 해마다 오월 첫째 날은 카네이션을 사기로 했다. 자식들 눈치 보지 않게, 미안해하지 않게, 미리미리 사다 놓기다.

오월 팔일이 작품 마감날 인 웹툰작가 딸들이 자기들 맘대로 어버이날 날자를 바꾸었다. 오월 구일로. 그러라고 해야 할 것 같아 그러라고 했다.

그들만의 어버이날에 받은 어버이날 용돈 봉투에는 나름 정성을 들인 태가 났다. 봉투 겉표지엔 튤립 한 다발이 그려져 있고 감사의 문구가 켈리그라피로 멋지게 쓰여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봉투다. 가르친 보람이 일차로 샘솟는다.

오만 원권 일곱 장. 만 원권 아홉 장. 오천 원권 열 장. 천 원권 열 장. 각각의 위인들의 머리가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이것도 정성이다. 가르친 보람이 또다시 샘솟는다.

원래는 게임을 준비했다고 했다. 작은딸과 남편의 투닥거림만 없었다면 우리는 게임을 하며 배꼽을 뺐을지도 모른다. 심히 아쉬운 대목이다. 나쁜 아빠, 나쁜 남편 같으니라고...

못하고 지나갔지만 어떻게 하는 게임이냐고 그냥 한번 물어보았다.

방법은 바로 요렇게...

1. 동그라미 네 개를 방바닥에 그린다.

2. 각각의 동그라미에 오만 원, 만원, 오천 원, 천 원이라고 써넣는다.

3. 백 원짜리 동전을 각각 다섯 개씩 받아 동그라미 안으로 조준하여 던진다

4. 각각의 금액이 적힌 곳에 들어간 동전 수만큼 용돈을 가져간다.


딱지치기 구슬치기의 신동이었던 남편의 어린 시절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안 하길 잘했다. 투닥거리길 잘했다. 하마터면 용돈 모두 뺏길뻔했다.

투닥거림 덕분에 봉투는 내 수중으로 모두 들어왔다.


내년부터는 다른 것 다 필요 없으니, 어버이날에 **랜드와 또 다른 **랜드를 교대로 놀러 가 달라고 요구했다.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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