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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Nov 07. 2022

대학병원서 자연주의 출산을 돕다.

아기를 낳다.

병원 출산을 해야만 하는 산모의 출산을 돕기로 했다. 그런데 코로나 검사를 해야 병원에 들어갈 수 있다. 9 to 5에 진통이 걸리거나 그 시간에 아기가 태어난다면 좀 더 효과적으로 출산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겠지만 도통 인간의 출산은 그렇지 않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다. 애매하게도 토요일 정오가 지나서 본격적으로 진통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 검사를 하는 외래는 이미 퇴근을 해서 천상 응급실에서 검사를 해야만 했다. 이태원 참사의 아비규환을 언제 겪었냐는 듯이 고요한 응급실엔 간간이 환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오간다. CPR을 해야 하는 환자가 구급차로 들어온다. 빨강 경고등이 켜지고 그로 인해 코로나 검사는 삼십 분이나 지나서 시행되었다. 결과가 나오는 데는 두 시간 정도 걸린단다.

경험상, 현대의 아기들은 오늘처럼 고요한 시간이 언제인지를 귀신같이 알고 세상을 향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토요일 오후의 고요, 더 조용해질 밤까지 기다렸다가 태어날까? 산모는 '아파요'를 말하지만 아직 진통은 지지부진하게 느껴진다. 분만실 앞에서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기를 받아낼 힘의 비축을 위해 죽집에서 가벼운 점심도 먹었다. 산모에게서 아무런 보챔이 없는 것을 보면 아직 시간이 필요한 거다. 외려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평화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출산이 시작된 산모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기를 기도한다.

한 시간 반 만에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도 결과는 음성이다. 급할 것도 없는데 내 몸은 후다닥 3층 분만실로 뛰어올랐다.


분만실 앞에서 처음으로 남편과 악수를 했다. 손이 따듯하다. 가족 분만실로 들어가서 진통 중인 산모와는 포옹을 했다. 아기가 나와 출산을 하게 되는 복을 타고났다며 태중 아기에게 공을 돌린다. 환영의 말치곤 최고의 말이라서 더 책임감이 무거워졌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키가 큰 산모의 봉긋한 배가 나의 명치에 닿았다. 아!  너로구나! 안녕! 뱃속 아기와도 첫 접촉을 했다. 처음 들었을 나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아가야 너도 잘 견뎌서 건강히 만나자.


사뿐하고 재빠르게 출산 환경을 점검한다. 우선 커튼이 쳐있는 가족분만실의 불빛을 줄인다. 조심스레 피아노 소나타를 틀고 한편에 아로마 디퓨져에 불을 붙였다. 진통으로 인해 매슥거릴 때 효과적인 페퍼민트, 이완을 돕기 위한 라벤더, 진통을 촉진해 줄 크라시 세이지를 각각 두 방울 디퓨져에 떨군다. 근육 이완과 통증 완화를 위해 대나무 핫팩도 데워 놓았다.

진통아 세어져라!


아직 7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가고 20%의 진행을 보이고 있다. 아기를 만나기까지 멀어도 한참 멀었지만 서로를 알기 위한 적당한 시간이 주어진 셈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더불어 아기의 머리가 골반을 통과하기 수월하도록 30분마다 다른 움직임을 알려주고 함께 했다.

역시 가만히 누워 있을 때보다 진통의 간격과 강도는 세어진다.


요즘의 분만실의 산모들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모자라 무통주사까지 맞고 하반신의 감각을 잃은 채 누워있다. 움직이지 못해 망부석이 된 산모의 몸 때문에 아기는 제대로 길을 찾아내려 오기 힘들다. 이로 인해 제왕절개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자궁문이 다 열리고도 12 시간 동안 엉덩이를 흔들며 아기와 만나려 애썼던 미국인 산모가 생각났다. 그녀는 원하던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가슴에 안았다. 출산은 유니크한 개인적인 일이며 여러 가지 출산방법으로 아기가 태어난다. 결국 자연분만은 엄마의 의지에 달려있다.


진통 중 움직이는 것은 자연출산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그 사이 남편은 산모가 채 마치지 못하고 나온 회사 일거리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아기를 낳은 후 산후조리원에서 마무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의 젊은 시절이 겹쳐져 보였다. 씩씩한 여자, 열심인 이 산모가  점점 맘에 든다.

오후 네시, 층계를 오르는 운동이 아두의 골반 진입을 도와준다는 설명을 한 후 이제 막 집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산모를 밖으로 내보냈다. 한 시간 동안 '오르락' 운동을 하시라 했다. 찌푸림 없이 부부는 진통을 더 촉진하기 위해 제안한 층계 오르기를 하러 나갔다. 진통이 지지부진하니 간간이 아기가 잘 있는지 심박수만 잰다. '오르기' 운동을 하고 나면 더 강하고 잦은 수축이 올 것이다.


'오르기'운동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안 되어 산모의 저녁 식사가 나왔다. '진통 중에 잘 먹는 산모가 아이도 잘 낳는다' 나의 사십 년 아기 받은 경험에서 나온 사실이다. 산모 부부는 가족분만실로 돌아왔지만 더 강해진 진통으로 산모는 입맛이 없다. 이래저래 바빠 점심을 거른 남편에게 돌아간 저녁 식사는 싹싹 비워졌다. 몇 시간 내에 아기가 태어날 것이니 괜찮다. 얼른 아기 낳고 미역국을 먹어보자고 북돋았다. 진통이 오고 가는 산모의 얼굴이 한층 일그러진다. "웃어야 아기 나옵니다! 웃어보세요" 모범생 산모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잘한다. 정말 잘하고 있다!


진행 70%, 아기는 골반 안으로 쑥 들어와 있다.

간간히  강력한 진통이 자주 오자 무통주사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 무통주사 노릇을 해야만 했다. 양막을 열어주면 좀 더 빨리 아기를 만난다. 산모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았다. 지금부터는 바깥 골반을 넓혀주는 자세를 할 차례이다. 왼쪽으로 누워 오른 다리를 허공에 떨어뜨린  채로 진통 다섯 번, 오른쪽으로 누워 왼  다리를 똑같이 허공에 떨어뜨리면 된다. 이름하여 side lying position. 세 번째 진통에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반대편으로 누어 센 진통이 오자 산모의 호흡에 더 강하게 힘이 들어간다. 태아 방출 반사 (ejection reflex)다. 아기의 머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궁경부 12시 방향을 살짝 벗겨주니 아기가 쑥 내려온다. 손가락 한마디 안에 아기 머리가 만져진다. 잘하면 진통 두세 번 내에 아기가 태어날 것 같다. 교수님 호출을 부탁했다. 분만실 팀 모두가 들어와서 일사불란하게 각자 할 일들을 한다. 트랜스포머 로봇처럼 침대가 분만대로 변신하고 소독포가 산모 가슴 아래를 모두 덮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고요가 찾아왔다. 다시 진통이 오자 수술복을 입은 교수님의 구령이 시작된다. 그곳 모두도 구령에 맞춰 힘을 주는 듯 보였다. 산모의 손을 꽉 잡아주며 고개를 앞으로 당겨 척추를 동그랗게 만들어 힘을 보탰다. 딱 세 번의 진통으로 3.6킬로의 아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세상으로 나왔다.

엄마 가슴 위의 새싹이는 활달하다. 다소 놀란 기색이지만 그곳 모두의 시선은 축제다. 반갑다! 건강하구나! 복도 많지 우리 아가! 산모의 혼잣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첫아기가 세상에 나왔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느라 휴지 한 통을 다 써버렸던 아빠는 잠시 훌쩍이다 탯줄을 자를 준비를 했다. 역시 경험은 느긋함을 불러온다. 녹익은 그의 손길이 새싹이의 탯줄이 잘렸다. 장갑을 끼지 않은 사람들은 환영의 손뼉을 쳤다.


출산 과정에만 참여한 역할은 오롯이 혼자서 아기를 받을 때와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한편으로는 많은 기계와 충분한 의료진들로 인해 묘하게 안정감도 느껴진 건 사실이다. 이런 출산을 하기 때문에 나의  출산센터에서 조산사 혼자서 아기를 받는다고 하면 대부분 기함을 한다. 위험하면 어쩔 거냐면서 말이다. "건강한 산모는 자연스레 아기를 낳는다"가 내 인생의 모토이긴 하지만 건강한 산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엔 사실할 말이 없다.

이번 달이 예정일인 산모들의 차트를 들여다본다. 대부분 첫아기를 함께 낳았던 용감한? 무모한? 산모들이다. 이 삼 년 후 둘째들을 품고 다시 찾아왔다. 그중 삼분의 일이 산부인과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다면 제왕절개의 필요충분조건을 갖고 있다. 긴긴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고, 힘을 쓰고, 진이 다 빠져버린 후 아기를 만났던 케이스들이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게 어루만졌다. 낳는 이도, 나오는 아가도 힘들었겠지만 받아내는 너도 참 애썼다고 스스로를 위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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