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가는 ktx 첫차를 탔다. 아주 오랜만에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본다. 본래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이 가훈인 집에서 태어났는데 지금, 몸 안의 피가 그것을 기억해 냈는지 활기차다.
내 좌석번호는 공교롭게도 바로 문 앞이다. 어둑한 실내가 적응되자 주위가 보인다. 우측 자리를 차지한 부지런한 사람은 벌써 아침 해장으로 햄버거를 두 개째 해치우고 있다. 작달막한 몸짓으로 중학생인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펴 놓은 컴퓨터 화면이 예사롭지 않다. 어른이구나! 부지런한 사람이구나! 열심히 살고 있구나! 오늘의 여행이 기대된다.
기차를 탄지 삼십 분이 채 되지 않아 흩어져 지나치는 아파트들 사이로 해가 떠올랐다. 동해바다의 새해마지 해랑 똑같은 빨강 동그라미가 지나치는 들과 산 위에 솟는다. 눈이 부셨지만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았다. 실눈으로 떠오르는 해를 본다. 이런 장난을 해본지가 얼마만인가! 얼마나 지나야 지평선을 볼 수 있을까?
들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햇살에 모내기를 준비하는 논이 노을처럼 붉다. 아침의 붉은빛을 무어라고 부를까 궁금해졌다.
20분 만에 도착한 천안아산역, 바쁜 사람들에게는 참 고마운 기차다. 여러 명이 내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탄다. 며칠 전 TV에서 인간의 일생 중 삼분의 일은 일을 하면서 지낸다고 했다. 그래! 사람은 일을 해야지, 나도 그랬지! 일이 줄어든 요즘, 놀러 가느라 일찍 일어난 내가 그들과 대비된다. 해가 빠르게 머리 위쪽으로 향한다. 저 멀리 스쳐 지나가는 냇가에 백로가 홀로 서 있다. 아침이 평화롭다.
병원 day 근무를 나가며 새벽을 많이도 다녔다. 가끔 조산사가 아니었다면 동트는 아침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을 거다. 더 자고 싶었던 따듯한 이불속, 오 분만 더, 오분만 더를 외쳤던 젊은 날의 나를 만난다.
오송역이다. 젊은 처자가 내린다. 지금은 여섯 시 반, 열심히 사는 간호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햇살에 눈이 부시지 않은 곳을 지날 때는 연둣빛 나무들이 보인다. 길쭉한 포플러 나무, 흰꽃 품은 밤나무, 가로수 은행나무, 냇가의 버드나무, 저 멀리엔 녹음 짙은 소나무도 있다. 아! 우리 동네엔 아직 피지 않은 아카시아 꽃도 만발한 것을 보니 내가 따듯한 지방으로 내려온 것이 실감 난다. 오월의 연두는 여기저기서 축제를 연다.
대전역, 친구 한 명이 타기로 했다. 도착 일 분 전, 플랫폼으로 들어서며 내 눈동자가 바빠진다. 열심히 차창을 기웃거렸는데 친구가 안 보인다. 결국 짧은 정차시간이 지나는 안내방송이 끝나고, 문이 닫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내가 탄 기차보다 한 시간 후에 도착하는 기차를 탄다고 한다. 나만의 시간이 더 생겼다. 홀로 가는 것 또한 좋다. 아침햇살이 짙어지고 초록들판이 나를 따라온다. 소노 아야코 씨의"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라는 에세이를 꺼냈다. 팔순이 넘은 그녀의 명쾌한 단언에 혼자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엔 다 읽을 수 있을 듯하다.
대전을 지나니 안개가 낀 마을을 지난다. 이미 지나 온 곳은 해가 중천인데도 안개로 인해 음산하다. 한참을 달리고 터널이 수 없이 지나가도 안개가 여전한 것이 은하철도 999를 타고 어딘지 모를 우주를 나는 기분이 든다. 지도를 보니 충청도 옥천과 영동쯤을 지나가고 있다. 오래전 가정 출산을 하러 영동 엘 갔던 기억이 났다. 대부분의 아기들은 옥시토신이 잘 분비되는 밤중에 태어나는데 하필이면 그날, 안개가 엄청 낀 날 진통이 왔던 거다. 코앞만 보이는 길 위에 뭉게구름 같은 안개가 유령처럼 차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다. 실체가 없는 것들에 그렇게나 많이 놀란적이 없었다. 손에 땀도 나고 멈칫 브레이크를 많이도 밟았다. 큰길을 벗어나 좁은 마을길의 막다른 골목서 절벽과 마주한 공포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출산의 기억보다 두려웠던 안개가 생각나는 것을 보면 오늘처럼 대단한 안개였던가 보다.
다시 아파트가 보이고 건설현장도 즐비하다. 대구라고 쓰여있다. 안개는 이제 사라졌다. 구름 없이 파란 하늘과 여행을 시작한다.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포항 쪽으로 가는 기차와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분리해야 해서 정차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안내방송이 나온다. 출근시간 되니 창밖 사람들이 많아졌다. 타지의 느낌은 해외서 느끼는 낯섬과 같은 기분이 든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자유로움, 그리고 고독감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고독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친다. 건너편에 앉았던 남자는 대구에서 내리고 이번엔 꽃향기 날듯한 젊은 아기씨가 자리에 앉았다. 화장할 시간이 없었는지 큰 거울까지 꺼내 놓고서는 눈썹을 열심히 그리고 있다. 무얼 해도 예뻐 보이는 나이, 엄마미소가 절로 나온다. 젊었던 시절, 아이들을 씻기고 입혀 보낸 후 차 안에서 출근 준비 화장을 했던 바쁜 아침이 생각났다. 언제나 우아한 아침을 보낼 수 있을까? 그때는 그런 작은 소망을 꿈 뀠었다. 그런 기억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다.
두 시간 걸려 포항역에 도착했다. 새로 지은 역사는 깔끔하다. 아파트 개발로 산이 깎이고 허연 모래 능선만 보여 파란 초여름 하늘을 보는 마음과 대비된다. 아기를 낳지 않아 인구가 줄어든다고 난리를 피우면서 웬 집들은 이리 지어대는지 의아하다. 아침 여덟 시의 포항역사엔 아직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 우리의 기사 노릇을 할 포항 토박이 권정미 샘이 여섯 살 윤슬이와 네 살 지오를 데리고 나타났다. 홀로 한 시간 정도 있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굳이 이른 아침에 아이들 둘을 데리고 마중을 나왔다. 마음이 따듯해진다.
권 선생은 긴긴 사나흘을 견디며 나와 함께 윤슬이를 낳았다. 골반이 정말 엄청 좁아서 더 기다려도 괜찮을까라는 걱정을 하였었다. 고생 끝에 윤슬이가 고깔 머리를 하고 태어났고 지친 자궁에선 하염없이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쪼그라들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자궁수축제를 투여하고 고비가 넘어갔다. 그 후 권 선생은 내 인생 블랙리스트 20명 산모에 드는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권 선생은 조산사이니 꼭 자연출산을 해야 한다고, 그 경험이 조산사를 하는데 제일 중요하다고 단호히 말했었다. 그 말을 따라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둘째인 지오의 출산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자라고 하고는 홀로 밤새 진통을 견뎠다. "선생님, 이젠 도와주셔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새벽 다섯 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처절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지오의 머리가 보이고 있었는데 출산에서 누군가의 도움은 결정적인 순간에만 필요하다는 정답을 그녀는 둘째를 낳으며 터득한 셈이다. 아이들에 대한 어미의 애착은 자연스러운 출산과정에서 얻게 된다. 권 선생은 그것을 두 아이를 자연스레 낳으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조산사 모임 친구들은 특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애착이 생기는 짧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기를 소망한다. 애착은 사랑이며 사랑을 먹으며 자란 아이들의 자존감은 확고하다. 윤슬이와 지오가 그렇게 자라고 있어서 고맙다.
목이 마르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편의점 주스를 사러 간다. 두 녀석 모두 덥석 내 손을 잡는다. 전해지는 꼬물거리는 두 손은 나를 받아들인다는 신뢰의 행동이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