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다.
그녀는 춘천에 살고 있다. 삼 년 전 지인의 소개로 먼 길을 마다 않고 둘째를 낳으러 왔었다. 처음 상담실로 들어오는 부부의 느낌은 부드러웠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 보였다. 눈을 잘 맞추었고 간간히 보이는 미소에 나도 함께 웃었다. 단지 너무나 날씬한 몸이 마라톤과 버금 갈 출산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둘째 아기는 예상보다 순산을 했으나 약간의 출혈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어지럼증이 있었고 삼 일정도 지나자 회복되었다. 그녀가 셋째를 품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내심 셋째는 딸이길 원했다. 섭섭하게도 이번도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 삼 형제의 엄마가 된다. 아들 셋 중에 한 명은 딸 노릇을 할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만삭의 몸으로 100킬로미터의 거리를 진찰하러 오라고 하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먼 길을 오는 대신 집 근처의 산부인과 진찰로 상황을 주고받기로 했다. 더하여 문자로 삼 일에 한 번 씩 산모가 먹은 음식과 운동 등을 점검 했다. 부부와 나 이렇게 셋이 꾸린 단체 톡방은 늘어져 있는 산모를 일으켜 세우고 부부 사이도 더욱 돈독하게 해 주었다. 둘째를 낳으며 살짝 출혈을 했었기에 철분제와 비타민도 드시라고 했다. 모든 것들이 순조로웠다.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체력이 필요하다. 아기를 품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만 자연 출산을 하기 쉽고 산후 회복도 빠르다. 밤새워 젖을 먹일 힘도 생긴다. 꾸준히 걷거나 네 발로 기어 다니며 방 청소를 하는 것은 여러모로 이롭다. 어슬렁 거리며 걷거나 남편과 손을 잡고 걷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세를 바로 하고 앞을 똑바로 보며 씩씩하게 걸어야 한다. 네 발로 엎드리는 자세는 아기의 태내 위치를 정상으로 돌려 놓는데 도움이 될 뿐더러 허리 통증을 줄여 주기도 한다.
이번 아기는 집에서 낳고 싶다고 했다. 산모가 원한다면 어떤 결정도 좋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병이 아니기 때문에 산모가 정서적으로 안정되는 집은 출산의 장소로 최적이다. 임신 기간 내내 산부인과의 진찰을 받았고 큰 이상이 없는 경우, 산모가 집에서 아기를 낳고 싶다고 원한다면 의사나 조산사는 의견을 따라 주어야 한다. 자연스러운 출산을 위해 먼 길을 와서 아기를 낳았다. 이번엔 내가 그 길을 갈 차례다. 똑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진통을 했을 그녀를 느껴 볼 것이다.
출산 예정일이 채 되기 전에 진통이 시작되었다. 보통의 임산부들은 출산 전에 집안 정리를 한다. 아무리 정리를 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엄마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 진통이 오기 전 완벽하게 집안 정리를 하고 팠던 그녀도 똑같았다. 마무리 되지 않은 집이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일단 잊어야 한다. 지금부터는 셋째를 낳는 것에 힘을 모으기로 했다. 나는 슬쩍 정리가 되지 않은 방문을 닫아버렸다.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다. 출산이 그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해도 아직 아기의 출산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체념을 한다는 것은 가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셋째 아기가 태어나고픈 날은 바로 오늘이다.
한여름의 태양이 구석구석을 비춘다. 숨을 곳이 없다. 가을이 오려는 지 이른 매미들이 목이 터져라 운다. 두 아이들은 사촌들이랑 노느라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없다. 첫 아기를 낳는 풍경처럼 보인다. 간간히 진통이 오고 가고 있다. 암막 커튼으로 창밖을 가리고 에어컨을 틀어 놓았다. 두 아이를 낳을 경험으로 부부는 근사한 출산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어제부터 시누네 식구들이 놀러 와서 집안이 북적였다. 만삭 올케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온 식구가 놀러 오다니, 속이 상했다. 다행히도 모든 식구들이 물놀이를 가기로 했다. 덕분에 두 아이들은 사촌들과 놀 생각에 들떠있다. “엄마! 동생 잘 낳으세요! 다녀올게요.” 아기를 낳을 엄마는 아이들의 인사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고요가 자연스레 찾아왔다. 문득 섭섭함이 몰려 왔던 마음 대신 아이 둘을 돌봐 주는 시누이가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다녀 올 때 쯤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진통이 오는 지금, 생각지도 못한 신의 계획에 신실한 그녀는 놀람과 경외를 느꼈다.
간간히, 진통은 5분 간격 전 후로 오고 간다. '미역 어디 있니? 고기는 사 두었어?' 혼자 남아 딱히 할 일이 없는 친정어머니가 묻는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고요가 깨졌다. 마지막 교통정리를 할 차례다.
" 어머님, 미역국은 아기 낳은 후에 끓이셔도 돼요. 잠시 그때까지 친구를 만나고 오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연락 드릴게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은 금세 이해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따~~~ 알, 아기 잘 낳아라! "이산가족 헤어지듯 어머니는 품에서 딸을 놓지 못한다. 친정어머니마저 나가시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거실엔 수중 출산을 위한 물 흐르는 소리만 남았다. 눈을 감으니 숲 속 골짜기에서 물이 흐르는 풍경이 떠올랐다.
풀에 물을 받는 동안 그녀는 몸에 딱 맞는 수유 의자에 앉아있다. 그 의자는 진통 시 이완을 유도하기에 아주 적절해 보인다. 그녀도 그 의자가 좋다고 했다. 인터넷서 읽었던 라마즈 호흡법을 따라 하니 통증이 훨씬 줄어든다며 웃는다. 자궁 문은 6센티 열렸고 아기는 아직 위에 있다. 커튼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을 따라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2~3 분 간격으로 진통이 강하게 온다.
강한 진통이 오니 물을 이용할 시간이다. 부부는 물 속으로 들어갔다. 아기를 낳는 것이 아니라 바캉스에 온 듯 착각을 일으킨다. 아름답다. 남편의 가슴에 기대어 심호흡을 한다. 걱정과 두려움은 그 장소에 없다.
아기를 낳는 여자가 이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진통이 올 때마다 생기는 미간의 주름마저 내려놓으라고 했다. 잘 따라 한다. 둘째를 낳은 차트에는 '두려워 하지만 잘 따라함' 이라고 적혀 있다. 이번에도 역시 잘 따른다. 이 감사함이란! 진통이 오가는 것을 그러려니 한다. 잠시 후 아주 조용히 힘이 들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출산이 임박함을 알리는 신호다.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작은 소리로 응원을 한다. “조금 있으면 아기가 태어날 거에요. 아빠는 아기 받으실 준비 되셨죠? 긴장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처럼 순조로운 날엔 특히나요.” 눈을 마주친 남편의 얼굴엔 의연함이 그득하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산모는 진통 호르몬에 취해 있다.
몇 번의 강한 진통이 오가고 아기는 물속으로 나왔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남편보다 먼저 아기를 건져 가슴에 안는다. 기회를 놓친 남편이 애석해 했다.
"정말 나왔네요. 아직 먼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이번엔 아내가 힘을 요령 껏 잘 준 것 같아요.” 감격에 겨워 눈가가 촉촉해진 아빠의 목소리가 공간에 퍼졌다.
늘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다르다. 특이 한 낮, 태양을 가리고 단 한줄기 빛을 따라 태어난 아기, 어둠이 없는 아기다.
뒷정리를 하는 나는 그들의 안중에 없다. 그들은 이미 아기와 사랑에 빠졌다.
우리는 함박 웃는 모습으로 기념 촬영을 했다. 방까지 쫓아 들어온 빛을 받으니 산모의 얼굴이 더욱 빛난다.
호들갑 떨거나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인사를 하고 나왔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