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

살아가기

by 김옥진

요양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만나고 왔다. 눈도 침침하시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나이라 창을 두고 만나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거나 다름없다. 그나마 금방 내 얼굴을 알아보시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요 며칠 밤에 잠을 안 주무시고 침대를 탕탕 치시며 소란을 피셨다고 간병인이 말한다. 긴긴밤 소란으로 몸에 억제대도 하셨단다. 24시간 동안 일을 하는 조선족 간병인 처지도 안타깝지만 아버지는 아버지데로 이유가 있을 거다. 초기 치매가 와서 그럴 수 있다고 설명을 들었다.

두어 달 전에 면회하면서 집에 가시겠냐고 여쭈었더니 요양병원이 집보다 좋다 하셨는데 이번엔 '집이 좋지!'라고 하신다. 자식들 셋은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산 지 사십 년이 지난다. 새삼스레 자식 중 누군가가 홀로 된 병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하는 말들은 사실 다 옳지만 오늘처럼 '집이 좋지!'라고 말하시는 분을 두고 돌아오는 길은 참 버겁다.


아버지를 선뜻 모시지 못하는 데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오랫동안 함께 살지 않은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난 십여 년을 연락도 거부하신 채 지낸 분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기고 아버지로 여길 수 있을까?

혹시 옛 생각에 화가 나서 아버지를 때리고 싶어지면 어쩔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어서, 미움이 극에 다달아 또다시 요양병원에 보내고 나서는 더 꾹 눈을 감아버리고 모른 척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지금보다 더 힘이 들 것이 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상황보다 나의 힘듬이 우선에 놓여있다. 나는 아픈 부모를 모시고 살 수 있는 '품'을 잃어버린 걸까?


이해되지 않는 세대 간극은 어쩔 수 없다. 버르장머리가 없느니 불효자니 하는 소리들은 이미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버르장머리도, 불효도 부모에게 배운 것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서로가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고 부딪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는 것 같다. 본 대로 자란 탓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그냥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크게 거슬릴 것이 없다면 마음이 내키는 데로 실행하면 될 것이다.


아기를 낳아 가슴에 앉은 어미는 모성본능에 절로 사랑이 샘솟는다. 자라는 모습들을 알려올 때마다 나조차 벅찬 기분을 느끼니 부모는 오죽하랴 싶다. 백일상을 차리며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돌상을 차리며 더 많은 것을 주겠다고 다짐하는 부부들을 본다. 그곳엔 그렇게 키워지고 길러낸 부부의 부모님을 떠올려지기가 쉽지 않다. '엄마! 아기 정말 이쁘지? 그렇지?' 아기사랑의 황홀경에 빠진 딸을 보며 할머니는 생각한다. ' 너도 그랬지, 참 이뻤어'라고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아기를 키워내느라 핼쑥해진 내 딸이 더 안쓰러워서 할머니의 눈에는 잠 안 자는 손자가 더 미워진다. 당신도 잠 못 자고 젖을 먹여 자식을 키워 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처음 맛보는 희로애락에 울고 웃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은 까마득이 사라졌다. 자식이 편하려면 손자가 잘 자라야 하는 것, 기도는 대를 넘어 손자에게로 향한다.


끊임없는 내리사랑에 지치고 섭섭할지 모르겠으나 사람 사는 이치가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자식에게 많은 시간을 눈을 맞추고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노년의 부모에게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식을 키우며 터득했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아갈 날들만 남았다.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하시면 좋겠다. 마음을 편하게 먹는다는 것은 누가 해 줄 수 없는 일이라서 그렇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면, 세파에 꿋꿋이 견디며 살았다면, 누구든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도, 아버지도, 앞으로의 삶에 '그러려니' 한 단어를 품기를 바래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