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려지지 않는 건강한 출산

아기를 낳다.

by 김옥진

오랜만에 단비가 내린다. 처마에 떨어지는 물방을 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 달다. 꽃들이 채 피기 전에 봉우리가 말라 떨어져 버리고, 아직 꽃 피울 때가 되지 않은 풀들은 서둘러 일찍 꽃을 피운다. 이것이 식물들이 가뭄에 자손을 내어놓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농부들이 말한다. 지금, 하늘의 물이 온 들판의 싹들을 살려내는 장관을 본다. 오래오래 오길 소망했지만 반나절 내린 비는 오후 햇살에 밀려났다. 깔끔히 씻긴 푸르름이 빛난다. 꽃봉오리가 살아났을까? 이번에 처음 씨앗을 틔워 자리를 잡은 수레국화가 파랑 꽃을 터뜨리려 한다. 고속도로 길가에 지천으로 펴 있는 수레국화와 나의 수레국화는 다르다. 어릴 적 추억을 불러일으킨 수레국화꽃이 이 비에 활짝 웃을 거다.

유월의 아기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초승의 달이 살이 찐 지난주에 테이프를 끊은 녀석은 피범벅이 되어 태어나 나의 간이 콩 알만해졌었다. 다행히도 잘 마무리되었다. "선생님, 네 아이 모두가 선생님을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이미 나의 블랙리스트 산모가 되어버린 지 오래인 그녀가 처음으로 말했다. 그나마 이번이 제일 양호한 편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기와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출산 다섯 시간 후 그녀는 아기를 안고 150킬로 떨어진 집으로 돌아갔다. 보내는 마음이 시원 섭섭했다.


먼 곳에 잘 가시냐는 불안스러운 질문을 한 남편은 예정일이 다가온 아내 때문에 긴장한다. 아내가 진통이 시작되었는데 아기를 받아 줄 조산사가 멀리 지방에 있어서 아기를 받을 수 없을까 봐 그렇단다. 사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지만 사람 사는 것이 꼭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 싶다. 심지어 어떤 남편은 조산사가 자기 아내가 진통이 오는데 교통사고를 당하면 자기 아기는 누가 받냐고 묻기도 했다. 불안은 불안을 만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사실 내 맘도 편치 않았다. 살면서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나. 슬쩍, 그 아기를 받을 때 내가 교통사고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어느 기간 동안에는 시도 때도 없이 시작되는 출산 때문에 집 근처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훌쩍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여기가 동해 바닷가고 저 산이 설악산이지, 눈감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스위스 설산의 바람인 양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기도 했었다.


가늘가늘한 목소리로 **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니~ㅁ, 저 첫아기는 선생님과 출산을 못했는데 이번에는 함께하고 싶어요~'


첫아기를 자연 분만했으니, 아주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 잘 낳을 수 있다. 첫아기 출산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 출산을 하게 된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유를 없애기 위해서는 탄탄한 몸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운동을 시키고 좋은 먹거리를 추천했다. 막달까지 잘 따라왔다. 염려했던 세균검사도 모두 음성이다. 몸과 마음이 예전보다 튼튼하다.

하지만 아기를 받아내는 입장에서는 혹여 있을 똑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해야 했다. 최선을 다 했으나 체질상 계속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비 온 들판을 거닐고 들어와 지금 막 늦은 아침상을 차렸다. 벨이 울렸다. 둘째를 낳을 **에게서 진통 소식이 왔다. 불난 곳으로 재빠르게 달려가는 소방대원처럼 순식간에 밥상은 치워지고 차에 올랐다. 두 시간 걸린다고 내비게이션이 알려온다. 불쑥 올라오는 불안을 잠재우려 심호흡을 했다. 조산원에 가까워질수록 불안의 무게는 덜어진다. 도착하니 70% 진행되어 있고 **는 아직 여유롭다. 내가 만들었던 불안은 어디론가 도망갔다.


어떤 이유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은 첫아이를 다른 곳에서 출산했다. 그녀도 나도 조금 두려웠던 지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첫아기 출산의 두려움은 많은 인터넷 정보와 함께 성장한다. 정보의 오류나 개인적인 상황들이 고려되지 않은 채 쓰여 있는 정보들은 산모들에게 긍정의 메시지보다 부정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아기인 경우, 더 특별히 건강한 임신상태를 유지된 사람의 출산이 내게는 편안하다. **의 불안이 내게 전달되었을 테고 되받은 불안이 **에게 다시 전해졌을 거다. 측정되지 않는 불안이 아기를 받는 이나 아기를 낳는 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차 이야기했다. **의 첫 출산의 기억은 두 명의 직원이 배를 눌렀고, 출혈을 했으며, 회음부 열상이 심해서 한 시간 가량 꿰맸다. 아기를 안아볼 기력도, 아빠가 된 남편은 탯줄 자를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위급한 것이 먼저이니 자연주의 출산이고 뭐고 모두 후순위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저 산모가 이만하면 되었고 아기도 건강하니 되었다고 위안을 삼았다고 했다.

그럼 이번 출산은 배를 누르지 않고 출혈이 없어야 하며 회음부 손상이 없거나 최소화되는 것이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맨가슴 위에 안기고 아빠는 탯줄 자르기 이벤트를 시행하며 출혈 없이 태반이 나오도록 한다. 첫 젖 물기는 엄마에게서 옥시토신이 또다시 분비되도록 도와 출혈을 예방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젖을 물려주어야 한다. 출산 후 한 시간 정도 지나서는 앉아서 미역국을 먹는 거다.

진통하는**을 멋진 둘라 김원장이 돌본다. 나는 한편에서 차근히 홀로 출산 리허설을 한다. 산모의 위치, 혹시 모를 출혈에 대비한 약물들의 위치... 수없이 많은 것들을 그때그때 손에 닿을 수 있도록 줄지어 놓았다.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보통의 경산들은 아기가 태어나기까지 삼십 분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힘을 썼다. 출혈을 최소화하려면 건드리는 것은 금물이다. 지켜보고, 기다리고, 응원하고, 또 도돌이 도돌이...

아기가 태어났다. 탯줄 두줄을 목에 감고서, 기다란 아기 머리는 忍苦 (인고)의 징표다.

참다 참다 첫 호흡을 한다. 양수도 뱃어내고 컥컥거리며 호흡을 되찾는다. 되었다. 그만하면 되었다.

고른 숨이 찾아오자 감추어둔 강인한 본능으로 힘차게 젖을 빤다.


와!!! 성공이다!!! 아빠 엄마의 반가운 눈물이 떨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