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다.
두 아들을 자연출산으로 낳은 산모가 셋째를 품고 방문했다. 결혼 전부터 출산은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 결혼과 아이를 갖는 일을 망설이는 젊은이들이 안타까워요. 저도 좋은 엄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물론 아기를 품는 일은 힘이 들고 낳는 일은 더더욱 괴롭죠. 기르는 일이란 말해 뭐해요. 하지만 꼭 힘들고 아픈 것만이 아니라는 거죠. 저도 결혼 전에는 아이들이 주는 기쁨을 상상할 수 없었어요. 소신 있는 말에 나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첫아기를 갖자 자연출산에 대한 많은 검색을 했다고 했다. 지금껏 건강하다고 자부하면 살아왔다. 병자가 아닌데 병원출산은 산모를 병자 취급하며 아기를 낳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출산 유도제며 마취제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최소한의 *의료개입으로 아기를 받아주는 곳을 찾아냈다. 그곳에서 조산사와 함께 첫아기를 낳았다.
진통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모든 힘듦을 사라지게 한 것은 태어나자마자 맨가슴에 안겼던 아기였다. 가쁘게 뛰는 두 심장이 맞닿은 순간 산통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휘몰아쳐 왔다. 작은 생명에게서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그 공간의 다른 이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으로 젖을 물리며 긴긴 시간동안 아기를 쳐다보았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의 시작은 응시라고. 그 날부터 지금껏 사랑에 빠져 있다.
첫 아기를 낳은 경험은 자연스러운 출산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둘째 아기가 자연스레 찾아왔다. 첫아기 때처럼 폭풍검색은 필요치 않았다. 똑같은 방법으로 둘째를 낳았다. 녀석도 태어나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았고 태어나자마자 젖을 힘차게 빨았다. 결혼 한 지 7년차, 그녀는 여섯 살, 세살,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시간은 내버려두어도 제 할 일을 한다. 만물도 계절 따라 피고 진다. 종종 달이 찬 아기들이 태어났고 나는 갓난아기들을 강보에 싸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드디어 셋째 출산예정일이 2주 남았다. 아기를 낳을 산모들도 준비를 하지만 아기를 받아낼 나도 채비를 한다. 출산 기구 소독이며 필요한 소모품들은 다시 확인해서 제 자리에 놓는다. 대부분 별 일 없이 잘 낳고 가지만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모든 출산준비에 필수이다.
작은 태풍하나가 비와 바람을 몰고 왔다. 조금 열린 창문사이로 바람이 노래를 한다. 이런 악천후에 모든 생명들은 움츠린다. 뱃속 아기들 또한 대부분 쉬어간다. 평소보다 더욱 느긋하게 나는 잠을 청했다.
인생에는 늘 변수가 있기 마련, 밤 12시가 다 되어 진통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준비하고 기다리던 셋째 아기다. 비바람이 치는 길엔 아무도 없다.
50%나 진행된 산모가 진통 간간히 수다를 떤다. 여유로운 경산의 출산은 진통을 하며 수다가 가능하다. 이렇게 아기를 낳아도 되냐고 오히려 산모들이 신기해한다. 이야기를 들으며 출산 준비를 한다. *수중출산 풀에 따듯한 물도 점점 차오른다.
" 어쩌다가 셋째까지 낳게 되었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을 생각하면 지금의 진통도 거뜬히 견딜 수 있어요. 위의 두 아이랑 얼마나 다르고 더 예쁠지 기대 되요. 저는 사실 아기는 얼마든지 낳을 수 있어요. 진통은 그냥 참을 만 해요. 기르는 것이 힘들어서 더 낳을지 고민을 하긴 했어요. 그냥 낳기만 하는 것이라면 네 명 정도는 자신 있어요. 그렇다면 한명만 더 낳으면 되겠네요. 하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말이 끊기는걸 보니 또다시 진통이 오나보다. 산모는 거실을 걸어 다니다가 멈춰 서서 벽을 잡고 호흡을 한다. 한 번의 진통에 일곱 번 정도의 호흡이 오갔다. 대단한 것은 진통이 올 때나 사라졌을 때나 그녀의 얼굴은 변함없다는 것이다. 멀찍이 앉아 그녀를 지켜보며 이번 진통도 잘 견뎠다고 칭찬을 했다.
지금, 진통하는 그녀에게 필요한건 폭풍 칭찬이다.
동생이 태어나는 것을 보기로 한 형들은 눈을 비비며 잠을 참았다. 아기가 언제 태어나느냐고 수없이 물었다. 하지만 결국 쏟아지는 잠을 어쩔 수가 없다. 대신 동생이 태어나면 꼭 깨워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안심이 되었는지 누운 지 십분도 채 되지 않아 꿈나라로 갔다.
아이들이 잠이 들자 드디어 출산 방이 고요해졌다. 고요는 아이를 낳고 있는 여자에게 이롭다.
밤하늘은 간간히 소나기를 쏟아내고 천둥과 벼락을 가져왔다. 아기가 태어날 즈음엔 그들도 새 생명에 대한 예의를 차릴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과 다르게 작은 신음소리가 들린다. 강해진 진통을 보니 아기가 곧 태어나겠다. 수중출산을 위해 물 안으로 들어간다. 따끈한 물은 잠시 진통을 줄여주었다. "너무 좋아요!" 그녀의 어깨에 물을 흘려보낸다. 이제는 진통 사이사이 하던 말도 사라졌다. 아기 맞이를 위한 집중의 시간이다.
나도 민첩해졌다. 자고 있던 남편을 불러 세우고 손을 잡아 힘을 보탠다. 자궁수축의 리듬에 따라 힘주기의 강약도 조절한다. 회음보호를 위해 나의 팔과 손도 최대치의 힘을 꺼낸다. 손끝에서 아기의 머리가 만져졌다. 두세 번의 진통이 오간 후 아주 큰 아기의 머리가 나왔다. 다시 힘을 주자 몸도 빠져 나왔다. 두둥! 물속에 아기가 떠 있다. 산모에게 아기를 안아 올리라고 속삭이며 아기의 피부색을 살핀다. 제일 집중하는 시간, 고요하지만 산모와 나는 최고조의 흥분상태에 있다.
핑크빛 아기, 잦아드는 심박동 수, 올라가는 입 꼬리,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아악! 아래가 너무 아파요!!! "갑자기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소리를 친다. 산모의 외침에 나의 간이 떨어졌다. 변수다! 내 심장은 다시 벌떡거리고 눈은 휘둥그레, 원인을 찾는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비정상 상태를 상상한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원인이랄 게 없다.
"아기 낳을 때마다 지금 같았어요." 느긋한 남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다행이다. 나는 긴 한숨을 여러 번 쉬어야만 했다. 남편의 말대로 점차 산모의 통증은 잦아들었다.
약속대로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웠다. 기특하게도 졸린 눈을 부비며 비틀비틀 방에서 나온다. 맏형이 엄마의 가슴에 안긴 동생아기의 손을 살며시 잡아본다. 덥석 잡지 않고 조심스럽다. 사랑스럽다. 탯줄에서는 아직도 펄따ᅠ각거리는 맥박이 느껴진다. 방금 애쓰며 태어난 새 생명에게 엄마가 주는 선물이다. 새끼를 내어놓은 자연은 제 각각 생명을 살리는 방법을 알고 있다. 탯줄을 빨리 자르지 않으면 아기에게 좋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탯줄을 잘랐다. 녀석들에게 아주 잘 했다고 칭찬을 하니 겸연쩍게 씨익 웃는다.
"너도 그랬단다." 라고 추임새도 넣었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그들만의 무대를 관람한다. 바람대로 작은 태풍은 겸손히 물러났다. 반짝이는 별 하나가 지구로 왔다. 다섯 식구가 되었다.
*조산사; 아기를 받는 의료인
*수중출산; 물속에서 아기를 낳는 것
*경산; 아기를 낳아본 경험이 있는 산모
*회음보호; 아기가 나올 때 산모의 항문과 질 사이의 열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